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사진)이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흑자 중심의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컬리에게 그만큼 올해 흑자 전환은 중요한 과제다. 사진은 김 대표가 2022년 5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新)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축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김슬아 컬리 대표이사가 흑자를 위한 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컬리에서 가끔, 조금씩 장을 보는 일반 회원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컬리를 이용하는 충성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이런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새 회원 유치에 공을 들이기보다 충성 고객에게 더 잘해주는 것이 회사의 손익 향상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14일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컬리가 올해 초 상장에 실패한 뒤 경영 기조를 180도 바꾼 것으로 파악된다.
컬리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성장성 증명에 가장 집중했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거래액을 늘려 ‘컬리는 계속 성장하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 기조에서 선회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규 고객을 모으기 위한 할인쿠폰이나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한 고객에서 가격을 할인해주는 장바구니 할인쿠폰 등의 발행을 최소화한 것이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컬리가 기업공개 계획을 철회한 뒤부터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며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거래액을 늘려보겠다는 경영진의 과거 판단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슬아 대표는 대신 충성고객들을 위한 마케팅을 늘리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컬리는 최근 ‘샘플러’라는 상품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샘플러는 한 품목을 놓고 다양한 제조사나 브랜드, 매장의 제품을 조금씩 담아 하나씩 맛볼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컬리는 3월에 유명 베이커리 6곳의 식빵을 한 데 모은 ‘식빵 취향 찾기 샘플러’를 내놓은데 이어 4월에는 참기름·들기름 샘플러를, 최근에는 커피 원두 샘플러를 출시했다.
샘플러 판매가 특이한 것은 우선 판매 대상을 ‘러버스’ 고객에게 한정했다는 점이다. 러버스는 컬리에서 매달 얼마를 구매했는지 실적을 보고 구매 금액에 따라 분류되는 회원 등급을 말한다.
전월 결제 금액이 최소 15만 원 이상 돼야만 러버스의 최하위 등급인 ‘프렌즈’ 등급이 될 수 있다. 30만 원 이상이면 ‘화이트’, 50만 원 이상이면 ‘라벤더’, 100만 원 이상이면 ‘퍼플’ 등급을 부여받는다. 러버스의 최상위 등급은 ‘더퍼플’인데 전월 구매 금액이 150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
컬리는 최근 매달 내놓고 있는 샘플러 상품을 러버스에게 약 1주일 동안 우선 판매하고 있다. 이후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를 전환하며 모든 상품이 품절되면 판매를 중단한다.
러버스 고객을 노린 특별 프로모션이라고 볼 수 있다.
컬리가 이런 정책을 쓰는 것은 결국 모든 고객에게 돌아갈 혜택을 미리 충성 고객에게만 선보임으로써 플랫폼에 대한 종속 효과를 더욱 높이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케팅비를 많이 쓰지 않아도 충성 고객들에게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 마케팅이기도 하다.
충성 고객 챙기기는 비단 샘플러 출시 전략에서만 엿보이는 것이 아니다.
컬리는 최근 수도권 2천~3천 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 20곳을 선정해 감사편지와 함께 감사선물을 보냈다.
컬리는 이 편지에서 “고객님이 거주하고 계신 곳은 전국에서 컬리 주문을 가장 많이 해주신 아파트 단지 20곳 가운데 하나입니다”라며 “보내주신 많은 관심과 애정에 보답하고자 20개 아파트 단지 입주민분들만을 위한 선물을 보내드린다”고 적었다.
컬리가 소수 단지를 대상으로 깜짝 선물을 증정한 이벤트를 진행한 것 역시 충성 고객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 가운데 하나로 파악된다.
구매 데이터를 통해 컬리를 꾸준히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많이 사는지 파악한 뒤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선물을 보냄으로써 ‘여태껏 그랬듯 앞으로도 컬리를 잘 이용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슬아 대표가 올해 유난히 충성 고객을 특별하게 챙기는 배경에는 회사의 이익체력을 다져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컬리는 지난해 8월 한국거래소에서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승인받았으나 약 넉 달 뒤인 올해 1월4일 상장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기업공개 시장에 한파가 찾아오면서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유치할 때 받았던 기업가치에 한참 못 미치는 몸값이 거론된 탓이다.
컬리가 2021년 12월 한 사모펀드에서 투자금을 유치할 때 받았던 기업가치는 4조 원이었다. 하지만 상장 과정에서 거론된 컬리의 기업가치는 약 1조 원 안팎이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느냐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탓에 컬리 상장이 무산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컬리는 창사 이래 지난해까지 8년 연속으로 적자를 지속했다.
이런 흐름들을 살펴보면 김 대표가 올해 컬리를 흑자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은 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컬리는 기업공개를 철회할 당시 “상장은 향후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재추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김 대표가 흑자를 내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목표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기존 투자자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김 대표의 수익성 중심 경영 기조는 중요하다.
컬리는 최근 12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 투자를 유치하면서 흑자 전환과 관련한 중요한 옵션계약도 함께 맺었다.
컬리는 올해 말까지 연결 재무제표상 흑자를 내지 못한다면 전환주식의 전환비율을 기존 1대 1에서 1.85대 1로 상향하겠다는 데 합의했다. 흑자 전환을 하지 못하면 현재 받은 기업가치를 스스로 절반 수준까지 더 낮추겠다는 의미다.
컬리의 흑자 전환 노력은 내부에서도 관찰된다.
컬리는 창사 이래 현재까지 회사가 성장하면서 함께 일해왔던 파트너사 일부를 교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에는 수의계약 형식으로 일을 해왔다면 이르면 내년부터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