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보수적인 금융인들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패셔니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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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호 국민은행장 |
그는 언제나 자신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동그란 뿔테 안경을 착용하지만 그날의 룩에 따라 타이 폭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화려한 컬러 패턴의 행커치프와 양말로 포인트를 주는 이 행장의 구두는 굽이 닳지 않아 상자에서 막 꺼내 신고 나온 것만 같다. 좋은 옷을 잘 입을 줄도 아는 타고난 패션피플인 것이다.
패션에 관해서 할말이 많은 이건호 행장이지만 그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단 하나의 아이템을 꼽자면 단연 ‘윈저 칼라 셔츠’다. 윈저 칼라 셔츠는 ‘와이드 스프레드 셔츠’라고도 불리며 일반적인 셔츠 칼라보다 더 벌어진 100도 이상의 칼라가 특징이다. 100도 정도의 칼라를 ‘세미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 180도에 가까운 칼라를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윈저 칼라 셔츠’라는 명칭은 영국 윈저 공이 즐겨 입은 데서 유래했다. 조지 5세로부터 영국 국왕 자리를 물려받은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에다가 이혼녀인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윈저 공이 됐다. 윈저 공은 심슨 부인과의 로맨스만큼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스타일로도 유명한데 윈저 칼라 셔츠에 어울리는 ‘윈저 노트(두꺼운 매듭)’ 넥타이 매는 법을 고안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클래식한 늬앙스의 윈저 칼라 셔츠는 포멀한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매치하는 것이 좋다.
지난해 11월 이건호 행장이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위해 입고 나온 룩은 사건의 불미스러움과는 별개로, 탁월한 윈저 칼라 셔츠 매치를 보여준다.
흰색 윈저 칼라 셔츠에 진회색 ‘초크 스트라이프(분필로 선을 그은 듯한 줄무늬)'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을 매치하고, 회색 타이를 윈저 노트로 매줬다. 흡사 사진 속 윈저 공이 현실로 튀어 나온 듯하다. 여기에 페이즐리 패턴의 행커치프와 스트라이프 양말은 보라색으로 색깔을 맞춰 포인트로 활용한 점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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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저 칼라 셔츠를 입은 이건호 행장(좌)과 윈저 공(우). 윈저 칼라 셔츠에는 클래식한 늬앙스를 배가하는 포멀한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을 매치하는 것이 좋다. 칼라 각도가 넓어진 만큼 타이도 두껍게 윈저 노트로 매준다. |
지난해 7월 이 행장이 선임될 당시부터 이 행장의 패션은 논란거리였다. '파격적이다'라는 말부터 '은행장 품위에 맞지 않는다'는 말까지 여러 얘기가 나왔다. 그는 "안경 등 나의 패션에 대해 (외부에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옷은 주로 아내가 코디해준다. 또 일반 남자보다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패션의 파격 만큼이나 행장이 되어 불필요한 격식을 많이 깼다. 경영진 회의를 할 때 은행장이 입장해도 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회의시간에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하는 것 등이 그렇다.
이 행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국금융연구원과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등을 거쳤다. 내부 은행원 출신이 아니다 보니, 은행장이 됐을 때 처음에는 '낙하산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 행장은 최근 국민카드 고객정보 유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가 수리된다면 이 행장은 6~7개월이라는 짧은 재임기간을 끝으로 국민은행 수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우리나라 은행장 평균 임기인 2년은 물론, 윈저 공이 사랑을 위해 왕위에서 내려올 때까지의 재위기간인 10개월 22일보다 짧은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