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미분양 물량 해소를 위한 ‘눈물의 마케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미분양 물량 해소를 위한 ‘눈물의 마케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미분양이 속출하자 건설사 등이 고비를 넘기려 파격적 혜택을 약속했던 모습이 이번에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
24일 부동산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2023년에도 부동산 시장의 '한파'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미분양 털어내기'를 서두르면서 각종 혜택을 내건 단지가 늘고 있다.
이날 대구 서구 내당동 두류 스타힐스 아파트는 분양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할인분양[선착순 분양중]’ 팝업창이 뜬다. 분양가의 10%를 할인해 줄 뿐 아니라 올해 1월 들어서는 선착순 계약자에 축하금 400만 원 현금 지급도 내걸었다.
서울에서도 악성 미분양 단지를 중심으로 할인분양, 현금지급 등 파격적 마케팅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 구로구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 아파트는 지난해 8월 분양 뒤 반년 동안 털어내지 못한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 현금 3천만 원 지원 혜택을 내놓았다. 심지어 계약을 해지해도 회수하지 않는다는 조건까지 붙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에 나선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도 지난해부터 최대 15% 할인분양을 감행해왔다.
건설부동산업계 안팎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아파트 물량은 지난해 말 기준 이미 6만 가구를 넘어서면서 2008년 금융위기 뒤 발생한 대량의 미분양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의 청약경쟁률 통계 자료를 봐도 올해 1월 분양에 들어간 우방건설의 송도역 경남아너스빌, 대광건영의 양주 대광로제비앙 센트럴, 태영건설 컨소시엄의 익산 부송 데시앙 공공분양주택이 모두 1·2순위 청약에서 미달됐다.
가장 미달이 많은 익산 부송 데시앙은 ‘국민 평형’이라는 전용면적 84㎡ 유형으로만 727세대를 모집함에도 133건 접수에 그쳤다.
대형 건설사들도 시장 침체에 뾰족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힐스테이트 동대구 센트럴 아파트 478세대 분양에 나섰지만 청약 접수자가 28세대에 그쳤다. 대구는 현재 전국에서 미분양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DL이앤씨와 코오롱글로벌의 평촌 센텀퍼스트도 11일까지 진행한 1150세대 분양에 접수건수는 350세대뿐이었다.
부동산시장 거래절벽으로 시장을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는 점도 큰 부담이다.
자재값 등 비용 상승으로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기가 어려운데 주변 아파트값이 거래절벽 속에 계속 내리면 분양 수요는 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사례만 보더라도 주변 송파구 대단지 아파트 헬리오시티 등의 매물가격이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둔촌주공 분양가와 비교하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 KB부동산은 10여 년 전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됐던 부동산시장과 현재 부동산시장을 비교분석한 글에서 “거래절벽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에 따라 이번 부동산 하락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보다 하락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금융위기 뒤 부동산 불황기에 서울 아파트 거래가 가장 적었던 2012년 거래량은 4만1079건이었다. 그런데 2022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1983건으로 그때의 4분의 1 수준이다.
물론 현재의 미분양 물량은 전국 미분양 주택이 16만5599가구에 이르렀던 2008년 12월 당시보다는 훨씬 적다.
다만 국토교통부가 위험 수준으로 봤던 6만2천 가구에는 이미 다가섰다.
금융위기 때도 시장이 본격적으로 얼어붙자 1년 사이에 전국 미분양 물량이 47.5%, 서울 미분양 물량은 447.6% 급증했다.
부동산 조사업체 리얼투데이가 24일 발표한 자료를 봐도 2022년 서울 아파트 입주·분양권 거래량은 68건에 불과해 역대 최저 수준을 보였다. 서울 아파트 입주·분양권 거래는 2007년 이후 2019년까지 네 자리수를 보이다 2020년 894건, 2021년 264건으로 급격히 줄었다.
이는 아파트 분양매물 매수심리가 그만큼 얼어붙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건설사들은 올해 다시 고개를 드는 미분양 ‘공포’ 대응에 바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2008년에는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늘어나면서 건설사들이 TV홈쇼핑에까지 진출해 아파트를 팔았다. 그 뒤 2015년까지도 미분양 물량을 털기 위한 홈쇼핑 마케팅이 왕왕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9년 12월 분양에 나서 2013년 4월 입주까지 미분양 단지로 남아있던 두산건설의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2013년 CJ오쇼핑 채널에서 파격적 조건을 걸고 판매에 나섰다.
당시 방송에서는 ‘9억짜리 최고급 새 아파트를 전세금 1억5천만 원에 3년 동안 살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계약 철회가 가능! 전세금도 다 돌려준다!’는 홍보문구를 붙였다. 또 사는 동안 시공사가 관리비를 모두 내주고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과 가구까지 제공했다.
미분양 물량 해소를 위해 해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판매활동까지 벌였다.
GS건설은 2009년 미국 뉴욕과 뉴저지 등의 교포 등을 대상으로 서울 서포구 반포자이 아파트 판촉활동을 펼쳤고 롯데건설은 서울 중구 회현동 롯데캐슬 아이리스 미분양 물량을 두고 미국에서 판매광고를 진행했다.
삼성물산은 2009년 7월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입주를 앞두고 해외교포들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