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력발전을 녹색산업으로 포함하기 위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놓고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K-택소노미 개정안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원자력발전을 녹색산업에 포함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놓고 유럽의 기준을 현저히 밑도는 국내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의 사용 확대가 여전히 세계적 추세인 만큼 한국의 원전이 국제사회로부터 녹색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1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는 K-택소노미 개정안을 연내 확정하기 위해 10월에 공청회를 여는 등 여론 수렴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이번 K-택소노미 개정안을 놓고는 환경단체 등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다.
국제 기후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20일 환경부의 발표가 나오자 “한국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등 친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기후 위기 대응보다는 원자력 산업계 먹거리 확보가 그 속내”라고 비판했다.
K-택소노미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로는 무리하게 원전을 녹색산업에 포함시키려고 하다보니 지나치게 낮은 인정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 꼽힌다.
에너지·환경 전문가단체인 ‘에너지전환포럼’은 20일 성명을 통해 “환경부가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기준을 제시해 K-택소노미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원전의 녹색산업 인정기준은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 시기와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분이다.
K-택소노미는 원전이 녹색산업으로 인정받는 조건으로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택소노미가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6년을 늦춰준 셈이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을 놓고는 EU-택소노미가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가동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계획’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달리 K-택소노미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K-택소노미 기준 녹색산업으로 인정받은 원전 사업이라도 유럽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원전 수출을 비롯해 해외 자금 유치 등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 각국이 택소노미를 통해 녹색산업의 인정 범위를 정하는 까닭은 금리 혜택 등이 주어지는 녹색금융의 투자처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유럽의 녹색금융 자본은 유럽연합이 정한 녹색산업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 K-택소노미만 녹색산업으로 인정하는 원전 사업에는 투자를 하기 어렵다.
네덜란드 연기금은 20일 K-택소노미를 놓고 국내 언론에 “EU의 기준에 못 미치는 기준이라 친환경으로 볼 수 없다”며 “연기금은 채권 투자를 할 때 반드시 녹색투자를 해야 하는데 한국의 원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원전을 녹색산업으로 인정하는 데 현저히 문턱을 낮춘 K-택소노미는 한국의 원전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도 원전 수출 관련 논란을 의식한 듯 20일 K-택소노미 개정안을 발표하며 발표 자료에 Q&A 형식으로 “EU-택소노미에 비해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원전 수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질문을 마련해 “EU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더라도 실제 원전 가동 시기는 2030년대 중반 이후라 사고저항성핵연료 등 조건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설명을 놓고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TBS라디오 ‘신장개업’에 출연해 “핵연료는 건전지 갈아 끼우듯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수주 단계부터 설계가 다르다”며 “2031년 전까지는 유럽연합에 원전 수출을 못 한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K-택소노미가 단순히 원전 산업을 넘어 한국 수출 경쟁력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도 동참하는 등 ‘RE100’이 세계적 추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RE100은 2050년까지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캠페인이다.
애플·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에 RE100 달성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유럽 등으로부터 녹색산업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원전으로 전력 비중을 높여 간다면 어느 시점부터는 서방국가로 수출길이 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