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한산림비기'라는 예언서를 보면 금강 쪽을 최고의 도읍지 터라 했다. 지금의 세종시 일대이다. 금강과 주변의 산들이 뛰어난 형세를 이룬다. 사진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세종 정부청사. 멀리 굽이쳐 흐르는 금강이 보인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 국가의 수도를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심장과 뇌라 할 수 있습니다. 수도는 뇌와 심장의 기능을 아우르는 역할을 합니다.
뇌에 뿌리를 둔 신경과 삼장에서 나온 혈관은 온몸에 뻗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수도에서 결정되거나 이뤄지는 국가 대사도 모든 국민의 삶에 두루 영향을 미칩니다.
국가대사를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풍수학에 따르면, 산천의 기운은 사람의 정신과 마음과 뜻에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국가대사의 결정과 실천에도 어떤 작용를 합니다.
'삼한산림비기'라는 아주 독특한 예언서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 누가 썼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설에는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저작이라고 합니다. 삼한산림비기에 나오는 지명 중에는 고려시대의 지명이 많은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저작물로 보입니다.
삼한산림비기는 우리나라 방방곡곡 여러 고을들의 산천 형세와 기운을 살펴보고, 이 산천의 영향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밝혔습니다. 그 고을들 중에는 옛 도읍지들과 장차 도읍지가 되리라 예견한 곳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도읍 터로 가장 좋은 곳으로 금강을 꼽았습니다. 두번째로 좋은 곳은 한산, 세번째는 송악이라 평했습니다. 송악은 고려의 수도 개성의 주산이고. 한산은 지금의 북한산입니다. 그리고, 세종시는 금강가에 있습니다.
삼한산림비기에는 금강변 도읍 터에 대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계룡산 아래 금강가에 도읍 터가 있다.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이씨 왕조의 도읍지에 비해선 좀 짧게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밝고 정의로운 군주가 계속 연달아 나오고, 현명한 신하들과 지혜로운 장수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또, 훌륭한 종교인 지식인 문인 예술가들이 많이 나와 아름다운 풍속과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보기 드문 일이다.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이렇게 보기 드문 일이라고 두 번이나 감탄을 반복하며 계룡산 아래 금강가의 도읍 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계룡산 아래 금강가라는 구절에 대해선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계룡산 아래의 금강가라는 해석이고, 두번째는 계룡산 아래와 금강가라는 해석입니다.
첫번째 해석으로는 세종시가 그곳이고, 두번째 해석으로는 세종시와 계룡산 가까운 어딘가 두 곳을 아울러 하나의 도읍지로 예견한 게 됩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금강변 어딘가를 우리나라 최상의 도읍터로 꼽았으며, 행정부의 중요기관들이 옮겨와서 세종시가 제2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됐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세종 정부청사터는 우리 남한에서 세 번째로 큰 강인 금강가에 자리잡은 득수국의 명당입니다.
뒤의 주산은 원수산이고, 청룡은 원수산에서 전월산까지 뻗어간 산줄기입니다. 백호는 국사봉에서 금강으로 뻗어간 산줄기가 안쪽의 내백호이고, 그 뒷쪽에 무학산 장군산 등이 솟아올라 외백호가 되었습니다.
앞에 있는 금강은 다정하게 감싸주는 형상으로 활처럼 휘어져 흐르고, 금강 건너편에는 비학산 일출봉 등 수려하게 생긴 안산들이 줄지어 솟아 있습니다. 그 모습이 모두 단정하고 아름답습니다.
안산들 뒤로는 갑하산 금병산 계룡산 등이 장막처럼 높이 솟아 있습니다. 앞에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겹겹으로 펼쳐진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습니다.
주산인 원수산은 아주 단아하게 생긴 삼각형의 산인데, 그 이름처럼 대장군 대원수의 기상을 품었습니다. 앞에 수많은 산봉우리가 도열해 있으니, 마치 대원수가 휘하 장졸들의 사열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정부청사 터를 둘러싼 산세는 유순하고 수려한데다 생기가 넘칩니다. 높은 산들은 자태가 유장하거나 중후하고 후덕하며 의연합니다. 흉하게 생긴 산이 하나도 없어 밝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 넘칩니다.
정말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 아주 많이 나올 곳입니다. 그래서 삼한산림비기의 저자는 아름다운 풍속과 문화를 활짝 꽃피우리라 예견했던 것입니다.
또, 여기는 경제력을 발휘할 기운도 매우 크게 서려있는 곳입니다. 큰 강물이 감싸주는데다, 하류쪽으로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은 가까이만 보입니다. 강 양쪽에 산들이 겹겹으로 솟아 있어 시야를 막기 때문입니다.
오는 물은 멀리까지 보여도 좋습니다. 그러나 가는 물이 멀리까지 보이는 것은 안 좋습니다. 기운이 잘 모이도록 보호하는 산이 없어 간간이 기운이 크게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는 경제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서울의 한강은 물이 흘러나가는 모습이 아주 멀리까지 보입니다. 강가에 산이 없어 김포 파주 쪽으로 물 나가는 모습이 훤하게 보입니다. 한강의 기운을 크게 받아 우리나라가 부강해졌지만, 한강 하류의 모습 때문에 아이엠에프 사태같은 곤경을 겪기도 했습니다.
세종 정부청사 터의 청룡 끝자락인 전월산은 거대한 노적처럼 생겼습니다. 앞쪽의 조안산들과 하류 쪽의 산들 중에도 노적처럼 생긴 산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산들이 금강과 함께 세종시에서 큰 경제력이 발휘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청사 터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주산인 원수산 양 옆이 너무 낮고 허하여 여기로 바람이 들이치고 기운이 흩어지는 게 단점입니다. 또, 뒤에서 원수산을 받쳐주고 응원할 높은 산이나 산맥이 없는 것도 흠입니다. 이런 형상이면 주산이 주인 역할하기가 힘에 부칩니다. 옥에 티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수도는 가장 크고 중요한 국가 대사를 총괄하는 곳이니,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길을 빨리 찾으면 좋겠습니다. 류인학/자유기고가, '문화일보'에 한국의 명산을 답사하며 쓴 글 ‘배달의 산하’, 구도소설 ‘자하도를 찾아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