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 그랜저가 일찌감치 올해 국내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예약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2000년대 첫 10년은 쏘나타, 그 뒤 10년은 아반떼와 그랜저가 국내 판매 1위 자리를 양분하며 지금껏 '국민차' 타이틀은 현대차의 세단 모델들이 독식해왔다.
최근 이런 판도에 균열이 갈 조짐이 관측된다. 2020년 국내에서 처음 세단 판매량을 추월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의 인기모델들이 공간 활용상 장점을 앞세워 '국민차' 타이틀까지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3일 국내 완성차업체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1~11월 그랜저는 국내에서 모두 10만4652대가 판매돼 2023년 베스트셀링카 등극이 확실해 보인다. 2020년 이후 3년 만에 10만 대 판매의 벽도 다시 넘어섰다.
올해 국내 누적판매 2위를 달리고 있는 기아 중형 SUV 쏘렌토는 같은 기간 7만7743대 팔렸는데 월평균 7천 대 가량의 판매 추세를 고려하면 12월 1달 만에 3만 대 격차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는 2017년부터 확고한 국내 자동차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가 현대차로부터 독립 출범하면서 그랜저는 플래그십(기함) 모델로 올라섰고 2016년 11월 6세대 모델(그랜저IG)이 나온 이듬해부터 5년 연속으로 국내 자동차 판매 왕좌를 거머쥐었다.
지난해에는 쏘렌토가 국내에서 6만8902대가 판매되며 그랜저(6만7030대)를 박빙의 차이로 제치며 사상 처음으로 국내 판매량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22년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자동차 부품 공급 부족으로 생산차질이 지속됐던 데다 그랜저가 11월 세대변경(7세대)을 앞두고 판매량이 떨어졌던 터라 쏘렌토가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시각이 많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민차 타이틀은 쏘나타, 아반떼, 그랜저 등 세단 모델들의 전유물이었다.
2000~2010년엔 2004년 싼타페, 2009년 아반떼를 제외하곤 중형 세단 쏘나타가 9개년의 국내 판매 왕좌에 올랐다.
그 뒤 2013년까진 현대차 준중형 아반떼가 내리 3년 국내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꿰찼다.
2014년, 2015년엔 다시 쏘나타가, 2016년엔 또 다시 아반떼가 국내 판매 1위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두 차량은 그랜저에 국내 자동차 판매시장의 대권을 물려줬다.
하지만 2023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세단이 독식해 온 국내 베스트셀링카 판도가 뒤집어질 조짐이 관측되고 있다.
올 9월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새모델 판매를 본격화한 쏘렌토는 국내에서 9월 1만190대, 10월 8777대, 11월 9364대가 팔려나가며 같은 기간 8159대, 8192대, 7980대가 팔린 그랜저를 제치고 석달 연속 국내 월간 자동차 판매 1위를 차지했다.
현행 쏘렌토는 2020년 3월 나온 4세대 모델인데 신형 쏘렌토는 기아의 패밀리룩에 맞춰 가로형 헤드램프를 수직형으로 바꿔 다는 등 완전변경(풀체인지)에 준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입고 판매실적을 크게 키웠다.
신형 쏘렌토는 7세대 그랜저보다 약 1년 늦게 출시된 만큼 앞으로도 신차효과를 바탕으로 그랜저를 넘어서는 판매 고공행진을 이어갈 공산이 커 보인다.
지난달 중순 4세대 모델 출시 3년 만에 부분변경 신차가 나온 기아 대형RV(레저용 차량) 카니발 역시 그랜저를 이을 강력한 국민차 후보로 꼽힌다.
기아 신형 카니발 역시 쏘렌토와 같이 패밀리룩을 입고 디자인을 크게 변경했는데 판매 첫달 국내에서 5857대가 팔려 판매량 5위를 기록했다.
다만 이는 11월의 절반 기간에 올린 판매실적인 데다 곧 판매량이 뛸 수 있는 계기도 앞두고 있다.
카니발은 이번 부분변경을 거치며 기존에 없던 하이브리드 모델을 라인업에 추가했다. 국내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서 카니발 하이브리드의 출시 여부는 수 년 전부터 뜨거운 관심사로 자리잡아 왔다.
올해 들어 국내 전기차 판매가 여전히 높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등이 부각되며 주춤하는 가운데 대안으로 떠오른 하이브리드차는 올해 1~10월 누적판매량에서 전년 동기보다 43.5%나 증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량은 6.4% 후퇴했다.
올해 1~11월 전체 판매량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그랜저는 54.6%, 쏘렌토는 66.7%에 이른다.
생산 관련 문제가 없다는 전제 하에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판매에 가세하면 앞으로 카니발 월간 판매량은 2배 가까이 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카니발은 올해 1~11월 국내 누적 판매량에선 6만4552대로 그랜저와 쏘렌토에 이은 3위를 달리고 있다.
신형 싼타페도 국내 베스트셀링카에 오를 수 있는 다크호스로 꼽힌다.
9월 완전변경을 거쳐 본격 판매를 시작한 5세대 싼타페는 기존 1~4세대 모델들의 부드러운 디자인 기조를 완전히 벗어나 정통 SUV 정체성을 강조한 각진 외관을 하고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하도록 실내공간을 더 넓혔다.
신형 싼타페는 9월 국내에서 전년 동월보다 121%나 증가한 5139대(기존모델 810대 포함)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10월엔 친환경차 인증을 마친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판매에 투입되면서 판매량이 7946대로 전달보다 83.5% 더 늘었다.
특히 현대차는 내년 3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에서 신형 싼타페를 생산해 현지에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라이트 트럭(SUV와 픽업트럭) 판매 비중이 70% 넘나드는 미국에서 높은 판매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형 싼타페는 11월엔 국내에서 8657대가 팔려 쏘렌토에 단 707대 차이로 밀린 판매량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신형 싼타페가 해외 주요 시장에서의 큰 인기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면 약 20년 만의 국내 베스트셀링카 자리도 노려봄직 해 보인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은 10월 현대차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미국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쪽으로 전환한 전략이 굉장히 잘 통했는데 최근 나온 신형 싼타페도 미국 시장에서 국내보다도 훨씬 더 딜러들의 반응이 좋았다"며 "4분기 이후에 미국에서 신형 싼타페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