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엔 희극으로.”
하지만 어떤 역사는 되풀이될 때마다 비극이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마찬가지다. 되풀이할수록 비극인지도 모른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역대정부에서 측근이나 가족이 인사에 개입하고 부패에 연루돼 레임덕에 빠졌는데 박근혜 정부도 예외없이 똑같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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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
김영삼 문민정부는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의 인사비리가 한보사태와 맞물리면서 힘을 잃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은 옷로비 사건 등으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고 아들 김홍걸씨의 뇌물수수 사건이 터지면서 레임덕이 가속화됐다.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의혹과 거취문제를 놓고 잔뜩 뒤숭숭했는데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결정타를 맞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가 ‘전지현 트레이너’로 알려진 윤전추씨의 청와대 행정관과 우병우 수석 임명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또 대기업들이 800억 원을 출연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최순실씨가 개입됐다는 의혹도 갈수록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아예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자.
김영삼 정권은 문민정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출발했다.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금융실명제 시행이라는 결단으로 국내외를 열광시켰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몰락은 내부로부터 생겨났다. 소통령으로 불리던 차남 현철씨가 정부인사에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주요인사들의 동향을 민정비서실로부터 보고받아 정부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한보그룹 사태가 터졌다. 한보철강의 부도로 드러난 권력형 금융부정과 특혜대출비리 사건이다. 5조7천억 원에 달하는 부실대출 규모와 33인의 정치인을 포함하는 ‘정태수 리스트’ 때문에 더욱 충격이 컸다. 김현철씨 역시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김영삼 정권은 레임덕이 가속화했고 결국 국가부도사태로까지 이어지는 비극적 몰락으로 결말이 났다.
김대중 정권도 같은 길을 밟았다. 국민의 정부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승리로 평가받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은 위대한 거인의 감동드라마로 비유되곤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도 결국 측근의 부패와 비리로 말년이 초라해졌다.
김대중 정권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의 구명을 위해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했다는 옷로비 사건에 휘말렸다.
이어 김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가 연루된 최규선 게이트가 터졌다. 대통령 당선자 보좌관이었던 최규선씨가 체육복표 선정과정에 홍걸씨와 함께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용돈'을 홍걸씨에게 줬다고 알려졌다. 이 사실이 청와대에 보고됐으나 유야무야됐다는 의혹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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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씨. |
불행하게 박근혜 정권도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같다.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우병우 민정수석 비리의혹은 대통령 최측근의 권력과 금품이 결탁된 비리라는 점에서 이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인사와 모금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과거 정권의 인사개입 의혹과 다르지 않다.
보고와 건의가 들어가는데도 대통령이 번번이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도 과거 역사와 많이 닮았다.
앞에서 말한 '역사의 되풀이'는 칼 마르크스가 '브뤼메르 18일' 에서 나폴레옹 3세를 두고 한 말이다. 삼촌 나폴레옹이 벌였던 혁명적 도전이 이번에 조카에 의해 우스꽝스럽게 재연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역사에서 희극이란 없다. 비극은 처음부터 비극이고 되풀이될수록 더욱 비극이다. 다만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비극을 피해가거나 최소한 덜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오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