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제품군을 다변화를 통해 고객 확충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온은 그동안 공격적 증설을 추진해온 만큼 가동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이 길어질 가능성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고객별 맞춤형 제품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 실적 개선에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맞춤형 제폼의 다변화로 실적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12일 SK온 안팎에 따르면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글로벌 무대에서 국내외 기업 관계자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고객 외연을 확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9~12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최대 전자 박람회 CES2024에 참석해 글로벌 잠재 고객사들을 잇달아 접촉하며 협력기반을 다졌다.
SK온 측은 최 수석부회장이 도시락과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떼우며 연속 회의를 이어가는 강행군을 했다고 설명했다.
최 수석부회장은 CES2024 기간에 원통형 배터리 개발을 추가 진행하며 폼팩터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식화했다.
그는 CES2024 현장에서 국내 취재진들에게 “고객마다 요구하는 사양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3가지 배터리 폼팩터(파우치형, 각형, 원통형)를 다 개발하고 있다”며 “각형 개발은 이미 완료됐고 원통형도 고민하다가 개발을 (상당 수준까지) 했다”고 말했다.
SK온의 주력 폼팩터는 파우치형 배터리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제작할 수 있고 높은 에너지 밀도를 나타내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생산원가는 상대적으로 높다.
이에 SK온은 고객사 다변화를 위해 폼팩터 다변화를 모색해 왔다. 전기차 제조사별로 탑재하는 배터리 폼팩터가 서로 다른 만큼 고객사를 더 늘리려면 폼팩터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각형 배터리의 시제품을 고객사에 제공하는 단계에 이를 정도로 기술력을 고도화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에 더해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도 나선 것이다.
케미스트리(화학구성) 측면에서 제품 다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온의 주력 케미스트리는 니켈 비중이 높은 하이니켈 배터리다. 이번 CES2024에서도 SK온은 니켈 비중이 90% 이상인 NCM9+배터리를 선보였다.
다만 최근에는 글로벌 배터리시장에서 하이니켈 배터리와 경쟁 관계에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채택률이 높아지고 있다.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하이니켈 배터리와 비교해 에너지밀도가 낮고 충전속도와 주행거리에서도 불리한 케미스트리로 평가된다. 하지만 하이니켈 배터리와 비교해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삼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이니켈 배터리를 주력으로 삼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도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비롯한 저가형 케미스트리 제품을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SK온에서는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양산 목표시점을 2026~2027년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영찬 SK온 경영지원총괄 사장은 CES2024에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개발했고 생산할 준비도 마쳤다”며 “완성차 제조기업 등과 협의에 성공한다면 2026년이나 2027년부터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팩터와 케미스트리 확장을 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은 SK온의 실적 개선에도 적잖은 의미를 지닐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가장 공격적으로 증설을 진행하는 배터리 업체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힌다. 2021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할 당시 연산 40GWh 수준이었던 생산능력은 현재 100GWh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SK온은 2025년 연산 280GWh, 2030년 연산 500GWh로 생산능력을 더 확대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다만 가파르게 증가하는 증설 속도를 배터리 수요가 따라주지 못한다면 가동률 저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전방의 전기차 업황의 성장세가 둔화하며 배터리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SK온으로서는 대단히 부정적 신호일 수 있다.
▲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이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의 SK그룹관을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가운데)과 함께 김동현 SK USA 담당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SK온 >
당초 SK온은 2024년부터 적자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소 비관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파악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도 SK온이 적자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온이 올해 매출 15조 원, 영업손실 5180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 영업손실 추정치(7500억 원)보다는 줄어든 수치지만 SK온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는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실제 영업실적은 지난해보다 나빠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글로벌 배터리 업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증권사들의 영업이익 추정치 평균(컨센서스)에 크게 못미치는 2023년 4분기 잠정실적을 공시한 바 있다. 애초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5877억 원 수준이었는데 실제로는 3382억 원에 머문 것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혜택 2501억 원을 제외하면 자체 영업이익은 881억 원(영업이익률 1.1%)에 그친다.
이런 실적 부진의 주 요인으로는 전방 전기차시장의 수요 둔화가 첫 손에 꼽힌다. SK온의 상황이 LG에너지솔루션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업황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적자 행진이 올해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셈이다.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이런 엄중한 업황을 염두에 두고 올해 경영전략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폼팩터와 케미스트리를 다변화하고 고객 확보에 힘을 쏟는 것도 업황 악화의 터널을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지나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영상 신년 메시지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대내외 경영환경은 쉽지않다”면서도 “우리는 2024년을 글로벌 경쟁자들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톱 기업으로 전진하기 위한 ‘도움닫기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과 시장이 원하는 제품·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더 높이, 더 멀리 뛰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을 통해 내부 비효율을 제거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