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재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용진 부회장 개인이 보유하던 광주신세계 지분 전량 52%를 신세계에 넘기면서 사실상 신세계그룹 계열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광주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지분 52.08%를, 신세계가 10.42% 보유하고 있었는데 광주신세계 매출 대부분이 백화점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에 백화점사업을 하는 신세계가 지배하는 그림이 자연스러웠다. 광주신세계는 2018년 이마트광주점을 이마트에 양도해 사실상 백화점사업만 하고 있다.
이번에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보유지분을 신세계에 매각하면서 정 부회장이 이마트를 중심으로 복합쇼핑몰, 대형마트, 마켓, 식품 등을 담당하고 정유경 총괄사장은 신세계를 중심으로 백화점, 면세점, 패션사업을 맡는 구도는 더욱 명확해졌다.
정 부회장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광주신세계 지분을 굳이 처분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정 부회장은 2011년 6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식 29만3500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4만8500주를 지난 2015년에 처분했는데 이후 추가 처분이 없었다면 액면분할 등을 감안해 정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약 1225만 주로, 14일 종가기준 93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광주신세계 지분을 처분하면서 계열사 정리를 앞당기는 선택을 했다.
이제 지분이 정리되지 않은 신세계그룹 계열사는 SSG닷컴과 신세계의정부역사 정도만 남아있다. SSG닷컴은 이마트가 지분 50.08%, 신세계가 지분 26.9%를 보유하고 있고 신세계의정부역사는 신세계가 지분 27.55%,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건설이 지분 19.9%를 들고 있다.
김소연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2020년 9월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백화점(신세계)로 계열분리가 대부분 완료됐다”며 “남은 것은 광주신세계, SSG닷컴, 신세계의정부역사이며 이 계열사의 지분정리가 차례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이 계열분리를 공식화기는 이르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건재한 상황인 만큼 계열분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아직 그룹 총수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도 각각 10%씩 보유하고 있다.
LX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한 것은 장자가 그룹을 물려받으면 승계에서 배제된 형제나 사촌은 계열분리를 통해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은 이미 그룹을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이 나눠 소유함으로써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이나 정 총괄사장의 자녀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시기가 될 때까지는 ‘한지붕 두가족’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신세계의 광주신세계 지분 매입은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이 각자 책임경영을 위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한 것이다”며 “그룹 내부에서 계열분리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계열분리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도 보이지 않는다.
신세계그룹은 최근 계열분리 이야기가 나오는 농심그룹처럼 계열분리를 통해 대기업집단 지정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마트와 신세계의 자산은 각각 15조 원, 7조 원 정도로 분리가 되도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에 포함된다.
게다가 최근 유통사업의 급격한 변화를 고려했을 때 신세계그룹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서 계열사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올해 3월 네이버와 지분교환을 함께 진행하는 등 여전히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마트와 신세계가 모두 지분을 보유한 SSG닷컴도 초기에는 신선식품 위주로 상품을 구성했지만 최근에는 명품과 패션 등 백화점에서 다루는 상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SSS닷컴은 올해 여성 의류 플랫폼 ‘W컨셉’도 인수해 백화점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졌다.
이진협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신세계그룹의 시너지 관점에서 보면 계열분리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