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05-22 1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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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중동 지역의 정세가 혼돈 속으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건설업체들의 해외 수주에서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어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량 중심에서 수익 위주로 체질을 개선한 일본 건설업체들의 해외 수주에서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가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화상회의 방식으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24년 4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건설업체들의 중동 수주액은 98억 달러(약 13조 달러)로 전체 수주액의 74.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지역을 살펴보면 북미 11.4%, 아시아 9.8%, 유럽 2.7%, 중남미 1.1%, 아프리카 0.8% 등이다.
해외 수주에서 중동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상승하는 추세다. 2022년 기준으로 29.1%를 차지했던 중동 수주는 2023년 34.3%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들어 급등했다.
올해 4월까지 중동 수주 비중은 1990년(85.9%) 이후 최고 수준이다. UAE 바라카 원전 수주가 이뤄진 2009년 72.7%보다도 높다.
문제는 최근 중동 지역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 있다.
국내 건설업계 주요 시장이기도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건강 문제가 중동 정세에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는 아버지 사우디 국왕의 폐렴을 이유로 일본 방문 계획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일부터 23일까지 일본을 방문하기로 했으나 이를 화상회의 정상회담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란에서는 에르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을 잡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이란의 최고 권력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라흐바르)의 권력은 권고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두 나라 모두 원칙을 벗어난 후계자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권력의 공백이 발생한다면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존의 형제 승계 원칙을 벗어나 부자 승계를 추진하고 있다. 이란은 세습직이 아닌 최고지도자의 차기 후보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거론되고 있다.
중동 지역의 상황이 악화한다면 건설 공사의 공기가 지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에 더해 국제정세 불안은 고환율, 고유가로 원자잿값 상승을 부추긴다. 가뜩이나 낮은 중동 지역 해외 수주 마진율이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떠오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해외 수주 공사의 적정 마진율을 10% 내외로 판단하는데 중동지역의 마진율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2%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건설회사 HKA는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동 지역에서는 고위험, 저마진 계약 모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라며 "프로젝트가 설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결국 계획 변경이 불가피하므로 이러한 부분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이라크 국민들이 20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이란 대사관 앞에서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등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건설업계가 위험성이 큰 중동 지역보다는 아시아와 북미 지역 위주로 수주 구조를 바꾼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해외건설협회(OCAJI)가 2024년 2월 발표한 ‘해외 수주 실적 동향’에 따르면 일본의 중동 지역(북아프리카 포함) 해외 수주 금액은 2022년 기준으로 모두 합쳐 175억 엔(약 1524억 원)에 그쳤다. 이는 전체 해외 수주 금액 2조485억 엔(약 17조 원)의 0.9%에 해당하는 액수다.
일본 건설회사의 해외 공사 수주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아시아 지역으로 54.9%(1조1244억 엔)였다. 이어 북미 32.6%(6682억 엔), 오세아니아 4.2%(859억 엔), 동유럽 3.7%(761억 엔), 중남미 1.9%(396억 엔), 아프리카 1.4%(279억 엔)였다. 중동보다 수주액이 적은 곳으로는 유럽(88억 엔, 0.4%)이 있기는 했으나 이는 동유럽을 따로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일본 건설사의 중동 수주 비중이 원래부터 이렇게 적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대부분의 수주 실적을 채웠던 일본 건설사지만 2000년대 중반 두바이 개발 붐을 타고 일본 건설사들은 중동 수주 비중을 확대했다. 특히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중동 수주 비중이 20%를 넘기기도 했다.
높았던 일본 건설사의 중동 수주 비중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2009년부터 1%대로 급락했다.
세계 경제위기로 두바이 최대 국영기업인 두바이 월드가 2009년 채무상환 유예를 선언하고 발주처에서는 공사대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터지면서 일본 건설업체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중동 지역에서 큰 손해를 본 일본 건설업체들은 그 뒤 수주 물량보다는 수익성이 보장되는 사업 위주로 체질을 개선했다.
일본 건설업체들은 건설 공사 수요가 풍부한 데다 경제 규모가 꾸준히 성장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건설 공사 수주 규모를 유지했다.
아울러 2014년엔 일본 해외교통·도시개발사업지원지구(JOIN)를 설립하고 수익이 보장된 북미 지역 공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JOIN은 일본 정부가 민관협력사업(PPP) 방식의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반 시설 투자 전문기관'이다.
정부 지원 아래 2012년 기준 전체 해외 수주의 16.1%에 그쳤던 일본 건설업체의 북미 수주 규모는 2022년 32.6%까지 성장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