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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구본준 LX그룹 회장 겸 LX홀딩스 대표이사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  2021-07-13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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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 LX그룹 회장.

◆ 생애

구본준은 LX그룹 회장 겸 LX홀딩스 대표이사다.

1951년 12월24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AT&T테크놀로지를 거쳐 금성(현 LG전자)반도체 부장, LG화학 전무, LG반도체 전무, LG반도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을 맡다가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LG전자가 위기에 놓이자 구원투수로 복귀해 4년8개월 동안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다.

지주사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룹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았다. 주력사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이는 등 사업 전반을 살피는 역할도 함께 수행해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경영총괄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 됐다.

구본무 전 LG 회장을 대신해 신사업 강화, 업적보고회 주재 등 그룹 경영을 두루 챙기며 대외적으로도 그룹을 대표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별세한 뒤 구광모 회장이 총수에 오르자 LG 고문으로 물러난 뒤 LG그룹의 전통에 따라 의 계열분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2021년 5월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해 LX그룹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과 제품에 관심이 많고 시장 선도를 향한 열정이 높다. 하고 싶은 일이나 말에 거침이 없는 '직선적' 스타일이다.

◆ 경영활동의 공과

△LX그룹 출범
구본준은 2021년 5월1일을 분할기일로 LG그룹 계열사 5개 기업을 계열분리해 LX그룹을 출범했다.

2018년 연말 LG그룹 임원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지 2년여 만이다.

LX의 ‘L’은 연결(Link), ‘X’는 미래(NEXT)를 의미한다.

지주회사는 LG에서 인적분할해 설립된 LX홀딩스이며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MMA가 자회사로, LG상사의 자회사 판토스가 손자회사로 편입됐다.

LX홀딩스는 2021년 5월3일 창립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LX홀딩스는 이사회를 통해 구본준을 LX홀딩스의 초대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구본준은 출범사를 통해 “LX홀딩스에 속한 자회사는 국내 팹리스, 인테리어 자재, 화학소재 MMA, 포워딩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며 “우리 안에는 1등 DNA와 세계를 무대로 하는 개척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준은 “변화를 두려워 말고 1등 DNA를 LX 전체에 뿌리내리자”며 “국내 시장을 뛰어넘어 세계로 나아가자”고 덧붙였다.

구본준은 LX의 핵심 가치로 연결과 미래, 사람 등을 제시했다.

LX그룹에 속한 5개 회사는 2020년 기준으로 연결기준 매출 16조248억 원, 영업이익은 4025억 원을 냈다. LX홀딩스를 포함한 자산총액(공정자산)은 8조 원 안팎으로 재계 순위 50위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LX홀딩스는 효율적 지배구조와 견고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자회사 사업을 다각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열분리된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등은 2021년 6월2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각각 회사 이름을 LX인터내셔널과 LX하우시스, LX세미콘으로 변경했다.

판토스와 LGMMA도 회사 이름을 LX판토스와 LXMMA로 바꿨다.
구본준 LG 부회장이 2018년 4월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개장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LG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구본준은 2018년 연말 임원인사에서 LG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조카인 구광모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구광모 회장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LG그룹은 장자가 그룹을 물려받으면 형제나 사촌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구본무 LG그룹 회장 곁에서 그룹 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와 온 구본준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다.

구본준이 계열분리할 가능성이 나왔다. LG상사와 LG이노텍, LG전자의 자동차 전장사업 등을 분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구본무 대신해 LG그룹 현안 챙겨
구본준은 2017년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 내 중요 회의를 주재하며 그룹의 중심을 잡았다.

당시 구본무 회장이 건강 탓에 활발하게 활동하기 어려워진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구본준은 2017년 1월 부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CEO) 40여 명이 모인 ‘글로벌 CEO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같은 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분기 임원세미나도 주재했다. 구본무 회장이 1995년 회장에 취임한 후 다른 사람에게 세미나를 맡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구본준은 세미나에서 4차산업혁명 기술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으며 임원들과 함께 모듈러 생산방식, ICT 발전방향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들었다. 

구본준은 2017년 6월 전략보고회를 주재한 데 이어 11월 LG그룹 연말 업적보고회도 맡았다. LG그룹에서 연말 업적보고회는 임원인사와 직결된 만큼 중요성이 크다.

