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궁색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
박 사장은 삼성중공업 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하는데 삼성그룹과 주채권은행 양쪽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샌드위치 신세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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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17일 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안을 제출했다. 인력 구조조정과 도크폐쇄, 자산 매각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자구안에 박대영 사장의 고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 사장은 12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자구계획안 제출을 요구받았다. 당초 18일 제출할 예정일이었으나 하루 앞선 17일 자구안을 냈다.
박 사장이 제출한 자구안은 산업은행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방안을 기대했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자구안 반려 가능성도 나온다.
만약 박 사장의 자구안이 반려되고 삼성그룹이 삼성중공업 지원에 나서게 될 경우 박 사장의 리더십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삼성그룹과 산업은행 사이에서 박 사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경영정상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양쪽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삼성그룹에서 박 사장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조선업이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삼성중공업이 삼성그룹의 ‘계륵’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올해 3월 삼성중공업 대표이사에 재선임됐다. 삼성그룹은 박 사장이 2013년 사장에 선임된 뒤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 실패, 해양플랜트 대규모 손실 등 악재가 이어졌는데도 박 사장을 연임시켰다.
그러나 현재 삼성중공업에서 박 사장의 입지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중공업을 방문한 뒤 삼성그룹이 삼성중공업에 대해 적극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양상을 보인다. 삼성그룹이 지난 2월 김종호 전 삼성전자 사장을 삼성중공업 생산부문장으로 임명한 데서 잘 드러난다.
김종호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파견된 10여 명의 인력과 함께 공정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재무·구매·관리·생산까지 폭넓은 영역에서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TF가 구조조정 작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박 사장은 이전에 삼성그룹 전략기획실과 구조조정본부에 오래 근무했다. 그런데도 경영정상화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김 사장을 보낸 점에 비춰볼 때 박 사장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박 사장은 조선업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답게 수주활동에 주력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들어 조선3사 가운데 유일하게 수주실적을 한 건도 올리지 못했다.
박 사장은 18일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지난 1월 이후 사장단 회의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박 사장은 거제조선소 현장경영과 해외수주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 CEO가 모두 모이는 수요 사장단 회의가 삼성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박 사장이 장기간 불참하는 의미는 남달라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