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영업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전력도매가격 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계량기의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력시장 및 요금부과 체계 개편 논의가 정부와 정치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너지 원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는 데다 올해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영업손실까지 예상되는 만큼 전력도매가격 제도 개편 등 적극적 대응이 불가피해 보인다.
10일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를 선정하면서 전력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아 경기 부양에 힘을 실어야 할 시기임에도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인 만큼 정부와 여당은 민생안정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올해 상반기뿐 아니라 하반기에도 각종 경기 지표들과 물가 전망이 어둡다는 보고를 듣고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문제는 물가와 민생안정을 위해 비중 있게 다뤄질 현안으로 꼽힌다.
전기요금은 일반 대중의 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인 데다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인상에 따른 사회 전반의 부담이 크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국내 전기요금에도 인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놓고 현 정부와 인수위 사이 기싸움을 벌이다 3월29일 올해 2분기 전기요금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하고 기존에 추진돼 온 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인상분만 반영하도록 결론이 났다.
인수위는 전기요금 인상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
원 수석부대변인 역시 6일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과 관련된 질문을 받자 “인수위원들이 뭔가 꽉 물려져 있는 느낌들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계속 전기요금을 묶어 두기도 쉽지 않다.
올해 2분기 전기요금에 연료비 조정단가가 동결되면서 한국전력공사의 연간 영업손실이 2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자칫하면 대규모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인수위에서는 한전의 운영난에 따른 대응책으로 전력도매가격 제도의 손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3월24일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하며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전력도매가격 상한제 도입 등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력도매가격은 전력거래소가 결정하는 계통한계가격(SMP)에 따라 정해진다. 한전은 전력도매가격으로 전기를 구입한 뒤 전기요금을 받고 전기를 가정과 기업에 판매한다.
계통한계가격은 전력거래소가 하루 전에 시간대별로 예측하는 전력수요곡선에 각 발전원 별 발전기로부터 받은 공급량을 고려해 결정된다. 발전원가가 낮은 발전원부터 발전원 별로 공급량을 더해 수요를 충족하는 지점의 발전원 발전원가가 해당 시간대의 계통한계가격이자 전력도매가격이 된다.
문제는 전력도매가격에는 비교적 원가 반영이 빠르게 이뤄지지만 전기요금의 결정은 원가 반영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두 가격 사이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곧바로 한전의 영업손실로 이어진다.
올해 3월을 기준으로 평균 전력도매가격은 kWh당 192.75원까지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kWh당 108.1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전으로서는 전기 1kWh를 팔 때마다 80원 정도씩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한전이 비싸게 전기를 사들이는 만큼 발전자회사들의 영업이익은 증가했다. 한전이 지난해 5조8601억 원의 영업손실을 본 데 반해 발전자회사의 영업이익은 대부분 크게 늘었다.
지난해 한전 발전자회사들의 영업이익은 중부발전 3118억 원, 남동발전 905억 원, 동서발전 830억 원 남부발전 530억 원 등이다. 2020년과 비교하면 중부발전은 204.2%, 남부발전은 107.5% 늘었고 남동발전, 동서발전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전력도매가격과 전기요금의 차이만큼 한전에 부담이 집중되는 상황이므로 전력도매가격에 일정한 기준으로 상한을 둔다면 발전사의 이익은 줄겠지만 그만큼 한전의 손실도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력도매가격을 손질하는 방법은 전력 원가 상승에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그래도 한전에만 몰려있는 부담을 한전과 발전자회사로 분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 않다.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일부 줄어든다.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4일 “어려움을 겪는 산업계를 돕기 위해 전기,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의 한시적 동결 또는 인상 최소화 대책 등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창조적,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