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언론들이 24일 신임 총리로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비백인 총리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BBC,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사임 의사를 밝힌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후임으로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이 유력해졌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내각책임제 국가로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로 자동 임명된다. 현재 다수당인 영국 보수당 대표 후보 등록이 이날 마감되는데 수낙 전 장관이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불출마 선언을 했다.
수낙 전 장관이 단일 후보가 된다면 별도의 절차 없이 바로 보수당 대표 겸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 총리가 된다. 1712년 초대 영국 총리인 로버트 월폴 이래 약 300여 년 동안 영국 총리는 백인들이 이어왔다.
1980년 5월에 태어난 수낙 전 장관은 만 42세로 1812년 로버트 젠킨슨(만 42년) 이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가 되는 기록도 가지게 된다. 전임자였던 트러스 총리는 47세였으며 영국에서 젊은 총리로 화제가 됐던 데이비드 캐머런과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취임 당시 44세였다.
수낙 전 장관은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지만 학력과 경력 면에서는 보수당의 전형적 엘리트 코스를 거쳐 온 정치인이다.
수낙 전 장관은 1980년 잉글랜드 사우스햄튼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긴 했지만 전통적 영국인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 인도계다. 전체 인구의 87%가 백인인 영국에서 흑인(3%)과 아시아인(6%)은 소수인종으로 분류된다.
수낙 전 장관의 가족사를 보면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펀자브 브라만(카스트 가운데 제일 높은 계급) 출신인 조부모가 동아프리카로 이주했으며 아버지는 케냐에서, 어머니는 탄자니아에서 태어났다. 이후 수낙 전 장관의 부모는 1960년대 영국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아버지는 국민보건서비스(NHS) 소속 일반의로, 어머니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로 근무했다.
수낙 전 장관은 영국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윈체스터 칼리지를 다녔으며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하고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으며 헤지펀드를 직접 창업해 운영하는 등 '엘리트'의 삶을 살았다.
수낙은 스탠퍼드대학을 다닐 때 부인 아크샤타 무르티를 만나 결혼했다. 아크샤타 무르티는 인도 IT 대기업 인포시스를 창업한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다.
수낙 전 장관은 7억3천만 파운드(약 1조1881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돼 영국 더 타임스의 2022년 영국 부자 명단에서 222위에 올랐다. 자산 대부분은 그의 부인이 보유한 인포시스 지분이다.
2015년 총선에서 의회에 입성한 뒤 2020년 존슨 총리의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차기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영국에선 장관들을 임명할 때 재무부 장관을 차기 총리로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장관 재임시절 수낙의 가장 큰 성과는 코로나19 대응이었다. 그는 영국 경제가 봉쇄로 큰 타격을 입었을 때 유급휴직 등 적극적 지원 정책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또 코로나19로 늘어난 빚을 갚아야 한다면서 법인세율 인상을 발표했으며 소득세로 분류되는 국민보험(National Insurance) 분담금률도 1.25%포인트 올렸다.
수낙이 재무장관이었던 당시 그의 정책은 당 안팎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낙과 반대로 감세정책을 펼친 트러스 전 총리가 사퇴하게 되자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수낙 전 장관은 보수당 내부의 지지세가 강하지 않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수낙 전 장관은 지난 7월 영국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초반 선두를 달렸으나 보리스 존슨, 페니 모돈트 등의 지지를 받은 트러스 전 총리에게 밀린 바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수낙 전 장관의 총리 부임에도 불과하고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영국 BBC는 이날 신임 총리로 수낙 전 장관이 유력하다는 보도를 하면서 그의 앞날에 관해 “깊이 분열된 정당, 치솟는 물가, 암울한 공공 재정 등 리즈 트러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으로 판명된 문제를 물려받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