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과거 많은 한국기업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애를 먹었다. 국내 제조기업들이 조금씩이나마 입지를 다져가는 것과 비교해 유독 IT 서비스분야로만 가면 필패였다.
우선 미국의 법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성급하게 진출한 것이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자본주의 본고장 미국의 M&A 계약은 그 복잡도가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국내 M&A 계약의 계약서가 10장 안쪽이라면 미국은 많으면 100장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한 경우가 있다. 여기저기 숨어있는 다양한 독소조항을 걸러내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전하게 매물을 인수했다고 하더라도 기존 경영진이 한국기업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을 때가 많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해당기업을 100% 인수해버리면 창업자와 핵심인력이 빠져나간 껍데기만 쥐기 일쑤였다.
어느 분야든 그렇겠지만 특히나 1등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IT 서비스분야에서 현지의 지배적 경쟁자들에게 정면 도전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한때 네이버와 함께 양대 플랫폼으로 손꼽혔던 다음의 2004년 라이코스 인수다.
다음은 라이코스를 100% 인수했으나 미국 토종 검색엔진 야후, 구글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11년 라이코스를 인도의 한 기업에 헐값에 매각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은 대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미국 현지에서는 돈을 싸들고 오는 한국 IT 서비스기업을 만만한 상대로 인식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2022년 10월에는 네이버가 미국의 한 패션중고거래 플랫폼의 지분 100%를 2조 원에 인수하면서 한국 IT 서비스기업이 미국에서 저지르는 또 다른 실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며 많은 투자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네이버는 과거 선배들의 사례에서 배운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네이버는 우선 미국 시장에서 여러 해 동안 현지 적응기간을 거쳤다.
2016년 미국 자회사를 설립한 뒤 2021년부터 미국 현지에 웹툰 플랫폼 ‘웹툰’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2년에는 네이버웹툰 본사를 미국으로 옮길 정도로 미국 시장 진출에 진심임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웹툰은 미국에 한국식 웹툰 생태계를 이식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의 매출이 한국 매출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월간활성이용자(MAU)로만 보면 미국이 1500만 명으로 한국 시장(약 1천만 명)을 넘어섰다.
또 2021년 취임한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와
김남선 최고재무책임자(CFO) 모두 해외 M&A 전문 변호사 경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네이버의 각오를 엿볼 수 있다.
최 대표는 국내에서 국제 M&A계약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율촌에서 관련 경험을 쌓았고 김 CFO는 아예 미국에서 모건스탠리, 맥쿼리자산운용 등을 거치면서 현지 사정에 밝다.
마지막으로 웹툰과 웹소설, 팬덤 플랫폼, 중고거래 등 현지의 지배적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과거의 실패사례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최수연 대표는 2022년 10월 포쉬마크 인수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네이버는 미국의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웹툰, 제페토, 위버스 등 다양한 버티컬 콘텐츠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로의 마케팅을 연결하거나, K콘텐츠의 인플루언서를 초청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남선 CFO는 "최근까지 콘텐츠와 커머스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그간 투자하지 못했던 영역에 대해 시도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미국이라는 상징적 시장에서 IT 서비스기업으로서 입지를 만들기 위해 사운을 걸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영어권 시장, 나아가 전 세계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행보는 미국의 IT 서비스기업인 구글과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한국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는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도 볼 수 있다.
검색엔진과 전자상거래, 콘텐츠라는 각각의 분야에서 네이버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있는데 실제로 특정 분야에서는 네이버의 영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에 새로운 시장에서는 그들의 본거지인 미국 시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수를 냈을 수 있다.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기업의 노력이 빛을 볼 수 있을까?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녹색 깃발이 휘날리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