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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이강운 holoce@hecri.re.kr 2023-02-0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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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 뿔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가 며칠째 똥을 누지 못해 열이 오르고 배가 아파 쩔쩔매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수분이 부족할까 봐 물도 자주 마시게 하고 음식물 소화를 도와 줄 유산균도 먹였지만 낑낑대며 힘들어할 뿐이고 몇 번 고생하더니 이제는 화장실 가기조차 두려워해 사태는 심각해졌다. 

속 타는 딸을 대신해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귀 동화부터 마법 같은 단어 '똥'과 소똥구리가 어떻게 사는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방귀 동화에 빵 터진 손녀는 자연스럽게 똥과 소똥구리에 관심을 보였다. 

"소똥구리는 똥을 먹고 살아가야하는데 좋은 똥이 부족해 이 세상에서 점차로 없어지는 거야. 혜랑이 똥이 필요한데 좀 도와줄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너의 용기가 필요해. 똥을 부탁해!" 
 
[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 왕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신기하게도 다섯 살짜리 손녀는 멸종위기곤충 소똥구리를 이해했고 멸종위기종에 대한 할아버지의 진심을 안 듯, 엄청난 양의 묵은 똥을 2차례에 걸쳐 한 바가지, 또 한 바가지 잘 싸줬다.

소똥구리 덕분에 사랑하는 손녀의 변비를 해결했다. 자기가 소똥구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손녀가 대견했고 그날 이후 손녀는 자신의 똥으로 소똥구리 밥을 주면서 키우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해한다. 
 
똥이 밥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보통 똥은 더럽고 악취 나는, 거북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배설을 못 하고 오랫동안 꽉 막혀있거나, 참을 수밖에 없던 경험을 한 사람이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안다.

얼마나 큰 걱정거리면 불교에서 화장실을 '근심을 해소하는 해우소(解憂所)'라 했겠나. 병원에서 제일 먼저 하는 기초 검사가 소변, 대변 검사인 까닭도 배설물이 바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식단이나 먹는 양에 따라 대변의 양은 더 많아질 수도, 더 적어질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식습관을 가진 한국인의 하루 배설 양은 200g 정도. 우리나라 인구를 어림잡아 계산해도 5천만 명, 하루에 대략 1만 톤의 똥이 배설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똥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되어 어디로 가는 걸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변 처리는 골칫거리였다. 

몸에서 나온 똥은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 순간 사라진다. 정화조에 잠시 모였다가 미생물로 정화한 후 분리 배출하여 오·폐수 처리장에서 분변 찌꺼기를 잘게 부수고 소독하면 어느 정도 맑은 물로 돌아온다.

과정 과정마다 전기는 기본이고 물과 미생물 화학약품을 사용하며 분리, 정화하는 데 막대한 돈과 기술, 에너지가 들어간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 창뿔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선진국에서만 나름 청결한 정화 과정을 밟지 아직도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의 많은 지역은 낙후된 화장실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니 불결한 분변 처리 과정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의 온상이 될 것이다.

길거리 여기저기에 쌓인 똥에다 마음 놓고 똥을 눌 수 없는 환경은 비데와 휴지로 만사 끝인 우리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문화적 충격이다.  

문화적 충격이야 극복할 수 있지만 목숨과 직결된 위생 문제면 ‘내 일’이 아니어도 끔찍하다.

2017년 발간된 'UN 세계물개발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1억 명 정도가 청결한 위생시설을 사용하고 24억 명은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쓰지만 약 10억 명은 아직도 노상 방뇨를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폐수의 80% 이상은 처리 없이 배출된다. 방치된 똥과 오줌은 돌고 돌아 인간이 마실 물에 이를 것이고,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물이 똥물로 오염되면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데 세계식량보건기구에서는 2025년까지 약 18억 명의 인구가 절대적인 물 부족이나 오염 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 뿔소똥구리와 편승 응애.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인간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 분변 처리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숲은, 강은 과연 깨끗하게 잘 있을까? 

지구에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동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도 사람처럼 매일 먹고 매일 싼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사는 자연 생태계는 분뇨 처리시설이나 정화시설이 없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의 산속에도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이 사는지 모른다. 담비, 다람쥐, 너구리, 멧돼지와 고라니 등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물은 가히 추정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이렇게 많은 동물이 싸는 똥을 누군가 치워주지 않으면 온통 동물의 똥으로 뒤범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매일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사람들은 향기 가득한 숲으로 산행하고 깨끗한 강을 찾아 물에 발을 담근다. 

