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랜1.5가 내놓은 ‘고장난 배출권거래제, 쟁점과 대안’ 보고서를 보면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었으나 배출권거래제 할당대상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었다. <플랜1.5> |
[비즈니스포스트] 국내에서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할당량 조정, 최저가격제 도입 등 방안도 제시됐다.
4일 기후환경단체인 플랜1.5가 내놓은 보고서 ‘고장난 배출권거래제, 쟁점과 대안’을 보면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대상 기업들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5년 5억4천만 톤에서 2020년 5억5천만 톤으로 늘었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부가 배출권을 할당해 할당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도록 하고 배출권의 여분이나 부족분을 기업 사이에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2015년부터 시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배출권 할당대상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내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78%에서 85%로 증가했다.
플랜1.5는 배출권 할당대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및 비중 증가를 놓고 “2020년 코로나19에 따른 경기둔화 효과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산업 부분의 온실가스 감축에 배출권거래제가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배출권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이익까지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평균 배출권 가격을 2015~2017년 구간에서는 2만 원, 2018~2020년 구간에서는 2만5천 원으로 가정하면 배출권 거래로 포스코는 1175억 원, 삼성전자는 237억 원 수익을 냈을 것으로 추산됐다.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인 시멘트업계에서는 2018~2020년 사이 쌍용양회, 한라시멘트, 삼표시멘트 등을 모두 합쳐 2140억 원의 배출권 거래 수입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배출권 거래로 이익을 보는 데는 과도한 배출권 할당 및 감축사업 인정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단일기업으로는 가장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포스코를 보면 2015~2017년 사이 1340만 톤 규모의 배출권 잉여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플랜1.5는 “포스코의 경우 배출권거래제가 운영된 6년 동안 2018년을 제외하고 배출권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며 “배출권 거래를 통한 초과 수익의 원인은 환경부의 느슨한 사전할당, 포스코가 신청한 조기감축 실적에 과도한 승인, 온실가스감축목표(NDC) 변경에 따른 추가할당, 사업경계 변경을 통한 편법적 보너스 배출권 획득 등이다”라고 바라봤다.
기업의 잉여 배출권 대부분을 한국남동발전 등 5개 발전공기업이 구매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회피, 전기요금에 배출권 구매비용 전가 등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도 지적됐다.
플랜1.5는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 5개 발전공기업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통해 발전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대신 저렴한 배출권 구입으로 온실가스 배출규제를 이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며 “발전공기업의 배출권 구매비용은 80%를 한전으로부터 정산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기요금에 전가된다”고 설명했다.
배출권거래제의 개선을 위해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 강화에 따른 배출권 할당량 조정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고려한 유상할당의 대폭 확대 △최소한의 온실가스 감축 유인 제공을 위한 배출권의 최저가격 도입 △전환부문 감축 촉진을 위한 석탄발전총량제 등 방안 구체화 △배출허용 총량 산정방식의 근본적 전환 등 방안이 제시됐다.
플랜1.5는 특히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관련해 “제도 도입과 함께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제에서는 무상할당이 점진적으로 폐지된다”며 “국내 수출기업이 탄소 관세를 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유럽연합과 한국의 배출권 가격 수준, 업종별 유상할당 비율 등을 고려해 국내 유상할당 비중을 현행 10%에서 유럽연합 수준으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