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녕 기자 nyeong0116@businesspost.co.kr2022-01-27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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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중국 기업은 세계무대에서 다방면에 걸쳐 우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기업이라도 이들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기업의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영전략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노녕의 중국기업인탐구-BYD(비야디) 왕촨푸 [1] 형 부부 의지해 성장 [2] 배터리사업 본격 시작
[3] 전기차 제조에 도전
[4] 전기차 제국을 꿈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단말기, 컴퓨터 디지털 가전제품을 넘어 전기차에도 널리 사용되는 지금의 리튬이온배터리는 일본 기업 소니가 1991년에 상업화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일본 산요전기가 꾸준히 세계 점유율 1위를 확보하다가 파나소닉에 합병됐고 파나소닉은 현재까지도 세계 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 왕촨푸가 2019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신형 전기차 모델 쑹(宋) Pro를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인 소니는 동일본대지진으로 배터리 사업부의 주력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센다이 센터가 파산하면서 점유율도 하락했다.
이후에는 배터리 사업이 소니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줄어들며 주력사업에서 제외됐다.
한국에서는 1995년 LG화학이 리튬이온배터리 사업을 가장 처음 시작했다.
LG화학은 1999년 노트북에 사용되는 소형 배터리를 시험 생산하는데 성공해 한국 최초로 소형 리튬이온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게 됐지만 막대한 연구개발비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아 2007년까지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현대기아자동차와 공동 연구개발, GM과 협력 등을 통해 LG화학은 2010년 마침내 전기차 쉐보레 볼트 배터리를 양산하는 최초의 한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가 됐다. 2015년부터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완성차 회사의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배터리사업부를 분사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세웠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인 1995년 중국에서도 배터리 사업의 태동이 시작됐다. 왕촨푸는 2월 사촌형의 도움을 받아 비야디를 세웠고 그 다음해부터 양산과 발주를 시작했다. 사실상 중국 최초의 배터리 사업체로 쩡위췬이 세운 ATL보다 4년 가까이 앞섰다.
왕촨푸는 항상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가격과 성능 그 무엇도 놓칠 수 없었던 것이 부품에서 완성품까지 모두 직접 만드는 계기가 됐다. 현재 비야디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전기차를 예로 들면 80% 이상을 직접 자체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촨푸의 가성비 전략은 비야디가 급성장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다.
◆ 휴대폰 배터리에서 일본을 앞서
맹자는 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필선고기심지(天将降大任于是人也,必先苦其心志)라고 했다. 하늘이 한 사람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한다는 뜻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대학을 입학한 왕촨푸는 형 부부의 물심양면 지원을 받아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왕촨푸는 과학자를 꿈꿨다. 한 연구주제에 깊이 파고드는 것을 잘 했고 집중력이 타고났다.
대학에서도 성적은 우수했으며 이 시기에 왕촨푸는 이미 배터리에 흥미를 느꼈다.
왕촨푸는 대학 입학과 함께 석사 공부도 같이했다. 베이징비철금속연구원에서 배터리를 연구했고 석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이 연구원에서 일했다.
1992년 26세 젊은 나이에 한 랩실의 부주임이 됐고 이듬해 연구원이 선전에 세운 비거배터리유한공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됐다.
왕촨푸는 비거배터리에서 기업경영과 배터리 생산에 관해 실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연구해 오던 영역 가운데 배터리 시장에 큰 투자 기회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이동전화기 1세대였던 소위 벽돌폰은 중국에서 가격이 한 대당 2만~3만 위안(375만~562만 원) 사이로 매우 값비쌌던 시절이었다.
비싼 전자기기였음에도 구매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왕촨푸는 충전 배터리의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적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대규모 수주만 확보한다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1995년 2월 왕촨푸는 그의 사촌형 뤼샹양(吕向阳)과 비야디를 세웠다. 비야디(BYD)는 당신의 꿈을 설계하라(Build Your Dream)라는 의미다. 뤼샹양은 2021년 현재 비야디의 비상임이사로 있다.
