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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영화 와일드처럼, 여성도 ‘혼자’ 모험을 즐기고 싶다

마녀체력 withbutton@icloud.com 2022-10-12 11: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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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영화 와일드처럼, 여성도 ‘혼자’ 모험을 즐기고 싶다
▲ 미국 3대 트레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 PCT 어소시에이션 >
[비즈니스포스트] PCT가 무엇의 약자일까?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특허협력조약’이라고 나온다. 엥? 법과는 거리가 머나먼 내가 그런 쪽에 관심 있을 리가 없다. 프로 사이클링 투어(PCT)라면 또 모를까.

지금 말하려는 PCT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의 약자다.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로, 캘리포니아 남부인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되어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진다. 즉 미국의 서부를 종단하는 것인데, 총 거리가 자그마치 4285km다.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9개의 산맥을 넘으며 해발 4009m까지 올라가야 한다. 2750m인 백두산 높이와 비교해 보시라. 일반인들은 가히 엄두를 내지 못할 극한의 장거리 트레일이라고 하겠다.

마녀체력인 나조차 꿈도 꾸기 어려운 이 트레일을 2012년, 미국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가 완주했다. 스물여섯 살에 인생의 총체적 난국을 맞은 그는, 자기 몸집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홀로 비틀비틀 PCT를 걷기 시작한다.

여성 혼자 3개월 넘게 험난한 도보 여행을 했으니, 얼마나 심신으로 처절하고 치열한 과정을 마주했겠는가.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에세이 '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를 써냈다. 자그마치 552쪽이나 되는 ‘벽돌 책’이다.

재미있긴 하지만, 책을 읽는 과정 또한 지극히 장거리이며 험준했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책을 읽지 못해도 충분히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금발이 너무해'로 잘 알려진 리스 위더스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와일드'가 2014년에 선을 보였다. 한창 캠핑과 트래킹에 관심이 많았을 때라, 당연히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를 보러 갔다.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풍광을 음미하며 홀로 걷는 주인공이 부러워 죽을 뻔했다. 영화관을 나서며, 남성 친구들은 대부분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듯이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유일한 여성이었던 나는 오히려 의지가 꺾였다고나 할까. 

길고 험준한 여정이니 힘에 부칠까 봐 자신이 없었냐고? 무슨 소리냐. 명색이 마녀체력인데, 스물여섯 살 초보자보다는 훨씬 낫겠지.

하나 친구들과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면 모를까, 혼자서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못 갈 것 같았다. 워낙 긴 거리이니 주인공처럼 혼자 야생 들판이나 산에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할 날이 많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런 환경에서는 뭐가 제일 두려울 것 같은가? 어둠? 상처? 곰? 식량 부족? 발톱이 빠지고, 벼랑 밑으로 등산화를 잃어버리고, 야생동물과 마주치면서도 끄떡없던 그가 공포심에 얼어붙는 장면이 나온다. 외진 숲속에서 낯선 두 남성과 마주쳤을 때다.

다가오는 남자들의 속마음이 뭔지 알 길은 없다만, 여성인 나 역시 겁에 질려 허둥대고 도망치는 주인공의 마음에 똑같이 공감했다. 역사, 사회, 심리 등등을 통틀어, 이제껏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내장된 본능 같은 거다. 

오래 전에 본 영화 '와일드'를 다시 떠올린 건, 얼마 전 원주에서 열린 WBC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WBC는 또 무엇의 약자일까? 또다시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세계 권투 평의회’가 나온다.

그건 당연히 아니고, Women’s Base Camp의 약자다. 여성들끼리 캠핑하면서 모험을 즐기는 아웃도어 커뮤니티인데, 나는 이번엔 강사로 참여했다. 젊은 여성들이 기획한 이 행사의 의의에 힘과 격려를 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녀체력 effect] 영화 와일드처럼, 여성도 ‘혼자’ 모험을 즐기고 싶다
▲ 여성의 트래킹을 주제로 한 영화 '와일드' 포스터.
거기 모인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금세 안면을 텄다. 여자들끼리 척척 텐트를 치고, 딱딱 저녁거리를 요리하고, 착착 캠프파이어를 했다. 다들 배꼽이 보이는 탑과 반바지 차림으로 맘껏 야외를 돌아다녔다. 풀밭에서 몸을 굴렀고, 엉덩이를 휘두르며 율동을 했다.

여성들이 야성과 자아를 맘껏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남성이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나이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수평적인 사람들끼리 모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난 한 젊은 여성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PCT 도보여행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혼자 가는 건 무서워서, 캠핑 경험을 쌓을 겸 좋은 동반자를 만나고 싶어 모임에 참가한 것 같았다.

히말라야나 몽블랑 트래킹을 할 때 관찰해 보니, 홀로 배낭을 짊어지고 씩씩하게 하이킹하는 남성들은 자주 마주쳤다. 혼자 다니는 여성 여행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굳이 머나먼 외국의 경우를 예로 들 필요가 없다. 남자 사람 친구 하나는 툭하면 1인용 텐트를 메고 깊숙한 산속에 들어가서 자고 온다.

언젠가 그를 따라 아침가리 계곡에서 비박을 한 적이 있는데, 과연 도시 소음과 먼지에 찌든 심신이 손톱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다 해도 나 혼자서 그런 경험을 갖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툭하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 그리고 직업과 분야를 막론하고 터져 나왔던 미투의 파도들. 그때마다 남성들은 어쩌면 속으로, 왜 그렇게 여성들이 예민하게 구는지, 질기게 반응하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원초적인 공포와 불안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대체 언제쯤이면 아무런 주저함 없이 여성 혼자 PCT 같은 트레일을 마음껏 거닐 날이 올 것인가. 하긴 동네의 평범한 산조차 어쩌다 평일에 혼자 오르면 오싹할 때가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좋은 해결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여성들은 ‘연대’의 길을 택한 것 같다. 여자들끼리 등산하고, 캠핑하고, 운동하고, 여행하고. 그 경험이 얼마나 편안하고 재미난지, 그 또한 남자들은 알 길이 없겠지. 마녀체력 작가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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