LG그룹은 당시 결정을 두고 "전장부품사업과 에너지솔루션 등 새 성장사업의 효율적 성과 창출을 위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주력계열사 CEO를 두루 거쳤던 구 부회장의 경험과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구본무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대외적으로 LG그룹을 대표하는 역할도 맡았다.

구본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 LG그룹을 대표하는 오너경영인으로 초청돼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다.

2017년 7월 국내 기업들을 초대한 청와대 호프미팅에도 참석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구본준 LG 부회장(가운데)이 2017년 7월27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호프 미팅)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주사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 맡아 전장부품사업 강화
구본준은 2015년 11월26일 정기인사에서 지주사 LG로 이동해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았다. 이전까지 구본준이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핵심 계열사의 대표이사 맡아 온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신성장사업추진단은 지주회사 차원에서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그룹의 미래를 걸고 추진하는 친환경 에너지와 자동차부품사업의 방향을 잡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구본준은 이를 준비라도 한 듯 2015년부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에 해마다 참석해 전장사업 등 새 성장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2015년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만나 전장부품사업의 협력을 논의했고 2016년 GM, 포드 등의 경영진과 자동차 전장부품사업을 논의하는 등 기업 사이 거래(B2B) 등 신사업에 역량과 인력을 집중했다.

LG그룹이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어 키우고 있는 전장부품사업에서 공격적 행보를 보이며 굵직한 인수합병을 이뤄내는 데도 공을 세웠다.

LG는 2017년 5월 말 이사회에서 LG전자와 힘을 합쳐 오스트리아 기반의 자동차 조명회사 ZKW를 약 1조5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당시 SK그룹이나 삼성그룹과 달리 5천억 원이 넘는 인수합병이 없었던 LG그룹으로서는 상당히 공격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됐다.

구본준은 2017년 8월 말에는 LG전자를 통해 285억 원을 들여 미국 미시간주에 전기차 부품공장을 세울 계획도 세웠다. 미시간주는 주요 완성차업체인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밀집돼 있어 전장부품을 공급하는 데 지리적 장점이 있다.

구본준은 LG화학의 신사업 추진에도 기여했다.

구본준은 2016년 3월 LG화학의 기타비상무이사에 선임됐다. LG화학이 이후 전기차배터리와 바이오 등 신사업 투자를 진행하는데 구본준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구본준은 2016년 LG화학과 LG생명과학을 합병해 바이오부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LG하우시스로부터 점접착 필름사업부문도 인수하는 등 바이오와 정보전자소재부문을 LG화학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데 힘썼다.

△LG전자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위기에 빠진 LG전자를 오너일가가 직접 챙겨 본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2011년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

구본준은 처음부터 ‘독한 DNA'를 강조했다.

구본준은 삼성전자에 매번 뒤져 만년 2위라는 꼬리표가 달린 LG전자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독한 조직문화를 LG전자의 기업 DNA로 삼겠다”며 연초부터 출퇴근 시간을 1시간씩 앞당기는 ’8·5제‘를 실시하고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썼다.

2012년 ‘스마트워크’ 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9월부터 정시퇴근과 휴가 활성화제도를 도입했고 11월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출퇴근시간을 30분씩 앞당겼다. 또 불필요한 보고서 작성 문화를 없애기 위해 모든 보고서 분량을 5장 이하로 제한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4년 LG전자의 영업이익은 다시 1조 원 대로 회복해 2010년 이후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구본준이 LG전자에서 보여준 경영능력을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스마트폰사업 부진으로 위기를 맞고 있던 LG전자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며 LG전자의 체질을 바꾸고 새 성장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있다.

LG전자의 세계 제품전시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해외인사들을 만나는 등 활발한 행보로 LG전자의 글로벌사업 역량을 강화했다.

LG전자의 해외사업과 B2B사업에 집중해 자동차 전장부품과 올레드TV, 태양광에너지모듈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2016년 지주사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을 맡게 된 것도 그동안 구본준이 보여준 추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LG전자가 스마트폰사업의 부진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생활가전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도 나온다. 
구본준 LG 부회장(오른쪽)이 2017년 12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그룹 현장소통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LG상사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2007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를 떠나 LG상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LG상사 대표이사로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적극적 도전과 혁신이 권장되는 문화 속에서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미래지향적 가치를 지닌 자산은 다름 아닌 '사람'임을 강조했다. 

사업적으로는 회사의 체질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수익기반을 만들기 위해 자원개발분야와 기간산업 투자에 힘을 쏟았다.

