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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외국인투자기업인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기업 최고 경영자(CEO) 오찬자리에서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We are here to stay(우리는 남기 위해 여기에 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GM이 박 대통령을 믿고 있는 것처럼 박 대통령도 GM을 믿어 달라”며 ‘한국 철수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GM의 행보는 박 대통령의 믿음을 얻을 마음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GM은 마치 한국시장 ‘철수’라는 카드를 흔들며 박근혜 정부가 내밀 수 있는 모든 패를 얻어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호샤 사장은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자동차 규제를 신속하게 풀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박근혜 정부가 GM을 위해 베풀어준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당신들을 지원하기 위해서(Government is here to support you)”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정부는 그동안 GM에 대해 특혜에 가까운 지원을 해왔다.
지난해 5월 댄 애커슨 전 GM회장은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에게 통상임금 판결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며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통상임금 문제와 대북 상황을 가리키며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당시 박 대통령은 꼭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7달 뒤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통상임금 확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상임금 차액 소급과 관련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신의칙’에 위배돼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GM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준 셈이다.
얼마 전에는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한국GM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에 한해 짧게는 2~3년에서 최장 6년까지 안전·환경 기준 충족 시기를 유예해줬다. 특정 차량의 단종을 막기 위해 정부가 일괄 적용 기준 자체를 유예해 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파격적인 배려의 대가로 정부가 한국GM측에 요구한 기준은 사실상 없었다. 한국GM은 안전성제어장치 등에 대한 투자·개발 여부에 대해 ”유예 기간 이후 다시 논의해야 할 문제“라며 규제 면제가 연장되지 않으면 단종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근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한국GM은 아직까지 박 대통령에게 약속한 ‘한국시장에 머물기 위한’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신임 메리 바라 GM CEO의 ‘수익성’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는 모양새다. GM은 지난해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쉐보레 브랜드의 생산물량이 줄면서 한국GM 군산공장의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지자, 한국GM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군산공장 노조에 1교대제로 전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조와 여론의 비난이 이어지면서 일단 1교대제 전환 계획은 철회했으나 어떤 식으로든 수익성 제고를 위한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GM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군산공장에서 인력 감축이 이뤄지면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 역시 안심할 수 없다. 한국GM은 박 대통령에게 했던 약속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모든 패를 내 주어도 이 게임에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