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권경락 활동가(대표). <플랜1.5 > |
[비즈니스포스트] “탄소 크레디트 개발업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희귀하게 데뷔해 80% 주가 급등.”
최근 미국 통신사 블룸버그가 한 한국 기업의 기업공개(IPO) 소식을 다루며 붙인 기사 제목이다. 21일 상장한 에코아이 관련 기사였다. 에코아이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으로 탄소배출권을 확보해 판매하는 기업이다
블룸버그는 이 기사에서 에코아이에 대해 “20억 달러 규모의 섹터가 신뢰성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기업공개까지 간 몇 안 되는 탄소배출권 개발업체 중 하나가 된 후 주가가 급등했다"고 소개했다.
공모가 3만4700원으로 21일 상장한 에코아이는 22일 최고가 8만900원을 찍고 27일 6만1000원대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에코아이를 소개하면서 블룸버그는 왜 ‘우려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쓴 걸까. 에코아이가 기반한 '20억 달러' 즉 2조6천억 원 규모의 섹터가 무엇이기에 신뢰성 관련 도전을 겪고 있는 걸까.
이는 에코아이의 올해 매출 가운데 약 34%가 자발적 탄소시장(VCM, Voluntary Carbon Market)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에코아이의 올해 매출 전망치는 793억 원으로, 이 가운데 273억 원이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나올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이 시장의 많은 프로젝트가 "실제로 기후 혜택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타격을 입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최근 ‘불량 배출권 양산하는 자발적 탄소시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낸 플랜1.5의 권경락 활동가(대표)는 27일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자발적 탄소시장은 모니터링과 검증이 불투명한 민간 기관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탓에 "앞으로 불량 크레디트가 다수 발생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권 활동가는 "시간이 지나면 프로젝트의 종류에 따라서 옥석이 가려질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성에 대한 회복이 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인 규제가 없다면 결국 자발적 탄소시장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삼정KPMG, 서울시 기후환경본부를 거친 15년 경력 에너지·기후변화 분야 전문가인 그는 자발적 탄소시장을 분석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다.
특히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가운데 국제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라(Verra)’의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베라에 등록 완료한 한국 사업 10건을 분석한 결과, 그 중 6건이 ‘부실’한 것으로 플랜1.5 분석결과 나타났다. 감축량 기준으로 보면 등록 사업의 95%에 달했다.
‘불량 배출권’으로 분석된 사업은 현대제철 폐가스발전사업 부문 자회사인 현대그린파워 열병합발전소 2건,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매립가스 소각 및 발전사업 등 2건, 영양풍력발전공사 1건, 서울시 9호선 지하철 운영사업 1건이었다.
권 활동가는 “글로벌 최대 자발적 탄소시장인 베라에 등록된 이 프로젝트들은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의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으로 이미 등록되어 중복성 이슈가 발생하거나, 경제성이 담보되어 보조금 형태의 추가 크레딧이 필요 없는 사업 등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제적 등록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건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의 ‘추가성’ 기준이다.
▲ 자발적 탄소시장 청렴위원회(IC-VCM)이 정한 자발적 탄소시장 원칙. < KBCSD 및 플랜1.5 > |
UNFCCC가 제시하는 ‘추가성(Additionality)’ 기준과 관련, 권 활동가는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대해 '크레디트'라는 형태로 보조금을 주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이 일반적인 경영 여건에서 수행할 수 없는 추가적인 노력이라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발적 탄소시장에 등록된 국내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추가성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베라 등 현재의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들은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업들을 충분한 검증 없이 등록해주면서 국내외에서 신뢰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중 한 사례로 현대제철의 폐가스 발전시설 분석 결과를 살펴 보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첫째, 해당 사업과 유사한 사업들이 포스코를 비롯해 이미 운영되고 있었다. 둘째, 경제성 면에서 이익이 많아 UNFCCC의 추가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권 활동가는 “현대제철은 베라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해당 사업의 예상 이익률이 5% 수준이라서 추가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지난 10년 간 평균 이익률은 17%에 달해 경제적으로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임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 발전시설은 폐가스를 연료로 활용하므로 연료비가 크게 들지 않기” 때문에 '크레디트'라는 형태로 보조금을 받을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매립가스 소각 및 발전사업, 영양풍력발전공사의 61.5MW 풍력발전 프로젝트는 UNFCCC 청정개발체제(CDM)에 등록해 이미 크레디트를 받고도 2020년에 다시 ‘베라’에 등록해 크레디트를 받았다.
권 활동가는 “최근 국내에서도 산업계 중심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을 추진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현재와 같은 부실한 기준을 방치한다면 자발적 탄소시장의 크레딧은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고 나아가 기업들의 ‘그린워싱’ 수단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라는 해외에서도 ‘유령 배출권’ 논란을 일으킨 적 있다. 가디언은 올해 1월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 탐사보도 조직 소스머티리얼 등과 함께 베라의 열대우림 보호 인증 사업을 과학적 연구 논문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베타 탄소 크레디트의 90% 이상이 실제로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에코아이만 놓고 보면 자발적 탄소시장의 리스크가 매출 리스크로 곧장 연결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에코아이 매출 중 절반 이상은 해외 외부사업 인증실적(i-KOC) 48.4%, 국내 외부사업 인증실적(KOC) 5.5% 등 인증 받은 크레디트에 기반하고 있다.
권 활동가는 “가디언에서 주로 분석했던 사업들은 감축의 실효성이 의심이 되는 베라의 조림 또는 산림보호 프로젝트였다"며 "에코아이의 경우에는 UNFCCC에서 대부분 인증을 받은 쿡스토브 사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바로 1:1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자발적 탄소시장 기반 사업들도 추가적인 정밀 조사를 통해 신뢰성 높은 탄소 크레디트를 선별한다면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블룸버그 역시 기사에서 “추가적인 정밀 조사로 시장 투명성을 높이도록 돕겠다”는 이수복 에코아이 대표의 발언을 전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자발적 탄소시장 관련한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
권 활동가는 "자발적 탄소시장을 통해 발행되는 ‘불량 배출권’들이 제도 연계를 통해 국내 배출권거래제에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기업들의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더 엄격한 추가성 및 MRV(측정・보고・검증)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보다 시급한 건 정부가 주도하는 규제적 탄소시장(CCM)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내 배출권거래제의 배출권 거래 가격이 1만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권 활동가는 "가장 시급한 것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