구본준이 LG상사 대표이사에 취임한 첫해인 2007년만 해도 LG상사는 영업이익 584억 원을 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09년에는 영업이익 1615억 원을 내며 선전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값진 결과로 평가됐다.

LG상사는 파산이 선언된 필리핀 광산사업을 흑자로 돌려놓는 데도 성공했다.

필리핀 라푸라푸광산은 2007년 호주 라파예트가 파산을 선언했다. 당시 LG상사가 지분 15.6%를 보유하고 있었다. LG상사가 같은 해 5월 광산의 직접 경영에 나선 뒤 1년6개월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러시아 사하공화국과 남야쿠치야 종합개발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자원개발에서 성과를 냈고 신재생에너지를 사업목적에 추가해 사업영역을 넓혔다.

△LG필립스LCD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LG디스플레이가 국내를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디스플레이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구본준은 외환위기 당시 반도체사업의 빅딜로 LG그룹의 반도체사업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벌이고 있던 TFT-LCD사업을 따로 분리해 별도의 LCD전문회사인 LGLCD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1999년에는 네덜란드 필립스에서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그는 외자 유치를 통해 LG필립스LCD를 설립한 뒤 직접 대표이사 맡아 그룹 내부 반대에도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구본준은 과감한 투자로 LG필립스LCD를 출범 4년 만인 2003년에 세계 TFT-LCD시장 점유율 1위로 올려놨다.

LG필립스LCD가 2006년 준공한 세계 최대규모의 경기 파주 LCD클러스터는 구본준의 적극적 리더십이 잘 나타나는 일화로 꼽힌다.

LG필립스LCD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파주 일대 135만 평의 대규모 땅에 파주 LCD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이 가운데 50만 평 규모에 월 생산능력 4만5천 장의 7세대 LCD패널공장은 2004년 3월 착공해 2006년 4월 준공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휴전선 접경지역이 불과 10km 남짓 떨어진 곳에 5조3천억 원을 투자함으로써 세계 LCD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이는 모두 구본준의 뚝심 있는 투자의 결과였다.

다른 수치에서도 구본준이 LG디스플레이에 뿌린 씨앗들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LG필립스LCD는 사업 첫해인 1995년에 고작 7천 대의 LCD를 팔아 매출 15억 원을 냈다. 하지만 2004년에는 매출 8조3282억 원, 판매대수 5304만 대를 달성해 비약적 증가세를 보였다.

고용인원도 1170명에 불과했으나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LG반도체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1997년 LG반도체 전무에 올랐다가 그 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LG반도체를 맡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반도체사업을 손수 포기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1999년 그가 LG반도체 대표이사를 맡고 있을 당시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4대 대기업간 구조조정(빅딜) 과정에서 LG그룹은 반도체사업부를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겨줘야 했다.

당시 반도체사업부는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분류됐던 만큼 회사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구본준에게도 충격적 일이었다.

구본준은 LG그룹이 반도체사업을 접어야했던 일을 놓고 기자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야속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비전과 과제
구본준 LG 부회장이 2017년 4월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LG 테크노 콘퍼런스'에서 미주지역에서 유학 중인 R&D 석박사 인재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LG >
LX그룹을 대표할 새 사업을 만들고 안착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구본준은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갖춘 오너경영인으로 유명하다.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를 맡으면서 사업 추진에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 각 회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지위를 만들어냈다.

LG상사에서 이름을 바꾼 LX인터내셔널이 LX그룹의 신사업 추진에 선봉장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LX인터내셔널은 종합상사기업으로 그동안 자원개발 사업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정관 변경을 통해 친환경 관련 폐기물, 헬스케어, 통신업, 전자상거래·디지털콘텐츠·플랫폼, 관광업, 숙박업 등을 새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LX인터내셔널은 2020년 3월 LG 베이징 트윈타워 지분 매각으로 약 3600억 원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자원사업부문에서 동광사업 등을 매각해 미래 먹거리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파악된다.

LX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판토스는 자체적으로 전자상거래(e커머스) 물류 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해 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판토스는 LG그룹 계열사의 물류를 맡고 있어 안정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 회사로 꼽힌다. 판토스 기업공개로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면 전자상거래 뿐만 아니라 다른 신사업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반도체 설계회사인 LX세미콘(옛 실리콘웍스)의 행보도 주목된다.

