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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조 회장이 한진해운에 강한 애착을 품고 있지만 한진해운도 현대상선처럼 채권단 관리를 통해 대규모 채무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 회장을 향한 정부의 압박강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 자체 구조조정이냐, 채권단 관리냐
20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최근 조 회장에게 한진해운을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조 회장을 직접 만나 삼일회계법인이 진행한 컨설팅 결과를 설명하며 한진해운 정상화를 위해 더 노력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영국 런던사옥, 해외터미널 등의 자산 매각과 비용 절감을 통해 모두 1조2천억 원을 마련한다는 자구안을 세워두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의 자구안에 만족하지 않고 조 회장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 차원의 지원이나 강력한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한진해운을 살리느냐, 현대상선처럼 한진해운을 채권단 관리로 넘기느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계열사를 동원해 한진해운을 추가로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다.
조 회장은 그동안 대한항공과 한진칼을 동원해 한진해운을 지원했지만 이대로는 한진그룹 전체로 부실이 확산될 수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한진해운 지원에 대한 우려로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그룹 안팎에서 조 회장이 왜 한진해운을 인수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며 “조 회장이 해운업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한진그룹을 종합물류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한진해운을 인수했지만 이를 두고 계열사에서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추가적으로 자구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진해운이 2013년 말부터 최근까지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해 팔 수 있는 자산이 별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진해운도 현대상선처럼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뒤 해운업에 대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20일 정부가 해운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진해운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0.49%나 급락한 303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 한진해운 어떻길래?
한진해운은 표면적으로 현대상선보다 사정이 나아 보인다. 현대상선은 수년째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나 한진해운은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으로 흑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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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 |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4년 240억 원, 2015년 369억 원 등으로 흑자규모는 크지 않다.
해운업이 불황에 빠지기 전인 2010년 한진해운은 676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당시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누적적자도 3천억 원이 넘는다.
고정비 부담도 높다. 한진해운이 올해 지불하는 용선료만 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부담이 높아지자 2014년과 2015년 모두 32척의 선박을 반납했다.
한진해운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6조6천억 원에 이른다. 올해 은행 차입금과 회사채, 선박금융 등 모두 1조5천억 원 규모의 차입금 만기가 돌아온다.
한진해운은 2013년 12월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발표한 뒤 지난해 말까지 2조3532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올해 자산 매각과 비용 절감 등이 포함된 1조2천억 원 규모의 추가 자구안도 마련했다.
◆ 다시 고개드는 합병설?
정부가 해운업을 대상으로 인위적인 합병을 시도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두 회사의 합병설이 여러 차례 불거졌지만 두 회사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최근 유일호 부총리의 발언이나 지금이 구조조정의 적기라고 정부가 판단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합병설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
조 회장은 올해 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조 회장은 2014년 한진해운을 인수한 뒤 한진그룹을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물류회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보였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 회장도 맡고 있으나 흑자를 내기까지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뒤 연봉을 수령하지 않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