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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총리' 잉락, 오빠 탓에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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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가 지난 22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태국을 혼란에 몰아넣은 시위대는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동생이다. 3년 전까지도 정치판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다. 오빠를 대신해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푸어타이당의 선봉장이 됐다. 2011년 3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집권당인 아파싯 총리의 민주당을 누르고 압승을 했다. 총 500석 중 265석을 차지했다.
잉락 총리는 애초 정치인의 길과 거리가 멀었다. 츄잉러라는 중국 이름을 갖고 있는 화교 출신이다. 중국 이민자인 러트 친나왓의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치앙마이 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켄터키 주립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돌아와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탁신 전 총리가 설립한 통신회사인 AIS의 사장을 지냈으며, 마찬가지로 가족 기업인 부동산 개발회사 SC에셋의 회장을 지냈다. 탁신 집권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2011년 여름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하기 이전까지 잉락은 정치 경험이 전무했다.
그를 푸어타이당으로 이끈 사람은 다름아닌 탁신 전 총리였다. 그는 오빠를 대신해 2011년 3월 선거에 나섰다. 오빠의 지지 기반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오빠를 좋아했다면 나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전국민 의료보험 등 탁신 전 총리의 서민 친화적인 정책을 기억하고 있던 농민과 빈민 및 서민층, 이른바 '레드 셔츠'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총리가 된 뒤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 가족은 정치인 집안이고 나는 상장된 회사를 20년간 경영한 경험이 있다. 이 두 가지 장점을 통해 태국을 특히 경제 면에서 성장시키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반탁신파는 잉락 총리의 강점이라고는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이라는 점뿐이라고 비판한다. "잉락 총리는 망명중인 탁신의 정치인형"이라고 평가한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미국 방문 도중 무혈 쿠데타로 실각한 이후 부패 및 왕실 불경죄로 궐석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현재 망명중이다. 탁신 전 총리는 망명중에도 태국 정치에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2008년 선거에서 승리한 솜차이 옹사왓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매제였다. 2011년 선거 때에도 탁신 전 총리는 두바이에 머물며 화상회의로 선거운동을 사실상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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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락 총리는 무난한 국정 운영 능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
2011년 11월 태국을 강타한 심각한 홍수는 잉락 총리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련이었다. 잉락 총리는 홍수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세금 감면, 해외자본 유치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홍수사태를 무난히 수습했다. 이를 통해 탁신 전 총리의 후광만이 그의 유일한 무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2012년 태국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잉락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라고 높이 평가했다.
오빠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잉락의 발목을 잡은 사람도 오빠였다. 지난해 11월 잉락 총리는 정치범 사면법의 통과를 시도했다. 이 법안이 탁신 전 총리의 사면 및 귀국으로 이어질 여지가 강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반탁신파인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으며, 이는 곧 본격적 반정부시위로 이어졌다. 잉락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다음달 2일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야당이 주도하는 시위대는 잉락 총리의 완전한 퇴진만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