LX세미콘은 국내 1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로 디스플레이 구동칩 생산을 주력 사업으로 했다. 최근 실리콘카바이드 전력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워칩, 전자기기에 쓰이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새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판토스의 기업공개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구본준은 LX그룹의 계열분리를 추진하면서 각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여러 서적과 신문을 정독하며 향후 비전을 연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과 포스트 코로나19 투자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과 얽혀 있는 지분관계를 해소해 완전한 계열분리도 해야 한다.

LX홀딩스가 LG에서 인적분할하면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LX홀딩스 지분 15.95%를 들고 있다. 구본준은 LG 지분을 7.72%를 보유하고 있다. 

LX홀딩스와 LG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계열분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 평가
구본준 전 LG 부회장(왼쪽)이 2019년 9월8일 오후 부산 기장군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WBSC U-18 야구월드컵)의 결승전인 미국과 대만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한 카리스마의 '보스 기질' 덕분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쏟아놓는 화법을 구사해 '직선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직선적이고 불같은 표현방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구본준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 바로 '다음에 잘하겠다'라고 한다. 에두르는 표현보다는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는 것을 좋아한다.

LG전자와 LG화학, LG반도체,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LG그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계열사에서 임원과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치며 IT기기, 반도체, LCD, 자원개발 등 주요사업 이끄는 등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쌓아왔다.

특히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을 선도하려는 열정이 크고 계산통계학과 출신으로 숫자에 밝다고 알려졌다.

재벌 가운데 엔지니어 출신은 드물다. 더구나 단지 출신만 엔지니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술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는 점에서 다른 오너경영인들과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기술에 강한 오너경영인이라는 점은 여러 일화에서 드러난다.

구본준은 2002년 1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기자들과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와인이나 한 잔 하자”며 비즈니스석 뒷자리로 나온 그는 위스키까지 곁들이면서 장장 6시간 동안 얘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경쟁기업의 전략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LCD 분야에서 곧 세계 1등에 오를 것이라는 자신감을 엿보였다고 한다.

새로 공장을 세울 때면 배치도를 훤하게 꿰고 다닐 정도다. LG의 한 임원은 구본준을 놓고 “부품 이동 경로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 자기 부품 생산밖에 모르던 당시 공장장들이 혼나는 일이 많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구본준이 기술에 많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도 있다.

그는 2005년 5월 LG필립스LCD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을 때 경북 구미에 위치한 LCD생산라인 공장으로 포항공대 학사 및 석사과정 100여 명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구본준은 그 자리에서 TFT-LCD 제조 과정과 공정별 기술, 핵심 요소 기술 등을 설명했는데 전문 엔지니어들에 못지 않은 심도 깊은 강의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구본준은 6개월 뒤에도 경기 파주 공장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과 교수들 250여 명을 불러 비슷한 내용으로 특별강연을 했다. 당시 직접 강연을 들었던 사람에 따르면 기술에 대한 구본준의 이해력이 남달랐으며 지식을 교수들 앞에서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유학과 해외지사 근무경험이 있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에 능숙하다.

중국과 서양, 역사, 문화에도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대한항공회의소 행사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의 문화재 설명이 부족하자 그가 직접 안내자로 나서 중국어를 섞어가며 해설하자 당시 동행한 부회장단이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정갈하게 넘기는 깔끔한 외모 탓에 다소 차가운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털털하고 구수한 면모도 많다고 한다.

임원들 상가를 찾을 때면 한두 시간 이상 빈소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상주를 위로한다. LG상사 대표이사를 맡을 때 한 계열사의 임원 상가에 들렸다가 빈소가 한산한 것을 보고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람을 모으고 밤새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경복고 출신으로 막강한 고교 인맥을 자랑한다. 동문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있다.

형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어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범LG가의 4형제는 유교적 가풍에 따르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당한 야구광이다. 야구 명문 중학교로 유명한 경남중학교 출신이다.

중학교과 고등학교 시절 야구팀에서 선수로 뛰었고 동호회 활동으로도 야구를 계속했다. 2008년 LG트윈스 구단주를 맡은 뒤 해마다 일본 전지훈련 캠프장을 찾았다.

2015년 8월 한국 여자야구를 응원하며 시구자로 나서 역동적 투구폼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LG전자는 경기 기회가 부족한 여자 야구인들 처지를 안타까워하다가 2014년 여자야구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국여자야구연맹,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등과 협의해 대회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피자 CEO’라는 별명이 있었다. 2011년 4월부터 임직원과 소통 강화와 사기 진작을 위해 직원들에게 ‘피자’를 선물했다. 2014년까지 LG전자 직원 5만여 명이 피자를 받았다.

