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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순 Global Watch] 인생보다 인플레이션이 더욱 불공평하다

이공순  northtown@naver.com 2022-07-0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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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순 Global Watch] 인생보다 인플레이션이 더욱 불공평하다
▲ 물가가 뛰면서 직장인들에게 값싼 점심 뷔페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연합>
[비즈니스포스트] 낫 놓고 기역자를 아는 것은, 실은, 생각보단 매우 어렵다.

지난 1월24일 매우 재미있는 해외뉴스가 떴다. 조셉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 중에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진짜로 했다. “stupid son of bitch”. 그것도 기자에게 했다. 안주거리로 딱 좋은 가십거리이긴 한데, 굳이 따지자면 바이든에겐 신기한 일이 아니다.

바이든은 아소 다로 전 일본 재무상과 더불어 실언 혹은 망언 제조기로 원래 유명한 인물이다(아소 발언 중에 천고의 명언으로 남을 만한 건 “나이 많은 노인네들은 국가 부담 주지 말고 그만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가 있다. 정작 본인이 80대다). 바이든의 욕설은 국내에도 빠짐없이 보도됐다.

그런데 이 발언은 매우 놀라운 바가 있다. 선오브비치는 전혀 놀랍지 않은데, 그 발언의 맥락이 놀랍다. 이 욕설은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온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전후 발언을 다 보도하기는 했지만, ‘비치’에 목이 메어와서인지, 함께 튀어나온 발언은 그냥 지나치듯 인용하는데 그쳤다.

폭스뉴스 기자가 물었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바이든의 대답 : “아니다. 그것(인플레이션)은 큰 자산(great assets)이다. 이 멍청한 선오브비치야.”

인플레이션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그렇다면 바이든 정권은 인플레이션을 원한다는 것인가?

일단 당시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월까지만 해도, 바이든 정권은, 그리고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emporary)인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 발언을 할 당시 가장 근접한 물가지표(2021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7% 대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었다.

일시적인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물가 상승률은 낮아진다. 그러니 연준은 굳이 금리를 높이, 빨리 올릴 필요도 없다. 이게 정부와 중앙은행의 당시 공식 입장이었다(3월 중순까지도 이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만일 바이든의 말대로 선거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민주당 정권은 선거 때까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정책을 쓰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경제 정책의 관점에서는, 그리고 흔히 말하는 ‘시장’(market)의 관점에서는 바이든의 이 발언은 엄청나게 중요한 발언이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발언이었다.

왜냐하면, 11월의 중간 선거까지 정부는 팽창적 재정 정책을 쓰고, 연준은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쓸 것(이를 gradualism이라고 부른다. 그린스펀이 써먹었던 전가의 보도다)이라는 아주 명백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즉 기사의 중요성이 선오브비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이든 정권의 향후 정책 방향에 있는 것이다.

만일 필자가 기사를 썼다면, 제목을 “바이든, 인플레이션을 원해, stupid”라고 썼을 것이다. 정작 언론들은 비치에 눈이 돌아가서 이 사건은 가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게 안 보이다니, 이런 stupid.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선거에, 즉 지지율에 도움이 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재무장관이자, 전 연준 의장인 재닛 옐런.

미국 연준은 1년에 8번씩 통화위원회(FOMC)를 개최한다(90년대에는 연간 4번이었다). 여기서 금리를 비롯한 연준의 중요 정책들을 결정하는데 이 회의에서 나온 모든 발언을 기록한 녹취록이 회의 5년 뒤에 공개된다. 1996년 1월 FOMC는 표면상으로는 특별한 정책 변화가 없는, 평온한 회의였다. 그러나 녹취록을 읽어보면(이게 분량이 꽤 된다. 9명의 위원들의 이틀 회의 발언이라 발언 내용만 해도 100 페이지가 넘고, 첨부 자료까지 합치면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 이걸로 밥을 먹고 살거나, 아니면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들 아니면 읽지 않는다), 정말 놀라운 내용들이 숨어 있었다.

