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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3월] 삼성전자 '30년 메모리 세계 1등' 무너질 수도 있다

박창욱 산업부장 cup@businesspost.co.kr 2023-03-0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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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위력이 엄청나다. 그 피해도 어마어마하다. 다만 경로가 어느 정도 예측은 되고 결국에는 지나간다. 

반도체 업황 악화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1월에 이어 2월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반토막 가까운 수준으로 줄었다. 수요가 줄면서 메모리 가격이 크게 하락한 영향을 받았다.
 
[데스크리포트 3월] 삼성전자 '30년 메모리 세계 1등' 무너질 수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세부조건에 담긴 앞으로 10년간 중국 투자 금지 조치를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모두 올해 메모리 사업에서 수조 원대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듯 메모리 업황은 언젠가는 회복된다. 올해 하반기든 내년이든 회복이 조금 빠르거나 더딜 뿐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숱한 업황 변동을 이겨내고 경쟁에서 살아남아 세계 메모리 1,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글로벌 경기 변동에 따른 메모리 업황 악화 정도에 쉽게 쓰러질 기업들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시행하는 반도체 지원법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지각 변동을 불러올 수 있다. 그 여파는 현재로선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중국과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탄생했다. 반도체 제조역량을 되살리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진흥)를 막아 미국의 경제 안보를 지키겠다는 목적이 있다. 

반도체 지원법은 미국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비롯해 527억 달러(약 68조 원)의 재정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래서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 재정 지원을 자신들이 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도체 지원법은 따지고 보면 안보와 힘의 논리에 따라 제정됐다. 이런 점을 반영하듯 지원금 부대 조건에 엄청난 독소조항이 가득 담겨 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재무 정보와 기술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영업 비밀과 기술을 미국 정부에 내보여야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도로 뺏어가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나 중국도 아니고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의 정부가 내건 조건이 맞나 싶을 정도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지나치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 제고라는 법의 목적에도 맞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면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 등 우려 대상국에 반도체 관련한 투자가 제한되는 조건(가드레일 조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생산한다.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 이상을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들고 낸드 생산량의 20%는 인텔에서 인수한 다롄 공장에서 생산한다.

반도체는 기술변화가 빠르다.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에 투자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도 버텨낼 도리가 없다. 

삼성전자는 1993년 이후 세계 메모리 1위 자리를 30년 동안 지키고 있는데 미국 정부의 향후 행보에 따라 자칫 1, 2년 안에 왕좌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런 위험을 피하고자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투자 부담이 커져 앞으로 경쟁에서 이기기가 힘들어진다. 미국 정부의 눈 밖에 날 위험도 크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20조 원 이상을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 계획을 짜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상황에 놓인 셈이다. 반도체 지원법은 한국의 두 대표 기업에게는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와 다름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서는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하기 위해 보조금 신청과 관련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줄타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회장은 2034년까지 총 1920억 달러(약 252조 원)를 들어 텍사스주에 모두 11곳의 반도체 공장을 더 짓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지렛대로 삼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가드레일 조항뿐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서 더 많은 예외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 역시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에서 미국에 220억 달러(약 29조 원) 추가 투자 의향을 밝힌 만큼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다. 전자전문매체 일렉트로닉스위클리의 보도를 보면 두 회사는 미국 마이크론과 함께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자칫 두 기업의 반도체 생산이 위축되면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공산이 큰 만큼 미국 정부와 협상에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글로벌 기업이라도 세계 최강 미국 정부를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 외교 협상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실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의 평택 공장을 방문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고됐던 일이다. 자유무역이 이뤄지던 세계화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지정학적 패권주의가 번지면서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는 국제 정치의 하위 개념 차원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미래에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은 중요한 변수가 됐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점점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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