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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묻지마 살인, 우리 모두의 누이와 딸이 아닌가

김재창 기자 changs@businesspost.co.kr 2016-05-20 18: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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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묻지마 살인, 우리 모두의 누이와 딸이 아닌가  
▲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한 시민이 묻지마 살인 피해자 추모글을 남기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김모(34)씨에게 살해당한 20대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17일 오전 1시께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다.

경찰에 체포된 범인은 살해된 여성과 일면식도 없었다고 한다.  피해여성은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만 끔찍한 화를 당한 것이다.

마스크를 쓴 채 취재진 앞에 등장한 범인은  ‘과연 저 사람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범인일까’ 싶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범인은 한때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고 보도됐는데 뿔테 안경 너머로 드러난 그의 눈매에서 ‘악마’의 모습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범인은 동기에 대해 경찰조사에서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해 참을 수 없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우리사회가 여성들이 밤에 안심하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이토록 흉포화됐나 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었다(고백하지만 이건 정말 솔직한 심정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 강남역 10번 출구는 어느 때보다 추모의 열기가 뜨거운데 이는 누구나 특히 연약한 여성의 경우라면 예외없이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글들 중에 ‘그녀는 죽었고 나는 우연히 운좋게 살아남았다’ ‘죽음의 이유 따윈 없어요. 그저 죽일 수 있으니까 죽인 거겠죠. 그게 내가 될 수도...’ ‘운이 좋아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존엄하고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습니다’와 같은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추모제 발언대에 올라온 한 여성은 “이번 사건은 굉장히 독특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 일일 수 있다”며 “‘나는 운이 좋다’외에 설명할 말이 없어 무력감을 느꼈지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여성이 지니고 있는 공포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옆의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공감을 표시했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번 사건을 놓고 ‘묻지마 범죄다’ ‘아니다, 여성혐오 범죄다’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범인이 단순히 아무나 죽인 게 아니라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남성이 아닌 여성을 겨냥해 고의적 살인을 했기 때문에 전형적인 ‘여성혐오 범죄’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기자는 이런 말들의 홍수 속에 개입해 개인적 의견을 보태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번 사건은 ‘묻지마 범죄’의 성격과 ‘여성혐오 범죄’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특정한 이유 없이 죽였다는 점에서 ‘묻지마 범죄’이면서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20대 여성을 죽였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범죄’의 성격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본질은 범인이 연약한 대상(여성)을 범행대상으로 삼아 죽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기보다 여성이 힘이 약해서, 다시 말해 죽이기 쉬워서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물론 범인이 평소 여성들에게 품었던 반감이나 혐오감이 이번 범죄의 동기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반감의 대상이 동등하거나 혹은 더 많은 힘을 가진 남자였다면 범행을 시도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을 것이다.

범인이 범행 당시 화장실을 출입한 남성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데에서도 이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경찰대 행정학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약자(여성)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병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앞서 말한 약자(여성)는 사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아내, 누이 그리고  딸들이 아닌가.

억울하게 귀중한 생명을 잃은 피해여성이 고통없는 곳에서 편하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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