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22일(현지시각) 치러진 총선에서 출구조사 결과 압승이 예상되자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으로 안보 위기와 경기 침체가 심각해지면서 거센 우경화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정치지형의 극우적 보수화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에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3일(현지시각) 개표가 완료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극우성향인 자유당(PVV)이 득표율 23.6%로 하원 150석 가운데 37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다당제가 자리잡아 10개 이상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네덜란드 의회의 특성상 20% 이상 득표율은 ‘압승’으로 평가된다. 2위를 차지한 현재 집권여당인 자유민주당(WD)은 득표율 15.1%, 24석에 그쳤다.
네덜란드는 제1당이 다른 정당과 연립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한 뒤 내각을 구성하며 총리는 통상적으로 제1당 대표가 맡는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 역시 이번 총선 직후 “자유당은 더는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고 집권할 것”이라며 총리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 결과는 13년 만의 정권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서 네덜란드 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집권 중인 자유민주당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이전 네 차례 총선에서 연승하며 2010년 이후 계속 총리를 맡아왔다.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10여 년만의 정권교체는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강하게 들이닥친 우경화 바람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에서는 2022년 6월 프랑스를 비롯해 2022년 9월 스웨덴, 2023년 4월 핀란드, 2023년 스위스 등 지난해부터 각국 총선에서 우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당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탈리아는 2022년 9월 총선으로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집권에 성공하면서 100년 만에 극우성향 총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세계적 우경화 흐름은 유럽에 국한된 분위기가 아니다. 19일 실시된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극우성향인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당선됐다. 내년에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밀리고 있다.
▲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가 19일(현지시각)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 각국에서 우파 성향 정당이 힘을 받는 원인으로는 국제정세가 불안해졌다는 점이 꼽힌다. 역사를 돌아봐도 세계대전 전후, 경제공황 등 세계가 불안정할 때 우파 성향의 정권이 득세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코로나19 확산과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이어지면서 국제정세가 불안해짐에 따라 군사적 측면은 물론 에너지, 식량 등 다양한 측면에서 안보 위기가 고조됐다. 불안정해진 국제정세는 결과적으로 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졌다.
남미 등 국가는 물론 선진국인 유럽지역 국가에서도 대중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 대중의 불만은 개방적 이민자 정책, 기후변화 대응 등으로 향했고 이들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던 기존 정권에 대한 불만과 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오일석, 조은정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신흥안보 위기와 유럽의 우경화’ 보고서를 통해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는 당분간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신흥 안보위기를 맞아 시대적 요청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의 우경화는 자국중심주의, 각자도생, 진영화, 블록화를 가속해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세계의 우경화는 인류의 기후변화 대응을 후퇴시키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파 성향 정당과 지도자들은 대체로 기후변화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대표는 “유럽연합 주도의 기후위기 대응은 과장됐다, 네덜란드에 부담이 된다”는 주장을 피력해 왔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올해 여름에 역사상 최고 수준의 더위가 발생한 일을 놓고 “여름에 더운 것은 뉴스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당선자는 더 나아가 “기후변화는 거짓”이라며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한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네덜란드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가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릴 정도로 극우 성향 지도자의 대표로 여겨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실제로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을 후퇴시키는 조치를 여럿 취한 바 있다.
23일(현지시각) 영국 언론인 파이낸셜타임즈는 트럼프 캠프의 고위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화석연료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내놨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