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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단순한 정의와 난감한 정의, 범죄도시·모범택시·살인자ㅇ난감

이현경 muninare@empas.com 2024-02-23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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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단순한 정의와 난감한 정의, 범죄도시·모범택시·살인자ㅇ난감
▲ 최근 넷플릭스 상위권에 랭크된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제목처럼 난감한 구석이 있다. 모범택시처럼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보니 결과적으로 응징이 된 경우들이다. 사진은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포스터. <넷플릭스>
[비즈니스포스트] 범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중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션스 일레븐’(스티븐 소더버그, 2002), ‘도둑들’(최동훈, 2012) 같은 케이퍼 필름에서 범죄는 한바탕 놀이처럼 보이고 관객은 범행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갖게 된다. 물론 이런 영화에서 범죄는 대체로 재물을 훔치는 것이라 폭력, 살인과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때로는 잔인한 범죄자임에도 주인공의 편에 서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용의자 X의 헌신’(니시타니 히로시, 2008)에서 주인공 이시가미는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르지만 관객은 그를 단죄하기보다 그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불쌍한 이웃집 모녀를 돕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의 행위는 분명 범죄고 현실에서라면 당연히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2000년대 후반 사적 복수를 행하는 한국 스릴러가 유행한 시기가 있었다. 이런 유형의 서사는 ‘추격자’(나홍진, 2007), ‘세븐데이즈’(원신연, 2007)가 포문을 열었고 ‘악마를 보았다’(김지운, 2010)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이런 유형의 영화 몇 편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사적 복수 소재는 힘을 잃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 사적 복수는 드라마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번에는 사적 복수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등장한다. 

‘복수 대행 서비스’를 소재로 한 ‘모범택시’(SBS, 2021)는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최고 시청률 16%를 기록할 정도의 큰 인기를 얻었다. 예고된 대로 ‘모범택시 시즌2’(SBS, 2003)가 방영됐고 최고 시청률 21%로 기록 경신을 했다. 
 
[CINE 레시피] 단순한 정의와 난감한 정의, 범죄도시·모범택시·살인자ㅇ난감
▲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시리즈로 자리 잡은 ‘범죄도시’의 경우는 반대로 강력한 공권력이 주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어떤 흉악한 범죄자도 한방에 때려잡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마석도 형사를 보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사진은 범죄도시3 메인 예고편 화면 갈무리. < ABO엔터테인먼트 >
모범택시는 노예 노동, 학교 폭력, 불법 웹하드, 보이스 피싱 등 지난 10여 년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바로 해당 사건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과 싱크로율이 높았다. 

모범택시 시즌2 역시 전세 사기, 사이비종교, 대리 수술 등 사회 문제가 된 사건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시즌1과 달리 각 회차에서 등장한 범죄의 배후에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있다는 설정이다. 

시즌 1, 2 모두 무지개 운수 회사의 대표와 경리, 운전기사가 주인공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택시 회사지만 지하 아지트에는 이들의 본업인 복수 대행업을 운영하는 사무실이 있다.

억울한 사연 때문에 죽으려던 의뢰인이 우연히 발견한 명함이나 스티커를 보고 전화를 걸면 복수가 시작된다. 관객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적 복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박수를 친다는 것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버닝썬 클럽’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는 ‘블랙썬 클럽’ 사건 에피소드는 현실에서는 지지부진하게 사건이 마무리 됐지만 드라마에서는 속 시원 하게 범죄자들을 잡아들인다. 

“운행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주인공 김도기(이제훈)의 고정 멘트는 사건 해결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이다. 무력한 인물들을 위해 출동하는 강인한 캐릭터 김도기는 정의로운 사적 제재의 대리인을 상징한다.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시리즈로 자리 잡은 ‘범죄도시’의 경우는 반대로 강력한 공권력이 주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일반적인 속편이나 3편 제작과는 달리 범죄도시는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브랜드가 된 시리즈다. 마동석이 연기한 괴물 형사 마석도 캐릭터를 중심으로 앞으로 4편, 5편 그 이상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흉악한 범죄자도 한방에 때려잡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마석도 형사를 보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혼자니?”라고 묻는 악당 장첸에게 “어 나 싱글이야?”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귀여운 면모도 있는 마석도는 대중들이 원하는 정의의 화신이다. 나쁜 놈은 반드시 잡는 단순한 정의, 우리 시대의 대중이 원하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상위권에 랭크된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제목처럼 난감한 구석이 있다. 모범택시처럼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보니 결과적으로 응징이 된 경우들이다. 

미래에 대해 의욕도 확신도 없는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식)이 아주 우연히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알고 보니 피해자가 극악한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식이다. 탕은 운 좋게도 검거되지 않지만 뜻밖의 목격자에게 협박받고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특이한 드라마 제목은 이탕을 쫓는 형사 이름이 장난감(손석구)이어서라고 볼 수도 있고, 이탕이 살인을 위해 세팅된 장난감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모범택시나 범죄도시와는 결이 다른 이 드라마에서 ‘정의’는 무엇인지 우리를 난감하게 한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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