재닛 옐런은 당시 연준 이사에 임명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연준 이사들 가운데 가장 신참이었는데, 이 회의에서 뜻밖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옐런이 제출한 장기 적정 인플레이션률에 관한 논문 때문이었는데, 옐런은 이 논문에서 연간 3%대의 인플레이션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뛰어난 논문이라는 참석자들의 격찬에 이어 암묵적으로 인플레이션 3%라는 룰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금융 위기 이후 벤 버냉키가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때까지 남들은 모르는 자신들의 규정이 되었다(녹취록이 공개된 것은 2012년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당시 불룸버그 기자가 공개 소송을 낸 다음부터의 일이다).

당시에는 연준은 인플레이션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70년대 말 연준법을 개정해, 완전고용을 위임사항에 새로이 포함시켰을 때는, 의회 회의록에 명시적으로 인플레이션률 0%가 목표로 제시되어 있었다. 70년대는 연간 10%대가 넘는 인플레이션률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의회는 작심하고 물가상승률 제로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0% 물가상승률 정책목표는 90년대 초반에 접어들자 은근슬쩍 사라지고 인플레이션 가이드라인은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연준의 자의적 결정에 맡겨져 있었다.

그 회의에서 대화 중에 한 참석자가 옐런에게 물었다. “3% 인플레이션에 3% 임금 상승은 0% 인플레이션에 임금 동결이랑 똑같이 않은가?”

옐런은 멋쩍어하면서 대답했다. “동일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3%를 원한다.”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연준 이사들은 “대중들은 동일한 결과라도 기분을 더 중시한다”고 우스개를 하면서 회의를 끝냈다. 3% 가이드라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물가는 올랐지만, 월급도 그만큼 올랐으니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원한다? 기분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조건에서 연준 이사들이 할만한 얘기는 아니다. 도덕적인, 또는 엘리트의 오만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70년대 인플레이션 시기에서 단 한 번도 임금 상승률이 인플레이션률을 넘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70-80년대까지 미국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했다. 미국 노동자들이 71년도 수준의 시간당 실질임금을 회복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였다. 무려 20여년간 실질임금이 하락했던 것이다. 미국이 금 태환제를 폐기한 이후의 실질임금 추이를 보면,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할 때 오히려 실질임금은 상승한다.

역사적 데이터야 뭐라고 말하건, 인플레이션이 선거에 도움(미국의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AFL_CIO는 민주당 하부 기관이나 다름없다)이 되는 경우의 수는 단 2가지만 존재한다. 하나는 기분이라도 좋으셨거나, 두번째는 고전적 경기 싸이클 이론에서 나오는 것인데 경기가 좋아서 인플레이션률이 높아지는 경우이다.

노동자 대중이 기분이 좋아져서 선거에 도움이 되는 경우의 수는 배제해도 좋다. 왜냐하면 1월 당시 바이든의 지지율은 40%가 간당간당할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은 그 때보다 더 낮아졌다). 즉, 노동자 대중들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셨다.

좋을 리가 없다. ‘기분’론의 근거가 되는, sorry(쏘리), 임금 상승론의 근거가 되는 필립스 커브에 따르면, “실업률이 하락할수록 임금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임금이 상승하면 이른바 ‘wage–push-inflation’이 발생한다. 즉, 임금이 상승해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의 거두이자, “여자는 남자보다 수학을 못 하도록 태어났다”는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이 같은 주장의 대표 주자다. 지난달 발표한 논문에서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임금 상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이 7%에 달하니, 임금은 도대체 얼마나 상승한 것이며, 노동자들은 얼마나 좋을까.

명목임금 상승률은 정말 많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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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인플레이션률을 차감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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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폭발하던 지난 2020년 상반기에 실질임금 상승률은 최고점을 기록하고 그 뒤로는 계속 하락하다가 21년 2분기부터는 마이너스로 접어들었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원래 경기 침체 직전/와중에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경기 침체로 인한 임금 하락 속도보다 물가 하락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싸이클에서는 실질임금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저점도 심지어는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낮다. 임금 생활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이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살기 어렵다.

