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22년여 만에 사상 최대치인 1.5%포인트까지 확대됐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 우려를 높이는 부분이지만, 연준의 통화긴축 속도 완화가 가시화된 부분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 한국은행은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자금 이탈보다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여기에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될 수 있다는 부담도 있기 때문에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한국은행 안팎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4월13일에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2월 회의에 이어 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 기준금리가 5.00% 상단으로 올라서면서 국내 기준금리와 역전 폭이 확대됐으나 국내는 부동산 구조조정 및 경기 둔화 등에 중심으로 두고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연준이 22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국의 기준금리를 1.5%포인트 웃돌게 됐다. 2000년 5월 이후 역대 최대 폭의 격차다.
게다가 연준이 추가로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돼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 폭을 새로 쓸 가능성이 있다.
연준이 이날 발표한 점도표(연준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치를 보여주는 도표)를 살펴보면 2023년 금리 전망치는 5.1%로 유지하고 2024년 금리 전망치를 기존 4.1%에서 4.3%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연준은 앞으로 한 번 0.25%포인트의 금리 인상이 남아있음을 시사했다”며 “2024년 말 점도표에서는 고금리를 오래 유지하고자 하는 연준위원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나 한국은행이 국내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내 경기가 이미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우려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침체를 한층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일 보고서 ‘한국 경제의 실속, 높아지는 경착륙 가능성’에서 현재 국내 경제 상황을 “수출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내수 활력이 약화되면서 경제성장 속도가 급감하는 국면에 위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바라봤다.
이에 현대경제연구원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물가 안정’보다 ‘성장 강화’에 두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경기 진작 기조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준이 공격적 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다가 최근 미국 은행들의 파산 사태로 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린 것처럼 한국은행도 금융 안정에 통화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시장에 침체기가 도래하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가 국내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의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은 2013년 이후 증권과 캐피탈, 저축은행 등 비은행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은 은행에 비해 자본여력이 낮은 데다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가 높아 사업성 악화로 인한 대출 부실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사업장의 수익성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경기 부진이 심화되는 경우 부실화되면서 관련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과 유동성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이에 한국은행은 연준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당장 금리를 따라서 올리지는 않고 누적된 금리인상 효과에 따른 시장 변화를 주시하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기준금리를 일곱 차례 연속으로 올려왔기 때문에 누적된 통화긴축 효과를 점검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이 총재는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면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서 금리동결 필요성을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 확대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이 국내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낮다고 바라보고 있는 점도 금리동결에 무게가 실리게 한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내외 금리차가 외국인 투자행태에 미친 영향은 뚜렷하지 않아 보인다”며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 유출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게다가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는 것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다.
연준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기존 성명서에 보이던 ‘지속적 인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약간의 추가적 정책 긴축’이란 표현을 넣었다.
이는 연준이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금리인상 기조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3월 FOMC에서 0.25%포인트 금리를 인상했지만 향후 은행권 리스크에 따른 신용여건의 긴축 등으로 금리 인상을 조만간 중단할 가능성이 시사된 것이다”고 내다봤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