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하고 수백만 원의 벌금을 면제받는 ‘황제노역’ 방지법안이 또 발의된다.
여야에서 노역 일당을 제한하거나 노역 일수를 늘리는 등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어 경제사범들의 벌금 회피를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벌금 미납자의 노역 일당을 제한해 황제노역을 막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20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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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심 의원은 "재벌 총수들이 고액의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하루 노역만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탕감되는 일이 일어난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노역장 유치제도가 고액 벌금의 회피수단으로 악용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형법은 '환형유치'를 통해 벌금 미납자를 최대 3년까지 노역장에 유치하고 이 기간을 다 채우면 벌금을 모두 탕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 의원에 따르면 개정안은 하루 벌금 탕감금액이 최대 100만 원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또 최대 유치 기간인 3년을 노역장에서 복무하더라도 남은 벌금 잔액을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한다.
황제노역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내놓는 것은 심 의원이 처음이 아니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7월에 일명 '전재용 방지법안'을 발의했다. 형법 개정을 통해 노역장 유치 기간을 현행 3년에서 6년으로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다.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는 것은 일부 고액의 벌금 미납자들이 노역으로 벌금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황제노역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일당 400만 원짜리 노역'으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씨와 처남 이창석씨는 탈세 혐의로 선고받은 벌금을 내지않아 7월1일 노역장에 유치됐다.
전씨는 벌금 38억6천만 원, 이씨는 34억2090만 원을 미납했는데 각각 965일, 857일의 노역형에 처해졌다. 하루에 탕감되는 벌금이 400만 원 꼴이다. 통상적인 노역 일당이 10만 원가량인데 전씨와 이씨의 일당은 40배에 이르는 셈이다.
당초 환형유치는 사회적 약자나 경범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처럼 고액벌금 미납자들이 몸으로 때우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연이어 드러나면서 '노역장에서 금이라도 캐느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황제노역 논란은 2014년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 249억 원을 내는 대신 50일의 노역형을 선택하면서 처음으로 크게 불거졌다. 하루 탕감액이 5억으로 당시 일반적인 노역 일당이던 5만 원의 1만 배에 이르러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더군다나 노역형은 종이봉투 붙이기 등 가내수공업이 대부분인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딱히 일감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대한변호사협회가 평등원칙의 위반이라며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비판이 거세지자 2014년 환형유치 기한의 하한선 규정이 신설됐다. △벌금 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은 300일 이상 △5억원 이상~50억원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은 1000일 이상의 노역을 구형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노역 일수의 상한선이 3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만큼 '초고수익 노역'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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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 |
법무부가 내놓은 '최근 6년 노역형으로 탕감받은 벌금액 현황 및 하루 탕감액 1천만 원 이상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노역형으로 탕감받은 벌금액은 20조 원에 이른다.
하루에 1천만 원 이상의 벌금을 탕감받은 사람도 266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총 탕감액은 약 3조141억12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113억3126만원이나 됐다. 평균 노역일수는 301일로 하루 3769만 원을 탕감 받았다. 전재용씨나 이창석씨처럼 일당이 400만 원 이상인 노역자는 현재 전국에서 모두 30여 명으로 알려졌다.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은 “노역형은 사회적 약자나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대한 벌금 탕감 차원에서 도입된 것인데 고액 벌금 미납자들을 위한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며 "황제노역을 뿌리뽑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6030원, 하루 4만8240원인데 여전히 일당 수백만 원의 황제노역을 할 수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당을 제한하거나 노역장 유치기간이 경과해도 벌금잔액을 면제하지 않고 잔액에 해당하는 형집행을 강제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