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이 3월 출범한다. 실질적인 제3당의 출현이다. 한국정치사에서 제3당은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안철수 신당은 어떻게 제3당으로 생존해 가려고 하는가?
▲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는 지난 21일 제주 벤처마루에서 신당창당 설명회를 가졌다. |
그러나 제3당으로서 안철수 신당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그동안 출현했던 제3당의 운명이 이를 잘 말해준다. 신정치개혁당, 통일국민당, 창조한국당, 민주국민당, 국민통합21 등등. 한국 정당사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져간 정당들이다. 박찬종, 이인제, 정주영 등 선거를 앞두고 제3당으로 제3지대를 확보하려고 창당했다가 선거 후 흔적없이 없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3당으로 존립한 사례를 꼽자면 1995년 창당해 2006년까지 존속한 자민련 정도가 있을 뿐이다. 김종필 총재가 주도한 자민련은 충청도라는 강력한 지역기반을 토대로 어느 정도 전국규모 정당으로 성장해 존립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자민련은 안철수 신당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자민련이 지방선거 직전 창당되었다는 점에서도 안철수 신당과 비슷하다. 자민련은 1995년 창당 직후 제1회 지방선거를 치렀다. 제3당의 지위를 노리며 탄생한 대개의 정당들이 대선이나 총선을 노리고 만들어진 반면, 자민련은 처음부터 지방선거를 노렸고 충청권을 장악하며 정치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민련은 당시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중 25%, 기초단체장 중 10%, 광역의원 중 10% 자리를 차지했다.
자민련이 제3당으로 10년 이상 존립할 수 있었던 또다른 요인은 야권연대였다. 1995년의 지방선거, 1996년의 총선으로 세력화한 자민련은 1997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와 연대해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다. 이후 김대중 정부의 한 축을 형성하며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 등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다수를 배출했다.
▲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20세기 후반 '3김정치'를 이끌었다 |
안철수 신당도 제3당으로 존립할 수 있는 길의 단서를 자민련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안철수 신당은 순식간에 민주당을 대체해 제1야당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의원 빼내기'를 해야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이 모두 이런 방법으로 기존 야당을 무너뜨리고 제1 야당으로 우뚝 섰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공천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강력한 지역기반도 있어야 한다.
안철수 신당으로는 쉽지 않는 길이다. 안 의원 자체가 그런 카리스마도 없을 뿐더라, 그런 형태는 '구태'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 지방선거는 총선과 달리 의원들이 쉽게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민주당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옮기는 의원들이 거의 없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안철수 신당은 강력한 지역기반을 확보하는 길을 모색알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있는 호남 민심잡기에 온갖 애를 쓰고 있는 것도 이런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호남은 더이상 민주당의 안방이 아니라는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 로드맵을 밝힌 뒤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목포를 방문해 ‘새로운 지방자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 토론회를 연 것도 이를 방증한다.
야권연대도 안철수 신당으로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안철수 신당은 야권연대에 대해 부정하는 발언을 하면서도 가능성을 완전히 닫고 있지는 않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말했듯이 2~3위 싸움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두 당이 표를 나누다가 여당만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다는데 안철수 신당이든 민주당이든 인식을 같이한다. 오는 24일 안 의원은 김 민주당 대표와 만난다. 이 자리에서 야권연대를 탐색할 가능성이 있다. 안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제가 양보받을 차례”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번 박원순 시장 당선 때는 양보를 했으니,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혹은 박 시장이 양보를 하라는 얘기이다.
야권연대나 호남공략은 안철수 신당이 지방선거에서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 두 전략에만 집착해서는 제3당으로 길게 존립할 수 없다. 또 지방선거를 넘어 총선, 그리고 대선을 향해 순항할 수도 없다. 과거 자민련은 충청권에서 맹주 노릇을 하며 안주하다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안철수 신당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추진위원회 김효석 공동대표는 지난 2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권연대는 낡은 틀”이라며 “보수 세력도 안을 수 있는 그런 연대, 굳이 얘기한다면 국민연대의 개념으로 가는게 옳다”고 말했다.
안철수 신당이 당 출범 전에 민주당을 제치는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피로감에 따른 반사적 지지를, 분명한 노선과 정책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강고한 지지로 바꿔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들고나온 '새 정치'의 내용을 만들어 '안철수 정당'에 차곡차곡 넣어야 한다.
‘거대한 환상:양당독재 속 유권자 선택의 허상’을 쓴 테레사 아마토는 정치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양당 이상의 선택지가 꼭 필요함을 강조했다. 아마토는 “(제3당이 제시하는)새로운 생각들이 양당정치의 정체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신당이 제3당으로 존립하고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길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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