게다가 노동자 내부 구성의 편차도 어마어마하게 존재한다. 간부급 미만의 일반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명목임금 상승률은 지난 1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7%지만, 중앙값(평균이 아니라 평균 분포상의 가운데 지점)은 고작 3.4%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해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군에 속한 노동자들은 시간당 실질임금이 1년 사이에 무려 5% 이상 하락한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불공평한 것이지만(life is unfair), 인플레이션은 더 불공평하다.

경기가 좋아져서는 어떨까? 물가상승률이 7%에 이를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경기가 좋은거냐!!! 알다시피 지난 1분기의 미국 GDP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분기는 아직 공식 통계는 안나왔지만, 더 나쁘다. 연준에서 실시간으로 GDP를 추적하는 애틀랜타연준의 GDPNow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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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 별로 안 좋다. 2분기 성장률 추정치는 -1%(전분기 대비 연률)를 기록 중이다.

미국에서 경기 침체(recession)를 판정하는 기관은 NBER인데, 기준이 무엇인지는 외부에 공표되어 있지 않다. 그냥 대충 2개 분기 연속으로 이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기 침체라고 말한다. 이런 관례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경기 침체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혹은 다른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침체에 돌입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중간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지난 1982년 이래 최악의 참패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바이든 정권은 때 이르게 lame duck(핫바지 사장)에 돌입하게 될 것이며, 모든 정치 세력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각개 약진하게 될 것이다. 다음 대선 때까지는.

경기 침체인데 물가가 상승한다고? 어느 정도는 그렇다. 물가(인플레이션)은 경기 후행적이기 때문에 침체 초기에도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침체 하에서 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경기 싸이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 장벽을 깨부순 것이 지난 1973-75년의 경기 침체였다. 당시 데이터를 보면, 경기 침체 돌입 시기의 인플레이션률보다도 침체 종료기의 인플레이션률이 더 높았다. 여기에서 통화주의의 태두인 밀튼 프리드만의 “모든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명제가 입증되었다.

여기서 화폐적 현상이라는 것은 비경제적, 비경기순환적이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해서,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든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에 의한 것이며, 그 화폐 가치는 경기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화폐 가치에 변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이번 인플레이션도 화폐적 현상일까? 그래서 이 화폐적 현상을 막기 위해 연준은 경기 침체가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것일까? 먼저 굉장히 재미있는 데이터를 하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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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차트는 미국의 총통화량(M2) 증가율 추이다. 2020년 3월부터 미친 듯이 급등하다가 정확히 1년 만인 2021년 2월에 최고점을 찍고 급락 중이다. 총통화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 화폐량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며, 따라서 상품과 화폐와의 관계에서 상품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역사적 평균에 비해서는 다소 높은 수준이기는 하다. 코로나 핑계로 미친 듯이 재정적자를 늘리고 연준은 양적 완화를 해댔으니 M2가 안늘어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아니다. 실은 늘어난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2013년 연준이 처음 QE를 했을 때는 총통화량이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그 시기에는 연방정부가 재정 동결(sequestration)이라고 해서 연방정부를 폐쇄하느니 마느니로 날마다 시끄럽던 때이기는 하다. 즉 정부 지출은 코로나19 시기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렇더라도, QE 시행기에 오히려 총통화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다른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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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트는 경제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 기사에서 연준의 재무제표 변화와 물가 상승률을 비교한 것이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당당하게도 연준의 재무제표 증가(QE)가 물가 상승을 야기했다고 썼다.

아니라니까. 차트에도 나와 있듯이, 연준의 재무제표 증가율(GDP 대비)이 물가와 동행(선행)하는 것은 2020년 이후에만 해당한다. 첫 QE 시기인 2013-15년에는 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그래서 오죽하면 당시 연준 의장이던 버냉키가 퇴임하면서 “그래도 난 인플레이션 하나는 잘 잡았다”고 종알거리기까지 했었다.

QE가 끝나고 금리 인상과 QT(양적 완화로 연준이 매입한 국채를 다시 시장에 팔면서 재무제표 규모를 줄이는 것)가 시작되면서 오히려 인플레이션률이 상승하기 시작했다(다른 말로 해서 경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눈에 뭐가 씌면 뻔한 것도 안 보인다. 이 기자는 QE가 ‘완화적’이라는 프레임에 눈이 멀어서 자기가 그린 차트조차도 엉터리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번에 M2가 증가한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QE가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지면 정말로 ‘완화적’인 것이 되는건가?

