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두산에너빌리티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박지원 회장은 가스터빈 생태계의 기반을 단단히 다져 이를 바탕으로 아직 개척되지 않은 수소터빈 분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이번에 김포열병합발전소에 설치하고 있는 발전용 가스터빈은 압축된 공기를 연료와 태워 고온·고압의 연소가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든다.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에서 핵심 장치로 꼽힌다.
초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수만여 개의 정밀 부품을 만들어 조립해야 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독일, 일본, 이탈리아만이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다. 한국은 두산에너빌리티와 중소기업의 협업을 통해 세계에서 5번째로 가스터빈 기술 보유국이 됐다.
박 회장은 단순히 가스터빈 시장성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발전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도 함께 가지고 기술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발전용 가스터빈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국내 발전산업 생태계에도 긍정적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 공급된 발전용 가스터빈 161기는 모두 외국산이었고 그동안 국내 발전기업들은 가격이 비싼 외국산 가스터빈의 부품과 유지보수비용 때문에 부담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국 가스터빈 기업들은 가스터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한 뒤 부품교체와 보수에 많은 비용을 청구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는 중소기업과 협력하고 금속 3D프린터로 가스터빈 연소기를 비롯한 부품을 만드는 등 기계 가공품과 비교해 제조단가와 납품기간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납품을 받는 국내 발전기업은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에 발전설비를 운영할 수 있게 되고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돼 선순환 산업생태계가 조성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박지원 회장은 두산에너빌리티의 대형발전용 가스터빈 독자모델 개발 성공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번 가스터빈 개발은 국내 230여 개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하는 산업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격변하는 시장환경 속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다각화하는 노력에 힘을 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용 가스터빈 시장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상돼 두산에너빌리티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의 IHS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는 2018년부터 2028년까지 432GW(기가와트) 규모의 가스발전설비가 새롭게 설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한국의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분야 후발주자인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미쓰비시히타치 파워시스템이 발전용 가스터빈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회장은 가스터빈 후발주자라는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가스터빈 선두주자들도 상용화하지 못한 수소관련 터빈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과도기적 시도도 함께하고 있다.
LNG를 연료로 쓰는 가스터빈 기술을 기반으로 암모니아 관련 터빈사업을 준비해 수소터빈 사업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재인 대통령도 5일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작한 국산 1호 가스터빈이 김포열병합발전소 설치에 착수한 것을 놓고 “가스터빈 기술이 수소터빈 기술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 초 한국전력기술과 암모니아 개질가스 발전소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또한 한국중부발전, 제이씨에너지와 ‘수소에너지 신사업 추진 협약’도 체결하기도 했다.
암모니아 개질가스 발전소는 암모니아에서 추출한 수소를 연소해 수소터빈을 가동하는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수소는 LNG와 달리 연소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친환경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수소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에 시동을 걸고 있다. 박 회장이 가스터빈 개발 과정에서 닦은 생태계를 바탕으로 수소터빈 개발까지 나아간다면 우리나라 발전분야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수소터빈 기술 개발을 한층 가속화해 탄소중립은 물론 수소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친환경 발전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