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농심이 미국에 세 번째 공장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농심의 주력 상품인 라면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추세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 농심에서 미국 제3공장 건설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생산 전문가로 꼽히는 이병학 농심 대표이사 사장(사진)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농심의 대표적 생산 전문가로 꼽히는 이병학 농심 대표이사 사장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농심에 따르면 현재 내부적으로 미국에 제3공장을 건설하는 것과 관련해 긍정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미국에 제3공장을 건설할지와 관련해 올해 안에 공식 발표를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하지만 내부적으로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 등을 놓고 추가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은 15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낸 보도자료에서 ‘최근 성장률을 감안하면 수년 내 미국 제3공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미국 공장 추가 건설과 관련한 운을 띄웠다.
앞서 신동원 농심 회장은 3월 말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미국 제3공장 설립을 구체화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농심에서 미국 제3공장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추가 공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공감대는 이뤘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실상 신동원 회장의 결심만 서면 곧바로 3공장 투자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얘기가 끝났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농심이 미국에 세 번째 공장을 설립하려는 이유는 북미 영업환경이 그만큼 농심에게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농심은 1분기에 미국에서 매출 1472억 원(내부거래 제외)을 냈다. 2022년 1분기보다 43.8% 늘었다. 캐나다에서 거둔 1분기 매출도 245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21.4% 상승했다.
수익성은 더 높아졌다. 농심 미국법인의 1분기 영업이익은 180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무려 7배 늘었다. 농심이 1분기에 낸 영업이익 증가분 294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미국법인의 영업이익 증가분이다.
농심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제2공장을 건설하며 생산량을 크게 확대했는데 현지 수요가 공급량을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에 따르면 현재 미국 1·2공장의 가동률은 모두 70%를 넘었다. 현지 유통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완전 가동 상태나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증권사도 농심의 미국 사업을 낙관하고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농심의 북미법인 매출 고성장 흐름이 인상적이다”라며 “앞으로 미국 라면 수요의 높은 성장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 이유로 미국의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15개)이 아시아 주요 라면 소비 국가인 중국(32개), 인도네시아(52개), 일본(48개), 한국(77개) 등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판매의 성장 여력이 높다는 점을 꼽았다.
경기 불황도 농심에게 호재다.
인플레이션 탓에 미국의 소비경기가 둔화하면서 라면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키움증권의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라면만한 식품이 드물다는 것이다.
농심뿐 아니라 여러 라면 제조 회사들이 주력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라면 판매 성장세는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농심의 미국 제3공장 건설 검토는 속도 측면에서 주목받는다.
농심은 지난해 상반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제2공장을 건설했는데 1년 만에 공장 추가 설립 카드를 꺼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만약 농심이 제3공장 증설에 나서게 된다면 이병학 사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은 농심의 대표적 생산 전문가다.
1985년 농심에 입사해 37년가량 일하며 구미공장장과 안양공장장 등을 거쳤다. 농심 공장의 자동화와 최첨단 생산공정 도입에 기여했고 2017년부터 생산부문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런 역량을 인정받아 2021년 말 실시된 농심 임원인사를 통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당시 그의 대표 발탁을 놓고 농심에게 생산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농심은 당시 미국 제2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었는데 얼마나 빨리 새 공장의 생산을 안정화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여러 생산을 관리해본 경험이 있는 이 사장이 새 대표를 맡을 적임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이 사장은 농심의 기대에 부응하며 제2공장을 미국 현지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는 생산기지로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성과 덕분에 이 대표는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농심이 앞으로 제3공장 설립을 가시화한다면 다시 한 번 이 대표가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농심은 아직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여러 이유에서 제3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제3공장 건설을 공식화하겠다고 말하기는 이르다”며 “앞으로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 공장을 세운 뒤에도 우호적 업황이 지속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 출시한 제품이 잘 팔려 공장을 증설했지만 증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제품 소비 트렌드가 바뀌어 고전한 기업은 수없이 많다.
제3공장 건설이 확정된다면 미국 동부에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농심이 미국에 보유한 제1공장과 제2공장 모두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다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고 농심 관계자는 전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3월 농심 대표이사에 공식 취임한 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농심의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박준 부회장과 함께 공동대표로 회사를 이끌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마지막으로 11년 만에 농심 대표이사에서 내려오면서 이 사장은 홀로 농심을 이끌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