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4-06-14 15: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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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의 검색순위 선정 알고리즘과 관련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커머스들이 긴장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쿠팡의 ‘검색 알고리즘 조작’과 관련해 공정위가 유통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 1400억 원을 부과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검색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은 각 플랫폼의 선택이자 고유 권한인 만큼 공정위의 조치가 과다하는 것이 쿠팡의 주장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사실상 ‘객관적 기준’이라고 여길 만한 알고리즘의 결정적 단계마다 사실은 ‘주관적 판단’을 넣어 운영해온 것 자체가 문제라고 공정위는 보고 있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가 쿠팡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지적한 ‘검색순위 알고리즘 조작’ 문제를 놓고 상반된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쿠팡은 ‘로켓랭킹’이라는 이름으로 상품 검색순위를 짠다. 이 알고리즘에는 3가지가 적용되는데 쿠팡의 핵심 사업인 자기 상품(직매입 상품과 자체브랜드 상품)을 검색순위 상단에 보여줄 수 있는 로직이 핵심이다.
▲ 쿠팡의 '검색 알고리즘 조작'과 관련한 문제로 서로 상반된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쿠팡 본사. <연합뉴스>
공정위는 쿠팡이 이런 알고리즘을 통해 쿠팡에 입점한 중개상품보다 자기 상품을 검색순위 상위에 고정 노출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점이라고 판단했다.
사실상 자기 상품을 많이 판매하기 위한 의도에서 알고리즘 설계 단계 때부터 인위적으로 특정 상품들에 유리한 구조를 짰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쿠팡은 자기 상품이 검색순위 상단에 올랐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비자들에게 어떤 상품을 추천하느냐를 두고 공정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알고리즘 조작이라고 볼 수 없고 단지 알고리즘을 선택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플랫폼의 고유 권한에 해당한다고도 강조한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알고리즘 설계의 적절성만 따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논리로 쿠팡의 주장을 차단하고 있다.
공정위의 조사에 따르면 쿠팡은 크게 3단계로 검색순위를 결정한다. 먼저 가격과 구매전환율, 배송일, 구매후기 수, 평균별점 등을 반영해 기본 검색순위를 산출(1단계)하고 머신러닝(2단계)을 거쳐 품절 여부 등을 반영한 최종 순위를 조정하고 변경(3단계)한다.
공정위는 이 알고리즘의 3단계에 쿠팡이 인위적으로 개입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알고리즘의 1·2단계를 통해 검색순위 100위 밖에 있던 제품이 3단계에서 갑자기 1~2위에 오르는 것은 명백한 소비자 기만 행위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구매전환율과 가격, 구매후기 등을 반영해 산출한 검색순위 결과를 무시하고 알고리즘 상 마지막 단계에서 검색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정했다”며 이를 ‘알고리즘 조작’의 증거로 댔다.
쿠팡은 공정위의 이런 판단 역시 다퉈볼 여지가 있는 지점이라고 본다. 3단계에서 인위적으로 개입했다 한들 이 역시 플랫폼의 선택으로 봐야 하는 문제일뿐 조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쿠팡이 공정위의 결정과 관련해 “커머스에서의 검색은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것이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쿠팡에 직매입으로 상품을 공급하지 않는 제조기업의 입장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선택받을 만한 품질을 갖춘 제품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단지 쿠팡의 직매입 상품이나 자체브랜드 상품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검색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팡에서 오픈마켓 형태로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공정위의 쿠팡 제재에 긍정적 반응을 내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판단대로 보면 쿠팡뿐 아니라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 역시 알고리즘 조작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본다.
실제로 여러 플랫폼에서 계란과 두부, 휴지 등 장보기 기본 상품을 검색해보면 각 회사나 계열사의 자체 브랜드 상품을 검색순위 상단에 노출해주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 쿠팡에서 '두부'를 검색하면 1순위로 쿠팡의 자체 브랜드 '곰곰' 제품(빨간색 박스)이 나온다. 공정위는 이런 노출값이 쿠팡의 알고리즘 조작을 통해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반면 쿠팡은 상품 진열이라는 유통업체의 고유 권한을 통해 결정한 일이라고 맞서고 있다.
SSG닷컴은 플랫폼에서 현재 이마트의 자체브랜드(PB)인 피코크와 노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두부나 계란 등의 상품을 검색하면 별도의 광고수수료를 낸 ‘AD’ 상품을 제외하면 제일 상단에 올라오는 제품들이 모두 이마트의 자체브랜드 상품들이다.
롯데온 역시 롯데마트몰을 통해 상품을 검색하면 상당수 제품에서 자체 브랜드 ‘오늘좋은’이나 ‘요리하다’ 등의 제품이 검색순위 최상단에 올라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컬리도 마찬가지다. 컬리에서 장보기 기본 상품들을 검색해보면 컬리의 자체브랜드인 컬리스나 KF365, KS365 등의 제품이 우선 노출되는 경우가 흔하다.
SSG닷컴과 롯데온, 컬리 등도 쿠팡의 검색순위 산출 시스템인 ‘쿠팡랭킹’처럼 각자의 기준대로 ‘인기순’이나 ‘추천순’이라는 이름으로 상품을 보여준다.
이들 역시 쿠팡랭킹 알고리즘에 포함되는 논리와 비슷하게 ‘가격 혜택’, ‘소비자 인기도’, ‘판매량’, ‘판매금액’, ‘조회수’ 등을 종합해 상품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검색순위 상단에 노출하는 제품이 주로 자체브랜드 상품이라는 점은 결국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 역시 ‘자의적 기준’으로 주력 상품을 선택하는 것 아니냐고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쿠팡 이외의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들도 저마다의 알고리즘을 통해 자체 브랜드를 우선 노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공정위가 쿠팡에 들이댄 잣대와 동일한 잣대를 다른 플랫폼에 적용한다면 모두 쿠팡과 비슷한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