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이 3일 서울 강남구 비즈니스포스트 본사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재야의 경제학자’ ‘노무현의 경제교사’로 알려진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이 10여 년 간의 침묵을 깨고 낸 책 ‘경제파국으로 치닫는 금융위기’가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 소장이 최근 출연한 삼프로TV 영상은 6일 기준 조회수 87만 회가 넘어섰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온 지 열흘도 채 안 됐지만 올해 삼프로TV에 올라온 200여 개 영상 가운데 압도적 차이로 조회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파국이라는 다소 자극적 표현을 제목으로 쓴 이 책이 시장의 큰 관심을 받는 데는 그만큼 경제위기를 향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이 크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최 소장은 왜 2023년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국의 경제파국을 예고했을까? 또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무엇을 제시했을까?
3일 서울 강남구 비즈니스포스트 본사에서 최 소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제는 심리적 변수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라 비관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 정확히 짚어주지 않으면 과거 어떤 때보다 더 심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최 소장은 왜 이렇게 자극적 제목의 책을 썼느냐는 첫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곤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최 소장이 자신 있게 2023년 금융위기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경제병리학’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경제병리학은 주류 경제학에는 생소한 분야지만 최 소장에겐 전문 연구분야다.
최 소장은 1990년대 IMF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경제학에도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경제병리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개념을 체계화하지 못했고 그로부터 20여 년 넘게 여러 연구를 거듭한 뒤 결국 2021년, 한국나이로 70세 되던 해, 경제병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 소장은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데 학점 받기도 쉽지 않고 박사 기준도 까다로워 심사 보는 교수들도 많은 고생을 했다”며 웃었다.
최 소장이 노무현의 경제교사로 이름을 알린 뒤 2000년대 한동안 이어갔던 집필과 언론기고 등 외부활동을 끊고 10년 넘는 기간 연구에 전념한 것도 이 경제병리학 때문이다.
경제병리학은 경제 현상을 병리학에 빗대 경제에 병적인 존재인 금융위기를 진단하고 예방하고 치료하자는 개념인데 최 소장은 지난해 국내 레고랜드 사태를 보며 경제병리학적으로 한국경제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했다고 한다.
최 소장은 “경제병리학에서는 신용파괴원리가 중요한 개념인데 레고랜드 사태는 국가 전체 경제에서 봤을 때 아주 작은 2천억 원 규모의 채권 문제가 국가 전체의 신용경색을 야기한 신용파괴의 대표적 사례”라며 “이를 보고 이미 한국경제에 신용파괴원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신용파괴원리는 신용창조원리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시장에서 통화가 일부 줄어들면 이에 따라 유동성이 통화승수에 따라 몇십 배 더 빠르게 마르는 현상을 말한다.
최 소장은 그래도 글로벌 주요국 가운데 한국의 경제상황이 낫다고 바라봤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주요국의 경제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채우기 위한 강달러 정책, 중국은 부동산시장 거품 붕괴 위험, 일본은 초장기 저성장 등에 따라 2023년 경제 역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미국, 중국, 일본 등 글로벌 주요국의 경제가 무너지며 2023년 세계경제는 파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조체제가 절실하다고 봤다.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서 주요국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들었다.
최 소장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만 보더라도 미국이 주요 20개국 정상과 재무장관, 중앙은행장 등을 모아 우리가 달러를 풀고 기준금리를 내려 유동성을 풀 테니 이런 움직임에 동참해 달라고 세계 각국을 설득했다”며 “이를 통해 금융위기를 예상보다 빨리 극복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 1위와 2위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따른 유럽의 각자도생 등으로 글로벌 공조체제가 작동하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진단했다. 그만큼 글로벌 금융위기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이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 소장은 한국정부가 금융위기 극복에 최적화한 정책을 시행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를 위해서는 환율과 금리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한국이 금융위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환율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며 “정부는 고환율이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에 고환율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전형적으로 책상 위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교과서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고환율 시대에는 외국 바이어가 국내기업에 할인 등을 요구해 오히려 국내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때가 많았다. 반면 저환율 시대에는 국내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면서 수출이 늘어나는 흐름을 보였다.
최 소장은 “과거 사례를 통해 저환율시대 오히려 수출이 늘어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환율이 점진적으로 떨어지면 100달러짜리를 수출하던 기업은 150달러 혹은 200달러짜리 수출품을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며 “기업은 망하기 때문에 강하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자들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저환율 정책의 수혜는 명백한 반면 고환율 정책의 수혜는 모호했다.
환율이 낮으면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투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물론 기업의 구매력이 늘어 경기를 상승시키고 기업 경쟁력을 높여 수출도 늘어나게 되지만 높은 환율은 외국인 자금의 유출을 가속화하고 국내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저환율 정책이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수출을 늘릴 것이라는 최 소장의 믿음은 한국 국민과 기업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한다.
최 소장은 “한국 국민과 기업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다”며 “1990년대 국내에 해외 유통사들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국내 유통업체의 몰락을 예상했지만 지금 보면 국내 유통업체만 살아남았다. 이는 유통뿐 아니라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기업이 본격적으로 경쟁하면 최고의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과거 좌파 경제학자 평가를 받으면서도 노무현정부 시절 한국과 미국의 FTA(자유무역협정)에 찬성했다. 이때도 ‘기업은 망하기 때문에 강하다’는 논리로 보호무역주의를 펼치는 경제학자의 대척점에 섰다.
최 소장은 지금의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국내자금의 해외유출을 최소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조금 더 높이는 정책을 써야한다고도 주장했다.
공공요금 인상 등에 따라 물가가 쉽사리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더 커지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더 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기준금리를 미국보다 올려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 소장은 “경제병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 한국경제는 치료나 수술 없이는 회복이 쉽지 않은 상태”라며 “치료에는 불가피한 고통이 수반되는데 이를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는 다른 방법으로 보완해야 한다. 향후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미국보다 높은 수준의 기준금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정책 당국자들의 현실 감각도 지적했다.
최 소장은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비롯해 금융정책 고위 당국자들이 대부분 연방은행을 비롯해 기업경영 경험을 지니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기업 생리를 아는 정책을 펼치는데 우리는 기업 경영 경험 없이 책상에만 앉아서 정책을 짜니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최 소장은 인터뷰 내내 금융위기의 원인과 현상을 알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누누이 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책 당국자들을 향하는 말이기도 했다.
최 소장은 “원래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지금도 낙관적으로 본다. 지금 상황만 어렵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과 기업의 자질을 믿는다. 정책 당국이 숟가락을 얹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더욱 더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1952년생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이론을 개척한 재야의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1997년 IMF(국제금융기구) 외환위기를 예견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과외 교사로 활약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고하기도 했다.
최 소장은 이날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 내내 쉼 없이 세계경제 전망은 물론 한국경제를 향한 우려와 경제학을 향한 애정을 쏟아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일흔이 넘은 재야 경제학자의 손에는 누렇게 바랜 톰 피터스의 명저 ‘In Search of Excellence(초우량기업의 조건)’이 원서로 들려 있었다.
최 소장은 “나온 지 꽤 됐지만 지금도 많이 읽히는 굉장히 유명한 책이다. 영어 표현이 판을 거듭할수록 최신 표현을 담고 있어 영어공부도 할 겸 읽는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