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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웃돈 주고 보험계약 해지하는 제도가 꼼수라고 욕먹는 이유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22-05-26 16: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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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웃돈 주고 보험계약 해지하는 제도가 꼼수라고 욕먹는 이유
▲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주최로 열린 '보험산업 리스크관리와 신사업 활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창현 의원실>
[비즈니스포스트] 국회의원회관에서 25일 열린 보험산업 리스크관리 방안 관련 토론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보험계약 재매입’이었습니다.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가 보험계약자에게 프리미엄, 이른바 웃돈을 주고 계약을 해지하는 겁니다.

기업이 인건비 부담이 크면 웃돈을 주고 희망퇴직을 받는 것처럼 희망(?) 계약해지를 통해 보험사가 부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건데요.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의 이차역마진 문제를 해결하고 부채 부담을 효율적으로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로 꼽힙니다.

이차역마진은 보험사가 보험계약자에게 줘야하는 이자와 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이는 투자이익의 차이로 발생하는 손실을 말합니다.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이차역마진은 2017년 1조 원에서 지난해 2조 원대로 2배 이상 늘어난 상황인데요.
[백브리핑] 웃돈 주고 보험계약 해지하는 제도가 꼼수라고 욕먹는 이유
▲ 지광운 교수의 토론회 발제문 '급격한 금융시장 변동 보험산업 리스크 관리 대책'에서 발췌.
이처럼 대규모 이차역마진이 발생하는 것은 과거 1980년대와 1990년대 보험사들이 예정이율 7.5% 내외의 금리확정형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팔았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10%를 넘을 때였습니다. 보험사들은 당시 7.5% 금리를 주면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확정배당금’이나 ‘금리차보장금’ 등 추가 이익을 주고 고객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4%대 금리만 보장해도 시중의 자금이 몰리는 저금리시대가 됐습니다. 금리가 높지 않아 채권 등을 통한 투자이익이 크지 않는 상황에서 예전에 판 상품의 높은 금리를 줘야하니 이차역마진이 빠르게 커진 거죠.

특히 당시 장기상품을 다수 팔았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전통있는 대형 생명보험사에서 이차역마진 문제가 크게 나타나는데요.

보험업계에서는 이차역마진이 계속 늘면 보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광운 군산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토론회에서 “일본에서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저금리시대를 거치면서 이차역마진 문제 등으로 8개 보험사가 연이어 파산했다”며 “이차역마진 문제는 보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대형 이슈”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보험사들은 내년부터 부채도 시가로 평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새 국제회계제도인 IFRS17을 적용해야 합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제도 변경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보고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보험계약 재매입은 효용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쉽사리 반길 수 없는 제도로 여겨집니다.

전날 토론회에서 보험계약 재매입이 핫이슈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금융소비자 대표로 토론회에 참석한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보험계약 재매입은 꼼수”라며 4가지 이유를 들어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백브리핑] 웃돈 주고 보험계약 해지하는 제도가 꼼수라고 욕먹는 이유
▲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

첫째, 보험계약 재매입은 오로지 보험사를 위한 제도로 보험사의 회계 투명성을 높여 소비자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IFRS17 도입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둘째, 계약 해지를 위해 웃돈을 준다고 하는데 과연 그 돈을 어떤 근거로 어떻게 마련하느냐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국내 보험사들의 영업행태 상 보험설계사를 통한 밀어내기식 반강제적 해약이 이뤄질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형평성 문제를 들었습니다. 고금리 계약 여부에 따라 웃돈을 얹어주면 고금리 계약자는 프리미엄을 받고 일반 계약자는 프리미엄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는 소비자의 손해를 통해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일부 대형 생명보험사에 이득을 주는 제도로 고객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 모를까 정부제도로 퇴로를 열어 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회장에 따르면 고금리 상품을 해지하기 위한 보험사의 노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승환계약’이나 ‘전환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보험사의 고금리 상품 해지가 이뤄졌는데 당시 불완전 해지 등으로 수많은 민원이 발생해 결국 금융당국은 이를 금지했다고 합니다.

조 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보험계약 재매입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결국 고금리 상품 해지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승환계약, 전환계약과 다를 게 없는 제도”라며 “보험업계에서 도입을 지속해서 추진하다면 강하게 반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보험사 측면에서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이차역마진 문제는 보험사가 스스로 초래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차역마진 문제는 장기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보험업의 특수성과 당시 고도성장기 고금리 상품이 주를 이루던 경제환경, 그리고 지금의 저금리 환경이 모두 영향을 미치며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단적인 예로 은행들은 1990년대 보험사보다 높은 금리의 상품을 판매했지만 현재 이차역마진 문제를 겪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정책적으로 세밀하게 잘 다듬는다면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가 윈윈하는 정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벨기에에서 보험사의 부채 부담을 낮추고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시행된 사례가 있습니다.

보험업계는 이와같은 특수성이 있고 보험사들의 자구적 노력만으로는 이차역마진 문제 해결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금융당국의 적극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물론 소비자단체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렇게 끌어 모은 돈으로 고도 성장기에 보험사들이 다 혜택을 보고 이제 와서 손실난다고 금융당국에 손을 내미는 것을 비판하지만요.

그럼 실제 금융기관을 관리하며 정책을 만드는 금융당국은 어떤 입장일까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 보험과장은 토론회에서 마지막 토론자로 나서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와 관련한 많은 간극이 오늘 토론회에서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며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는 소비자 보호 측면을 포함한 여러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내년 회계제도 변경을 맞아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 도입을 위한 운을 띄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험계약 재매입 제도가 언젠가 도입될지 아님 영영 도입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소비자의 효용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보험사의 이차역마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수가 더 늦기 전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보험사가 이차역마진으로 계속 손해를 본다면 그 역시 보험료 인상 등 다른 소비자의 효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이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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