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스트리밍 된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소셜 미디어 속 '셀럽'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추악한 이면을 파헤치는 드라마인데 소재에 걸맞은 블링블링한 세트와 센스 있는 화면 등 볼거리가 많았다. 사진은 넷플릭스의 '셀러브리티'. <넷플릭스> |
하루가 멀다 하고 순위가 바뀌는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플랫폼이지만 그래도 글로벌 1위에 오른 콘텐츠는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최근 스트리밍 된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소셜 미디어 속 '셀럽'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추악한 이면을 파헤치는 드라마인데 소재에 걸맞은 블링블링한 세트와 센스 있는 화면 등 볼거리가 많았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 여주인공(박규영)은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다 우연히 셀럽의 세계를 접하게 되고 자신도 그 세계에 뛰어든다. 돈도 인맥도 아무것도 없는 주인공은 셀럽이 되는 비책을 연구하고 이를 하나씩 실천한다.
그 몇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유명인을 이용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셀럽에게 접근해서 그의 주목을 끌고 그와 친분을 쌓을 수만 있다면 위로 올라갈 동아줄은 마련된 셈이다.
셀러브리티의 여주인공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 난 인물이 '이브 해링턴'이다. 할리우드 고전영화 '이브의 모든 것'(조셉 L. 맨키비츠, 1950)의 주인공 이름이다.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로 개인적으로 가장 완벽한 고전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생 수많은 영화를 보지만 막상 주인공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캐릭터보다 배우 이름을 떠올리기가 훨씬 수월하다.
물론 이브의 모든 것은 시민 케인(오슨 웰스, 1941), 닥터 지바고(데이비드 린, 1965)처럼 제목에 이름이 들어가 있으므로 기억하기 쉬운 것은 맞다.
그러나 이름이 들어간 수많은 영화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리에 남는 작품은 일부이다. 이는 캐릭터의 강렬함 때문일 것이다.
이브의 모든 것은 냉소적인 연극 평론가 애디슨 드위트가 이브 해링턴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채 일 년도 안 되는 경력으로 연극계 최고 여배우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회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이브의 모든 것'은 (조셉 L. 맨키비츠, 1950)은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수상한 할리우드 고전영화다. |
어수룩한 시골 처녀의 얼굴로 등장한 이브(앤 박스터)는 자신이 동경하는 대스타 마고 채닝(베티 데이비스)을 만나기 위해 마고의 절친이자 당대 최고의 희곡작가 로이드의 아내 카렌에게 먼저 접근한다.
마고의 공연을 하루도 빠짐없이 관람하는 이브의 정성과 열의에 감동한 카렌은 그녀를 마고에게 소개한다. 마고와 그녀의 지인들은 이브의 연극에 대한 애정과 꾸밈없는 순수한 태도로 인해 순식간에 매료된다.
이브는 마고의 열성 팬에서 그녀의 비서로 다시 대역(understudy)으로 끊임없이 위치를 바꾼 끝에 마침내 마고의 자리에 등극한다.
그 과정에서 온갖 권모술수가 동원되지만 그것만으로 이브가 마고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아니다. 엄청난 욕망과 재능,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좋은 영화는 언제 보아도 새롭고 질리지 않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러 차례 이 영화를 봤지만 볼 때마다 발견의 기쁨을 느끼곤 한다. 나이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달라진다.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니 마고 채닝과 그녀의 애인이자 연출가 빌의 관계가 새삼 마음에 와 닿았다. 미국의 평론가 로저 애버트의 말처럼 마고 채닝은 개성 있는 캐릭터인 반면 이브 해링턴은 판에 박힌 캐릭터라 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거짓말과 배신까지 불사하며 스타의 자리를 꿰차는 이브라는 캐릭터가 훨씬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다. 만약 이브의 모든 것이 이브의 비열한 성공담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과 같은 걸작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겹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브의 모든 것의 진짜 주인공은 마고 채닝이다. 최고의 여배우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스타 마고는 40세가 된 자신이 짜증스럽다. 8살 연하의 애인 빌이 이브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지 히스테리를 부리고 술자리에서 난동을 피운다.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해 보이던 마고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자신이 당면한 고통 때문에 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고는 자신의 현실과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흥미롭게도 이브의 모든 것과 같은 해에 역시 나이 든 여배우의 삶을 그린 '선셋대로'(빌리 와일더, 1950)도 개봉 했다. 선셋대로에서는 글로리아 스완슨이 과거의 영광에 묻혀 사는 여배우 역을 맡았다.
둘 다 명연기를 펼쳤지만 아쉽게도 둘 다 오스카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이브의 모든 것'에는 깜짝 놀랄 단역이 등장하는데 바로 마릴린 먼로다.
연극 평론가 애디슨이 파티에 대동하는 신인 여배우 역할을 맡은 마릴린은 다른 여배우들과 확연히 다른 독특한 미모와 특유의 백치미를 발산한다. 이때까지 무명이었던 마릴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베티 데이비스나 앤 박스터보다 주목받는 스타가 된다.
이브가 인생에서 올라가는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마고는 내려오는 법을 보여준다. 언제 보아도 매력적인 영화 '이브의 모든 것'을 피서용 영화 목록에 넣어두시길 추천한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