뤼샹양은 16세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안후이성 지사에 입사했다. 또 광둥성, 선전, 홍콩 등 지역에서 무역이나 금융투자 등 관련 사업을 하며 큰 돈을 벌었다. 1995년에 룽졔투자홀딩스를 설립했고 같은해 4억7천만 원을 투자해 왕촨푸와 비야디를 설립했다.
뤼샹양은 '중국의 워렌 버핏' 혹은 '중국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룽졔투자홀딩스를 세우고 이십여 년 동안 전기차, 신소재 등 산업에 투자했는데 이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총 37조7천억 원이 넘는다. 룽졔투자홀딩스 산하에는 비야디를 포함해 5개 상장사가 있다.
설립한 지 2년 만에 비야디는 매출 1억 위안(200억 원)의 중형기업으로 성장하며 업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야디를 세운 그 해 왕촨푸는 제품을 대만 최대 무선전화기 제조업체 따바그룹(台湾大霸集团)에 공급하기 위해 애썼다. 이 업체는 비야디의 제품품질과 가격을 보고 단번에 산요전기에 주던 발주를 비야디에 넘겼다.
1997년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하고 배터리제품 가격은 20~40%까지 폭락했다. 당시 배터리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 기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비야디에게는 기회가 됐다. 비야디의 가성비 배터리가 눈길을 끌며 소니, 마쓰시타, GM 등 기업들이 비야디 제품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 부품에서 완성품까지 자체개발에 열중
비야디는 2002년 여름 홍콩증시에 상장하는 데 성공했고 2008년에는 매출 1억5500만 달러(1854억 원), 1만5천 명의 직원을 둔 상장사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현재는 일본의 배터리기업 지위를 대신하는 세계 일류 배터리 생산업체로 컸다.
왕촨푸에게 선구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의 많은 기업들이 맹목적으로 현대화를 쫓으며 현실적이지 않은 큰 돈을 들여 선진국의 생산라인을 사들일 때 왕촨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연구개발한 부품과 제품을 사용했다.
이뿐 아니라 왕촨푸는 기술력, 원재료 조달, 품질 관리, 원가 절감 등 여러 방면에 큰 공을 들였다. 심지어는 공급업체의 원재료 연구개발 과정에도 직접 관여해 함께 원가절감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니카드(니켈카드뮴)전지는 대규모 코발트재료를 필요로 한다. 해외에서 품질이 좋은 코발트재료를 수입하기에는 원가가 너무 높았다. 왕촨푸는 이를 해결하고자 선전의 모 회사와 협력해 중국산 코발트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나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중국산 코발트재료의 전반적 품질이 글로벌 수준까지 올라갔고 수입소재보다 원가는 40%나 저렴했다. 코발트재료의 사용범위는 매우 넓기 때문에 비야디는 이 프로젝트 자체만으로 해마다 100억 원 안팎을 절약할 수 있었다.
비야디는 니카드전지 시장에서 3년이 채 안되는 시간에 세계시장 점유율을 40% 가까이 확보하며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왕촨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두 번째 기회를 붙잡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그는 니켈수소배터리와 리튬배터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왕촨푸는 대규모 자금을 쏟았고 최신 제조설비를 구매했으며 가장 우수한 인재를 뽑았다. 당시 리튬전지 시장 역시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 업계에서는 비야디의 성공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왕촨푸는 리튬배터리를 연구하면서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비웃음도 받았다고 한다.
1998년 왕촨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비야디리튬배터리공사를 세웠다. 왕촨푸가 뚝심있게 밀어붙인 성과는 지금 이미 나타나 있다. 2021년 기준 비야디의 리튬배터리와 니켈수소배터리시장 점유율은 세계 4위이다.
그리고 2021년 기준으로 비야디의 하루 평균 니카드전지 생산량은 150만 개, 리튬 배터리 생산량은 30만 개, 니켈수소 배터리 생산량은 30만 개에 이른다. 이 중 60%의 제품은 외부로 판매하고 있으며 고객사에는 애플, 삼성전자, 노키아, 모토로라, TCL 등 글로벌 기업들이 포진해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