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나 기자 annapark@businesspost.co.kr2022-10-25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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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강원도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여파에 국내 채권시장이 살얼음판으로 변한 모양새다.
자방자치단체에서 보증한 초우량등급의 기업어음이 부도처리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채권시장 전반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자금 흐름이 막히자 금융당국은 시장 정상화를 위해 50조 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카드까지 꺼냈다.
▲ 강원도 레고랜드의 ABCP 부도 여파에 국내 채권시장이 살얼음판으로 변한 모양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시장 충격이 최소화되고 사태가 진정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몰린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1조6천억 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를 가동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들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레고랜드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ABCP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부동산 관련 ABCP는 물론이고 다른 일반 채권까지 영향을 받아 자금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차질이 빚어지는 현상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다.
레고랜드 ABCP는 강원도의 신용보강 덕분에 신용평가사로부터 'A1' 등급을 부여받았지만 결국 부도처리됐다. A1 등급은 기업어음증권, 전자단기사채(STB) 등 단기물에 부여되는 가장 높은 등급이다.
국채에 버금가는 안전한 상품으로 여겨졌던 탓에 레고랜드 ABCP의 채무불이행이 시장에 미친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시장에서는 "나라에서 보증한 채권도 부도가 나는 마당에 일반 회사채는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되며 채권시장 투자수요가 자취를 감췄다.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던 기업들이 목표했던 자금을 모으는 데 실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17일 4천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에 돌입했지만 2800억 원을 조달하는 데 그쳤다. 한국도로공사는 회사채를 발행해 1천억 원을 조달하려 했지만 투자자를 찾는데 실패해 전액 유찰됐다.
이 외에 한국가스공사, 인천도시공사, JB금융지주 등 기업들도 채권시장에서 목표했던 자금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모두 AA~AAA의 우량한 신용도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지만 채권시장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된 탓에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높은 신용도를 보유한 기업들도 자금 조달에 실패하자 비교적 신용도가 낮고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흑자도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특히 시장에서는 2020년 3월 발생했던 증권사 마진콜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부각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영향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자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추가증거금 납입 요구)이 발생했는데 증권사들이 대규모 마진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단기자금시장이 경색된 바 있다. 당시에도 증권사들의 흑자도산 우려가 나왔는데 금융당국 지원에 힘입어 사태가 진정됐다.
금융당국은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레고랜드 사태로 확산된 회사채 시장과 단기금융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유동성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50조 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방안을 내놨다.
2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가운데 1조6천억 원 규모의 가용재원을 우선 활용해 부동산 개발사업의 시공사 보증 PF-ABCP 등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이 운영하는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의 한도를 16조 원으로 상향하고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발행한 CP도 매입 대상에 포함해 부동산 PF-ABCP 관련 시장 불안을 안정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PF-ABCP의 차환 등으로 유동성 위기 우려가 나오는 증권사에는 3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기대수준이 잘 반영돼 50조 원을 웃도는 지원 규모가 책정된 데다 상황에 따라 추가 조치까지 예고된 만큼 이번 금융당국의 개입은 사태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반면 일각에서는 발행된 ABCP의 규모가 크고 대부분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해 주는 역할을 했으며 특히 부동산 PF-ABCP는 부동산 침체기에 접어들어 회복이 쉽지 않다는 시선도 나온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ABCP 발행금액은 159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고 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부동산 PF-ABCP 발행금액만 24조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기가 도래한 ABCP의 차환을 위해 새로 ABCP를 발행해야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에서 매입에 나설 투자자가 없고 시행사의 상환능력 부족으로 보증에 나선 증권사가 대신 갚아야하게 되면서 자금시장 악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