동물들이 싼 똥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똥을 굴리는 딱정벌레라는 뜻의 소똥구리가 해결사! 소똥구리는 아무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6500만 년 동안 지구를 청소해왔다. 정해진 곳 없이 아무데나 싸는 야생동물의 똥을 냄새로 찾아다니며 보는 즉시 해체한다.

어떤 놈은 똥 덩어리를 둥글게 말아 멀리 굴려간 뒤에 땅 밑에 묻고(소똥구리, 왕소똥구리), 어떤 놈은 똥 밑으로 굴을 파 똥 덩어리를 옮겨 채워 넣고(뿔소똥구리, 애기뿔소똥구리), 또 어떤 놈은 똥 속에 굴을 만들어 그 속에서 직접 알을 낳아 똥을 먹어치운다(창뿔소똥구리).
 
[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 육식성 야생동물의 똥을 먹는 긴다리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똥구리가 먹어서 분해시킨 똥은 더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골칫덩어리가 아니고 오히려 땅을 기름지게 하는 천연의 거름으로 재활용한다. 

야생동물의 똥을 여러 형태로 저장하는 과정을 통해 소똥구리는 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돕는다.

똥을 지하로 끌고 들어가는 과정에 땅속을 갈아 공기를 통하게 하며 그 와중에 마치 농부처럼 똥 속에 있던 식물의 씨앗을 뿌리고 널리 퍼뜨려 토양과 식물의 건강을 유지하는 착한 일을 한다. 생태계 내의 필수적인 순환 고리의 연결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종이다.

소똥구리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도 한다.

야생동물의 똥에 가장 먼저 달려오는 놈은 파리 종류. 똥 먹는 집파리, 똥파리는 알 대신에 애벌레를 낳는 '난 태생'으로 알을 낳는 다른 곤충과 비교해 성장 속도도 훨씬 빨라 소똥구리의 강력한 경쟁자이다. 

파리 애벌레인 구더기에게 늘 똥을 뺏기기 일쑤인 소똥구리이긴 하지만 파리를 제어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소똥구리 배 쪽 가슴과 다리 연결 부위에 응애(편승 응애)를 태우고 다니면서 파리 애벌레인 구더기를 잡아먹게 하여 파리 발생을 막고 자기 먹이를 확보한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8천 종 멸종한 소똥구리, 환경과 경제 '파수꾼'
▲ 잡식성 야생동물의 똥을 먹는 소요산소똥풍뎅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결과적으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질병 매개충인 파리를 없애주니 인간의 건강까지 지켜주는 셈이다.

이뿐인가. 야생동물의 똥을 지하로 끌고 들어가 저장하니, 비가 올 때 똥물이 계곡이나 강으로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막아 수질을 지켜주는 특수한 임무도 수행하고 있다.

단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이렇게 고마운 벌레가 어디 있을까.  

종류도 다양해 초식성, 육식성, 잡식성 야생동물의 똥에 맞게 식성도 맞춤형으로 다양하게 진화했다.

전기나 물, 화학약품을 사용해야 하는 공장식 공정이 필요하지 않은, 돈 한 푼 들지 않는 완벽한 천연의 살균 소독제며 정화처리 생물이다. 단지 소똥구리만 살게 해 주면 될 일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지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쇠똥구리 8천여 종이 멸종했고 현재도 진행형이어서 소똥구리가 무한 제공하던 생태계 서비스를 더 이상 받지 못할 미래의 재앙이 걱정된다.
    
우주의 법칙이 뭐 별 거 인가. 잘 먹어 채우고, 잘 싸서 비우고, 그 배설물을 청소하고 분해해서 자연으로 다시 잘 보내는 것이지. 그래야 사람의 몸도, 생태계도 세상도 건강한 법이거늘.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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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ica121
손녀의 이야기를 들어 유쾌한 분위기로 소똥구리의 필요성에 대해 풀어나가는 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동물의 똥이 넘쳐나는 산과 들은 어떨까 생각해보는 것으로도 소름이 돋는데요, 이미 지난 몇십년간 동물의 분변과 사체 분해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똥구리가 무려 8000종이나 멸종해 있었다니, 절로 납득이 될 정도입니다.
이제 멸종하지 않은 소똥구리도 얼마 남지 않은 세상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중요성을 깨닫
   (2023-02-04 23:31:21)
mopsus
지구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소똥구리들이 이미 많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큽니다. 배설물로 인한 질병도 막아주고, 사람과 동물의 식수에도 도움을 주고, 파리의 발생도 억제하는 귀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네요.
사람들이 소똥구리에 대해 관심없는 동안 소똥구리는 각 종류마다 역할을 나누어서 지구를 청소하고 있었고, 그 효과는 이루말할 수 없네요.
   (2023-02-04 07:5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