그것 역시 아니다. QE는 버냉키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은행에 reserve(지불 준비금)을 불어넣어 주는 정책이다. 은행들이 연준이 쏴 준 현금(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프라이머리 딜러인 은행들이 이를 인수했다가 연준에 되팔면서 은행에 추가 현금이 쌓이게 된다. 이게 QE다)이 많아지면서 대출 여력이 상승해서 경기가 좋아지고 인플레이션률이 높아진다는게 버냉키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전제부터 틀렸다. 은행들은 지불준비금(reserve) 여부와 상관없이 대출을 일으킬 수 있다(2014년 IMF에서 주최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민간 은행가들은 은행은 예금 없이도 대출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는 한국은행 총재도 참석했었다. 즉 민간 은행들은 처음부터 QE가 기대했던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혹은 기대했던 목표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정책이라고 단언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QE 시기에 인플레이션률이 낮아진 것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이 또한 2013년 첫 QE 초기에 은행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연준이 매입하는 미 국채는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할 때 ‘담보’(collateral)로 쓰인다. 그리고 은행이나 펀드는 이를 머니마켓에서 할인, 심지어는 중복 재할인한다(rehyperthecation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채권을 여러번 ‘와리깡’하는 것이다. 걸리면 죽는다. 테크니컬하게 다 피해가는 방법이 있다. 2007-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이 바로 이것이었다. 금융위기는 부동산 위기가 아니라, 은행들이 지나치게 포지션을 늘렸다가 담보 부족으로 부실화한 사건이었다. 부동산은 단지 그것이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된 지점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연준이 국채를 매입해 가면, 민간 은행들로서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담보’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은행들은 긴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이 긴축적이 되면 시장에서 화폐량이 감소하고 따라서 경기도 위축된다. 즉 민간 은행가들은 QE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이 문제가 현실화하자 연준은 역레포 오퍼레이션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즉 연준이 보유한 국채를 민간에 대출해 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규모는 2조 달러가 넘는다).

어쨌든 코로나19 시기의 QE는 다르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르다.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QE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은행 시스템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가 위협으로 막 대두되던 2020년 3월 FOMC는 듣도 보도 못한 정책을 발표한다. 지불준비금 비율을 기존의 3%에서 0%로 내린 것이다.

지불준비금은 은행들이 예금으로 대출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한 것이다(뱅크런을 막기 위한 것이다. 즉 예금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최소 담보 현금을 은행들이 보유하도록 한 것이다. 지불준비금 비율에 따라 은행들이 창출할 수 있는 화폐량이 결정된다. 이를 계산하는 공식을 통화승수라고 한다). 지불준비금이 비율(reserve ratio)이 0%가 되면, 은행들은 예금이 얼마가 들어왔든 상관없이 무제한 대출을 일으킬 수 있다(현대 은행 시스템에서 화폐는 대출을 통해서 창출된다). 그래서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 결과가 위에서 제시한 M2 차트다. 0% 지불준비금 비율은 중앙은행 정책으로서는 금시초문이지만, 실은 현실에서는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이른바 역외은행들(유로달러 뱅크)이 달러화 거래를 할 때 달러 예금을 한 푼도 보유하지 않고도 부채를 일으킨다. 이를 유로달러라고 하는데, 유로랑은 아무 상관도 없고 단지 그 기원에 있어서 유럽계 은행들이 주요 플레이어였기 때문일 뿐이다.

글로벌 달러 유동성, 그리고 글로벌 물가를 결정하는 것은 연준의 ‘정책’이 아니라, 바로 이 유로달러다. 연준의 그리고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코로나 QE와 팽창적 재정정책이 글로벌 달러에도 영향을 미쳤는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동시에 매우 차별적이기도 했다.

한국 원화 환율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미국의 M2가 극적으로 폭발하던 시기에도 글로벌 달러 유동성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선진국에서조차 경기 반등폭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시스템 내에 화폐량은 늘었지만 실물 경제에는 그다지 큰 효과가 없었다.