구본준은 피자 케이스에 격려 메시지를 남기며 지역을 가리지 않고 세계로 배달했다. 인도와 필리핀, 이집트 등 80여 곳에 이르는 세계 곳곳의 LG전자 해외법인과 현지지사에도 피자가 전달됐다. 

와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어렵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와인만큼 배워도 끝이 없어 재미나는 술도 없다”고 말한다. LG상사 대표 시절인 2007년 와인수입업체 트윈와인을 설립했으며 다양한 와인의 정보를 담은 책자 발간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원들에게 ‘함께 마시며 소통하라’는 의미로 직접 와인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평소 가장 즐겨찾는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은 각각 칠레산 레드와인인 ‘비냐 마이포’와 뉴질랜드산 화이트와인 ‘실레니’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사고
구본준 LG 부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이 2018년 5월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회사이름 ‘LX’ 상표권 논란
구본준이 LG그룹에서 인적분할해 계열분리하는 새 그룹의 이름을 LX그룹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LX한국국토정보공사와 상표권 분쟁이 일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21년 4월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LG그룹을 신고했다.

신설지주회사의 이름을 LX로 정했는데 이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다른 사업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주장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지난 10년 동안 332억 원을 투입하는 등 LX 브랜딩에 공을 들여왔는데 LX홀딩스가 출범하게 되면 국민에게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민간기업과 같은 회사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공공기관인 국토정보공사의 신뢰성과 공신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LX그룹과 LX한국국토정보공사 관계자들은 수 차례 만남 뒤에 상호와 상표권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LX홀딩스는 2021년 5월27일 LX한국국토정보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LX’ 상호 및 상표 사용 관련 최종합의를 하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LX홀딩스와 LX공사는 각자 하는 사업과 관련해 특허청에 출원했거나 등록된 상표의 사용을 상호 존중하기로 했다.

상생과 상호협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각자의 사업을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간정보인프라, 스마트팜, 플랜트사업 등 해외사업과 첨단기술 사업분야(디지털트윈, 자율주행, 드론,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스타트업 지원과 스포츠팀 후원, 취약계층 지원, 기후변화 대응분야 협업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 실현과 민·관 상생에 기여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 경력

1978년부터 1980년 7월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다.

1982년 7월 미국 AT&T테크놀로지에 입사했다.

1985년 금성반도체 부장으로 입사했다.

1987년 금성사로 자리를 옮겼다.

1989년 이사대우로 승진해 정보기기 담당 임원을 맡았다.

1991년 이사로 승진하며 금성사 동경사무소를 담당했다.

1994년 상무로 승진해 금성사 모니터 OBU 담당 사업부장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LG전자 비디오 SBU 담당 사업본부장을 맡았다.

1996년 전무로 승진하며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7년 LG반도체로 이동했으며 같은 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올랐다.

1999년 LGLCD 대표이사에 선임된 뒤 네덜란스 필립스에서 16억 달러 외자를 유치해 LG필립스LCD를 설립했다.

1999년 사장으로 승진해 LG필립스LCD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4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LG상사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구단주를 맡았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프로농구단 LG세이커스의 구단주를 역임했다.

2011년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6년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LG 부회장으로 일했다.

2019년부터 2021년 4월까지 LG 고문을 맡았다.

2021년 5월 출범한 LX그룹의 회장에 올랐다. LX홀딩스 대표이사도 맡는다.

◆ 학력

1970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미국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 가족관계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아버지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어머니 하정임씨는 경남 진양군의 선비 집안인 하순봉씨의 3남3녀 가운데 장녀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형, 구훤미씨가 누나다. 아래로 여동생 구미정씨와 남동생 구본식 LT그룹 회장이 있다.

부인 김은미씨와 사이에 아들 구형모씨와 딸 구연제씨를 뒀다.

