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이다. 1800년대 말에 나온 저작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절박한 행위에 대해 큰 틀에서 아직까지도 유효한 분석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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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
죽은 자는 늘 그렇듯이 말이 없다.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언제나 산 자의 몫이다.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26일 자살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은 이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되기로 한 날이다.
한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은 이유를 불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연인으로서 벌거벗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지위고하나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절대고독의 상태 말이다.
이 부회장의 경우 굳이 따지자면 뒤르켐이 말한 자살의 유형 가운데 적어도 숙명적 자살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유형에 모두 걸쳐있는 듯하다.
그는 국내 최장수 부회장 타이틀을 달고 전문경영인으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높은 산에 오를수록 낙차는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검찰 소환조사라는 불명예, 수십 년간 쌓아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컸으리라 짐작해볼 뿐이다.
이는 이기적 자살이자 아노미적 자살 유형에 해당하며 대개의 자살에서 보편적인 경우다. 국내에서 기업인들 가운데도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2003년 비자금 의혹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2004년 대통령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던 중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최근의 예로 지난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도 검찰 수사가 임박하자 자살을 선택했다.
이런 선택에는 자살을 통해 면죄부를 받는 동양적 정서도 한몫했을 것이다. 성 전 회장의 경우도 검찰이 자원개발 비리에 요란하게 칼을 빼들었지만 그의 갑작스런 자살 이후 수사의 동력이 상실되면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이 부회장도 기업인이 검찰 수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번 경우 이타적 자살의 요인이 컸을 것이란 대목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기업인들의 자살과 다른 특수성도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혐의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었지만 혼자 모든 혐의를 뒤집어쓸 사안은 아니었다. 개인비리에 수사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에 검찰의 칼끝이 향해 있었다.
물론 이 부회장도 오랜 가신그룹으로서 비리가 있었다면 일부 책임을 질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타적 자살은 개인이 집단이나 공동체에 지나치게 통합돼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가미카제의 행동 같은 것이다.
이 부회장은 유서에 “롯데에 비자금은 없다, 신동빈 회장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글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액면 그대로 본다면 죽음을 앞둔 절대고독의 상황에서도 그가 롯데그룹 혹은 오너 일가와 지나치게 통합돼 있었던 셈이다.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을 접한 어떤 이는 일본 사무라이를 떠올렸다고 했다. 주군을 위해 할복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롯데그룹이 일본기업이냐, 한국기업이냐를 놓고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의 자살에서 일본적 정서가 느껴진다는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이 부회장의 자살로 롯데그룹 사태는 국내 재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막장드라마’의 정점을 찍었다. 내연녀, 혼외자, 친형제간 경영권 다툼, 비리수사, 충복의 자살 등 등장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은 다 나온 셈이다.
이 부회장이 고귀한 삶을 버려가면서 평생을 몸담았던 롯데그룹 사태의 모든 과정에 ‘중지’를 선언하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고인은 역시 말이 없으므로. 확실한 것은 남겨진 모든 것이 산자들의 몫이라는 점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