다 어디로 갔을까? 증시로. 그리고 일부는 원자재로. 즉, 투기적 포지션만이 폭발했다. 투기적 포지션이 폭발하면, 부실 위험도 동시에 증가한다. 다음 차트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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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트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 지수다. 만일 재정정책과 통화 정책으로 인해 화폐량이 폭증하고 경기가 그렇게도 좋았다면,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고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어야만 한다. 물론 원자재 가격은 상승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직전(당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7달러까지 솟았다. 요즘 죽겠다고 난리치는 배럴당 125달러는 당시와 비교하면 약소하다)는 고사하고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이것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보다도 못하다. 그런데 인플레이션률은 훨씬 더 높다. 즉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상품 인플레이션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물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5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전년 동기 대비 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은 유가, 식료품비, 렌트비, 그리고 항공요금이었다. 공산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미미하다.

그런데 유가는 심지어는 2008년 수준에도 못미친다. 그렇지만 미국의 소비자 가솔린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왜냐고? 정유 설비 부족으로 오히려 정유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 설비가 부족한 것은 정책적 요인 때문이다. 정유 공장은 건설하고 투자비용을 회수하는데 수십 년이 걸린다. 따라서 장기적인 수익이 보장될 때만 정유업체들은 투자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그린’이 득세하는 세상에서는 화석연료 관련 투자는 풍전등화 신세다. 언제 정책이 어떻게될지 모르는데 수억 달러를 선뜻 투자할 도리가 없다(미국에서 마지막 정유 공장이 건설되었던 것은 1970년이다. 그후에는 개보수를 통해서 설비 용량을 꾸준히 늘려오기는 했지만, 실제로 공장이 새로 건설된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노후화와 보수로 인해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현재 미국 정유 업계의 가동율은 95% 수준인데, 이건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따라서 소비자 가격은 폭등하고 정유업체들은 막대한 차익을 누리기는 하지만, 이는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아서 생긴 수요-공급 불균형 때문이지 통화량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통화량이 증가했지만, 그렇지만 화폐적 현상으로서의 인플레이션은 아주 부분적으로 발생했지만, 여기에 끼지 못한 다른 국가들에서는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한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소비자 물가 추이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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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기준으로 중국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2.1%를 기록할 뿐이다. 인플레이션 같은 건 없다. 인플레이션은 고사하고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선진국은 인플레이션인데 중국은 디플레이션이다.

이 극심한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의 디플레이션은 글로벌 경기(최종적으로는 미국의 경기)를 지시한다.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은 화폐량이 아닌, 공급 충격을 지시한다(이건 차후에 다시 논하겠다). 그리고 이 불균형은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잉태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1996년 1월의 FOMC 회의는 다시 돌이켜 보아야할 만큼 시사적이다. 회의 말미에 뉴욕 연준 총재(월스트리트를 담당한다)가 특별 발언을 한다. 일본 은행들에게서 달러 스와프 요청이 들어왔으니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즉, 일본 은행들이 달러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겼으니 달러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리고 연준 이사들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달러는 미국 돈인데, 그걸 갖고 역외에서 포지션 늘리다 사고 났으니 니들(일본 은행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이 결정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돌이킬 수 없는 결절점이 되었다. 일본 은행들은 결국 달러 부족을 해결하지 못하고 연쇄 부실 위기에 빠졌으며, 그동안 일본 은행들에게서 달러를 조달받았던 아시아 신흥개발국들은 박살이 났다(IMF구제금융).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역사다.

지난 5월 초, G20 재무장관 회담에서 일본 재무장관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에게 엔화 약세를 우려하며 공조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거 어디서 한 번 봤던 그림인데. 1996년 1월 FOMC 회의록에서 봤다. 역사는 두 번 되풀이 되는데, 처음은 비극으로, 그리고 그 다음은 촌극(farce)으로.

일본이 망할 거라는 얘기도 아니며(일본의 고난은 그동안 해왔던 중국에 대한 달러 공급 역할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며, 중국에서 자금-달러-가 유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화폐가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디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재현된다는 뜻도 아니다. 도처에 지뢰는 널렸으며, 어디가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공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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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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