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26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시니어 기후진정 미디어 간담회'에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정당들이 기후공약을 많이 내고 있으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상철도 지하화 등 개발 공약도 너무 많이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좌초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큰 영역에 공약이 집중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은 총선을 앞둔 주요 정당들이 내놓는 기후공약뿐 아니라 개발사업 공약이 불러올 잠재적 기후 영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60+기후행동은 환경단체 기후솔루션과 26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시니어 기후진정 미디어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의 주요 목적은 고령층 시민 123명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기후진정의 목적과 당위성을 알리는 것이다. 이들은 기후위기에 취약한 고령층을 보호하는 데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전국 국민 1만7천 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인식 조사를 시행한 60세 이상 유권자들이 기후위기에 대체로 더 높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4월 진행되는 제 22대 총선에서 60대 이상 고령층은 전체 유권자의 30%를 넘는다. 따라서 기후문제가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유진 소장은 “고령층은 한국에서 기후위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직접 겪었고 많은 정보를 얻어 이러한 문제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역별로 봤을 때 주로 기후의제에 관심도가 높았던 지역은 전라남도였다”고 설명했다.
기후정보 인식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서울이었으나 기후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감했다고 답변한 지역은 주로 전남 등 농촌이 많은 지방이었다.
이 소장은 “한국 농촌은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떠받치는 형국으로 이들이 기후위기에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정치권은 물가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농민, 농업 얘기를 다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해결에 뜻을 둔 고령자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 60+기후행동의 한상훈 공동대표는 본인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전하며 농촌 기후위기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2006년에 귀촌해 충주시 산천면의 인구 80명 정도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며 “귀촌했을 당시만 해도 선풍기조차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산골짜기에 있는 집에도 에어컨을 설치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지금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시간만 봐도 여름에는 오전 10시가 넘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며 “한 번도 폭우 위험이 없었던 지역인데 2020년 여름에는 재난지역이 선포될 정도로 홍수 피해도 컸다”고 덧붙였다.
나지현 60+ 기후행동 위원은 “현실적으로 기후피해가 너무 심각한 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고 고령층으로서 기후피해 약자가 되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고령층은 경비, 청소, 조리사 등으로 일하는 분이 많아 폭염에 특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권이 기후문제를 외면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정치를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기후진정에 참여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고령층이 경험하고 있는 기후위기는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 생존권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기후진정을 제기한 배경은 정부가 이런 상황에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신유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응할 의무를 지고 있다”며 “기후위기는 현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는 폭염, 한파, 대기오염에 따른 호흡기 질환, 가뭄, 홍수, 산불, 생태계 변화에 따른 감염병 증가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지난 30년 연평균 기온은 이미 그 이전 30년보다 1.3도 이상 상승했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수립하면서도 취약계층이 놓인 불균형 상태에 대한 역학조사는 전혀 실시된 바가 없다며 국가가 현재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적절한 대처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지향은 이번 기후진정 진행을 맡아 국가가 과소보호 금지의 원칙, 기후적응을 위한 최소 지출 등을 준수했는지 살펴볼 계획을 세웠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유럽에서는 기후 얘기를 하지 않으면 정치권에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달리 지난 한국 대선에서는 기후 얘기 자체가 거의 없었다”며 “기후문제를 야기한 기성세대는 이제 피해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힘이 없으니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내세워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기후 문제에 더욱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한 대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어디에 투표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각성시키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우리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