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D의 전기차 '아토3'. < BYD 홈페이지 >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중국 BYD(비야디)가 포화 상태에 이른 내수 전기차 시장을 넘어 세계 주요 시장 공략에 나선 가운데 동남아시아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지역 전기차 판매 확대에 나선 현대자동차그룹과 BYD 간 치열한 시장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4일 자동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4분기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에 오른 BYD가 중국을 제외한 세계 주요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까지는 2~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BYD의 지난해 총 전기차 판매량 가운데 중국 외 국가 판매 비중은 8%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 스텔라 리 BYD 부사장겸 BYD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야후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BYD는 당분간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리 CEO는 그 이유로 최근 미국 전기차 수요 둔화를 들며, 미국과 중국 사이 무역긴장 고조 등 정치적 배경도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BYD는 2021년 말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유럽 주요 국가에 자사 전기차를 출시했지만, 아직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해 유럽 시장 점유율은 0.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금껏 한국에서 상용 전기차만 판매해온 BYD는 올해 3분기 안에 국내 승용 전기차 시장에도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제품에 관한 한국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BYD는 동남아 전기차 시장에선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해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2023년~2030년 기후 변화에 대응 차원에서 최소 2조8천억 달러(약 3700조 원)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내수 전기차 시장 포화상태에 직면한 중국 전기차업체들은 이 틈새를 노리고 동남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 연료비가 급등하면서 2023년 2분기 전기차 판매량은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무려 894% 증가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동남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2022년 38%에서 지난해 75%로 배로 뛰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더디플로맷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동남아에서 제품, 공장, 자본 확충 등을 결합한 다면적 접근을 지속함에 따라 현지 정부들은 정책 지원,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등 중국 업체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시장에 앞서 동남아에서 제일 먼저 중국 전기차와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 자동차 매체 '오토라이프 타일랜드'에 따르면 BYD는 2022년 말 태국에서 전기차 판매를 시작한 지 단 1년 만인 지난해 현지에서 3만650대의 전기차를 팔아 40% 점유율로 압도적 1위에 올랐다.
태국은 동남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내수 차 판매량이 많은 시장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도 한국차 불모지로 있던 태국 자동차 시장을 본격 공략할 채비를 하던 터였다.
기아는 올 1월 말 영업과 판매, 마케팅, 애프터서비스(AS) 등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태국 판매 자회사를 공식 출범했다. 현지에 연산 25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작년 4월 태국에 첫 자체 현지 법인인 '현대 모빌리티 타일랜드'를 세우고 직접 판매와 AS를 시작했다.
태국과는 정반대로 인도네시아에선 BYD가 최근에서야 현지 진출을 본격화하며, 현지 전기차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BYD는 올 1월 소형 전기 SUV 아토3, 소형 해치백 전기승용차 돌핀, 중형 전기 세단 씰 등 전기차 3종 출시 행사를 열고, 인도네시아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아울러 13억 달러를 투입해 연 15만 대 규모의 현지 완성차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밝혔다.
인도네시아 자동차공업협회(GAIKINDO)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지에서 7465대의 전기차를 팔아 약 44% 점유율로 판매 1위에 올랐다.
▲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 <현대자동차> |
현대차는 2022년 초 인도네시아 브카시에 연산 15만 대 규모의 공장을 짓고 싼타페, 크레타 등의 내연기관차와 함께 현지 최초로 전기차 아이오닉5 양산을 시작했다.
BYD는 최근 인도네시아서 전기차 3종의 가격을 공개했다. 돌핀 장거리 모델은 4억2500만 루피아(약 3600만 원), 아토3 장거리 모델은 5억1500만 루피아(약 4370만 원), 실 장거리 모델은 6억2900만 루피아(약 5340만 원)로 책정했다.
현대차 아이오닉5 기본 모델의 시작 가격은 7억8200만 루피아(약 6640만 원)으로 한국 판매가격보다 1700만 원 가량 더 비싸다.
아이오닉5보다 현격히 가격이 낮은 BYD의 전기차 3종은 현대차의 올해 인도네시아 전기차 1위 수성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는 50여 년 전 가장 먼저 진출한 일본 완성차 업체들의 점유율이 80~90%를 넘나들며 '일본차의 텃밭'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친환경차 전략을 펼쳐온 일본차 브랜드들은 아직 현대차그룹이나 중국 전기차업체들과 겨룰 만한 전기차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BYD는 동남아 국가들의 전기차 전환 추세에 올라타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일본 브랜드와 함께 한중일 삼국지를 써내려갈 전망이다.
미국 컨설팅 업체 앨릭스파트너스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동남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023년 6%에서) 2030년 19%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