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야권은 물론 여권의 싱크탱크까지 ‘전경련 해체’에 가세하고 나섰다.
55년 역사의 전경련이 존폐의 위기에까지 내몰린 것은 스스로 자초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야권 전경련 해체 ‘십자포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경련은 설립 목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 경제 발전을 내세웠지만 오늘날 정경유착단체로 변질됐다”며 “이제는 전경련을 해체할 때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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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창수 전경련 회장. |
박 의원은 전경련이 미르와 K스포츠를 해체하고 새로운 재단을 신설하겠다고 한 데 대해 “전경련은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전경련이 재단을 해산하고 다른 재단으로 통합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최운열 더민주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재위 국감에서 “요즘 전경련의 행태를 보면 역사적 소임을 다한 것 같다”며 “경제와 전혀 관련 없는 어버이연합을 지원하고 미르 설립을 주도해 대기업들에 강제로 돈을 내게 하는 게 전경련이 할 일이냐”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정경유착의 통로와 권력의 심부름단체로 전락한 전경련 해체야말로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4일에는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가 공동성명을 통해 “스스로 설립 목적을 부정하고 국민경제 발전도 저해하는 전경련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전경련에 해산할 것을 권고했다.
두 단체는 각각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데 보수와 진보 성향 지식인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가미래연구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 기능을 담당했는데 김광두 원장은 박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다. 김 원장은 “전경련은 회원인 대기업들이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하고 기업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과 국제사회에서 대기업의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고 질타했다.
김상조 소장은 “전경련은 회원사들의 무관심 속에 내부 상근자들만의 조직으로 퇴화했다”며 “스스로 강변해 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전경련은 이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경련, 재계 ‘맏형’ 대한상의에 내줘
전경련의 정경유착 논란은 그 태생과 연관돼 있다.
전경련은 1961년 5.16군사 쿠데타 직후 ‘경제재건 촉진회’라는 이름으로 발족했다. 당시 재벌기업들이 ‘부정 축재자 처벌’을 피하는 대신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재건에 헌신할 것을 약속한 결과물이었다.
한국경제인협회에서 1968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전경련은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자유시장주의를 표방하면서 산업 발전을 이끄는 데 공을 세웠다는 평가도 받았다. 대형 국책공사가 있을 때는 과당경쟁이 생기지 않도록 업체간 공사 물량을 조정하는 등 재계의 ‘맏형’역할도 톡톡히 수행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회장을 맡았을 때 전경련은 재계의 본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전경련의 위상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이끈 문민정부 이후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벌 규제강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정권과 마찰이 잦아진 데다 1998년 대규모 구조조정인 이른바 ‘빅딜’로 일부 회원사가 이탈하면서 내부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전경련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99년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회장을 맡겠다는 총수가 없어 구인난을 겪어왔다. 현재 전경련은 허창수 회장이 세번째 연임 중인데 마땅한 후임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와 달리 회장직이 비상근이 특성상 상근부회장이 조직을 장악하면서 전경련 회장의 위상도 낮아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특히 최근에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재계의 맏형 자리도 대한상의에 넘겨줬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