▲ 벨기에 화학기업 솔베이가 프랑스 라 로셸 지역에 운영하는 희토류 가공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희토류 화합물 창고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희토류 재활용과 자체 채굴을 늘리는 방식으로 중국 공급망을 향한 의존도를 낮추려 하지만 목표한 시일 내에 이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은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체 공급망 구축이 시급한데 현지 생산 거점을 둔 한국 ‘K배터리’ 기업들에도 중국 공급망 탈피가 힘든 상황은 사업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7일(현지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이 희토류 공급망 내재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연합은 지난 5월 발효한 핵심원자재법(CRMA)에 근거해 2030년까지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 광물 수요의 25%를 재활용과 자체 채굴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CRMA는 중국을 포함한 제3국에서 전략 원자재 의존도를 전체 소비량의 65% 이하로 낮추는 규정도 담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데 유럽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
유럽은 현재 1%에 머물고 있는 희토류 재활용률을 높이고 노르웨이 신규 매장지를 비롯해 희토류 수급처를 다변화하겠다는 선택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채굴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불투명한데다 재활용 계획의 현실성이 높지 않다 보니 중국 의존도를 목표만큼 낮추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전기차 구동 모터에 핵심인 희토류 영구자석 부문에서 유럽 전체 수입량의 90%를 중국산이 점유하는 사례를 고려하면 2030년까지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유럽에 신규 희토류 광산을 여는 일도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여론에 밀려 성사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광물 컨설팅 업체 아다마스 인텔리전스의 라이언 카스틸루 분석가는 로이터를 통해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면 2030년은 목표 달성 시점으로 너무 이르다”라고 짚었다.
▲ 한국 배터리 3사 모두에 유럽은 지역별 매출 비중 1위라 중요도가 높다. 사진은 19일~21일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인터배터리 유럽 2024'를 찾은 방문객들이 LG에너지솔루션 부스를 둘러보는 모습. <연합뉴스> |
희토류는 원소 주기율표 기준으로 네오디뮴, 란타넘, 이트륨, 에르븀을 포함해 모두 17개 원소를 칭하는 개념이다.
전기차 배터리부터 컴퓨터 반도체나 액정디스플레이(LCD)와 같은 여러 첨단 제품들을 만들기 위한 핵심 소재로 중요도가 높아 유럽연합이 자체 공급망을 꾸리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에 희토류 자급체제를 갖추는 일이 시급한 더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자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올리려는 유럽에 보복조치 가운데 하나로 희토류 공급망을 통제하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유럽연합은 최근 중국산 전기차에 반보조금 조사 및 관세 부과 결정을 내렸다. 이에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줄거나 끊는 무역보복 성격의 조치를 내놓으면 반도체와 전기차 등 핵심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일당 체제의 장점을 살려 희토류 채굴 시 나오는 독성 폐기물 같은 환경 문제를 뒤로하고 생산 체제를 빠르게 구축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중국이 무역 분쟁에 우위를 점하는 카드로 희토류를 무기화해 사용하는 시나리오에 대응할 필요가 커진 상황이다.
유럽연합이 희토류 자급체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에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도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세 기업 모두 폴란드와 헝가리 등에 현지 배터리 생산 거점을 갖추고 있어 희토류 조달처의 다각화 여부가 향후 사업의 불확실성을 낮추는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K배터리 3사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유럽이 지역별 매출 비중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CRMA가 중국 의존도를 낮춘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추가 연계 입법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CRMA는 해외 기업에 차별 조항을 포함하지 않았지만 유럽연합의 희토류 공급망 내재화 진행 상황에 따라 현지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 공장을 소외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연합 CRMA 이행 과정에서 희토류 자급 기조를 강화하면 중국도 맞대응 차원에서 희토류 무기화를 서두르면서 현지 한국 기업 공장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질 공산도 있다.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희토류 공급망 관련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JP모간은 “중국이 주요 광물에 수출 제한을 늘리거나 최악의 경우 전면적 금지 조치까지 시행하면 전기차와 전자 및 방위 산업 전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