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최근 사내 성폭력과 관련한 대책 마련에 여념이 없을 김학동 포스코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다.
물론 사내외에서 비판 여론이 빗발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로서 서둘러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사회를 향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할 용기도 필요하다. 김 부회장이 직원들 성윤리 진단과 집합교육이라는 대책을 서둘러 내놓은 것을 보고 든 생각이다.
포스코 직장내 성폭력 문제의 뿌리는 여러 갈래 일 수 있다. 직원들 가운데 잘못된 성윤리를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진단도 필요하고 교육도 필요하다.
하지만 또 다른 원인이 보다 근본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포스코는 군대식 문화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군대식 문화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포스코 노조는 이번에 발생한 성폭력의 원인으로 사고가 나면 해당 부서 책임자만을 엄벌하고 사태를 끝내는 군대식 문화도 주요한 원인으로 봤다. 사고를 숨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한 포스코 내부의 성폭력 문제가 사라지는 데는 더 많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성폭력을 대하는 경영진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문제가 커 보인다.
김학동 대표이사 부회장 명의로 사과문이 발표되기 전에 포스코 간부직원은 피해자에게 경위파악을 명분으로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과문을 발표했던 당일에도 포스코 임원들이 직접 사과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집까지 찾아갔고 가족에게까지 연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나 서툴러 보이지만 경영진의 선의조차 부정하고 싶지 않다. 김 부회장부터 임원, 간부직원 모두 사건의 진상을 밝혀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좋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모두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는 특별한 전문지식과 섬세한 절차가 필요하다. 군대문화가 강한 포스코가 그런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포스코 경영진은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섣부른 진단과 해법은 또 다른 문제의 씨앗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들끓는 여론에 조금은 귀를 닫는 포스코 경영진의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성폭력 문제는 포스코와 경영진에게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시라. 그리고 뿌리를 찾아 도려낼 테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다려달라고 말하시라. 그런 용기가 필요한 때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