구형모씨는 2014년 4월 LG전자에 대리직급으로 입사해 경영전략 업무를 맡았다. LG전자 일본법인에서 차장~부장급에 해당하는 책임으로 일하다가 2021년 5월 LX홀딩스 경영기획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딸 구연제씨는 LG아트센터에서 일하다가 벤처캐피탈인 마젤란기술투자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00년 11월1일 LG전자와 필립스 합작법인 출범을 통해 외국 투자유치를 이끌어낸 공로로 산업자원부가 추천해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6년 4월27일 경기 파주 LCD클러스터를 조성해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자원부 추천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12월2일 로봇인의 밤 행사에서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기타

2019년 LG에서 보수로 121억400만 원을 받았다. 급여 5억2200만 원, 상여 17억4천만 원, 퇴직금 98억4200만 원 등이다.

육군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 어록
▲ 2012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米壽宴·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앞줄 맨 왼쪽)과 구본준 LG 부회장(뒷줄 왼쪽 두 번째) 등이 참석했다.
“우리가 가진 ‘1등 DNA’를 LX 전체에 뿌리내리자.” (2021/05/03, LX그룹 출범 이후 LX홀딩스와 자회사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전달하며)

“이번에 인수하는 ZKW는 자동차용 헤드램프분야에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우리가 주력하는 자동차 부품사업에서 시장 선도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2018/05/15, 5월 임원세미나에서)

“경영환경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사업경쟁력의 원천은 시장과 고객에 있음을 상기해야 하며 경영진이 기본을 준수하고 디테일에 기반한 현장 관리를 보다 철저히 실행해야 한다.” (2018/03/06, 3월 임원세미나에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열정과 창의는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패기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도전한다면 분명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2017/11/02, LG그룹 대학생 해외탐방 시상식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과제들의 진척상황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핵심 연구개발인력 등 필요한 자원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되고 있는 LG사이언스파크를 통해 LG의 미래 사업을 이끄는 기술 융복합 성공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2017/10/12, LG그룹 임원세미나에서)

“산업 트렌드와 경쟁 양상을 주시하고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해 하반기에 철저하게 실행해달라.” (2017/07/04, LG그룹 3분기 임원세미나에서)

“글로벌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경쟁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쟁 우위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다.” (2017/05/25, LG그룹 임원세미나에서)

“올해는 서울 마곡에 대규모 융복합 연구단지를 준공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첨단 시설에서 연구 활동에 매진하여 최고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2017/04/15, 미국 뉴욕에서 연구개발 분야 인재를 유치행사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내외 경영환경, 특히 경쟁 국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과 그 방식에 얽매여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면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사업구조를 한층 더 체계화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제대로 된 경영혁신 활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2017/01/19, LG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영속하는 기업으로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전략회의에서)

“사업의 근간인 연구개발(R&D)과 제조 부문이 중심이 돼 경쟁력과 수익성을 강화해야 한다. 저성장,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잠재위험을 발굴하고 해결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 (2017/01/19, LG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영속하는 기업으로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전략회의에서)

“힘들 것, 한참 멀었다.” (2016/05/08,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구태회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이 '차 전장부품 사업의 가시적 성과가 올해 안에 나올수 있느냐'고 묻자)

“자동차부품 사업은 10번 하면 9번은 돈을 잃는 카지노 게임과 같다. 열심히 해야 한다. 자동차는 인공지능화될 것이다. 이에 대비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16/01/07,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6'에서)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미래사업의 기회를 확보해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흔들림 없는 기준은 항상 고객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성공적 해로 만들어보자.” (2015/01/02, 2015 신년사에서)

“G3의 슬로건은 단순한 것이 새로운 스마트(Simple is the new smart)다. 이는 LG전자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업무에 매달리기보다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은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서 스마트하게 일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2014/07, LG전자 사내방송에서 ‘스마트워크’를 강조하며)

“휴대폰사업의 고전으로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 오겠다. 독한 조직문화를 LG전자의 DNA로 삼을 것이다.” “LG전자는 옛날만 해도 사업을 강하고 독하게 추진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많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해야 할 일은 LG전자에 독한 DNA를 이식하는 것이다.” (2011/01/09, 미국 CES 현장을 찾은 취임 뒤 첫 간담회에서)

“팀워크를 높이는 팀 문화를 갖추고 팀플레이에 철저히 해야 한다. 최근 6년 동안 우리 구단은 프런트와 코치진, 선수들 모두 많은 실수를 범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반성의 시간부터 갖자.” (2009/01/08, LG트윈스 신년하례식에서)

“신발끈을 동여매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2005년을 맞이합시다.” (2004/12/28, 1만여 명의 LG필립스LCD 임직원 전원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며)

◆ 경영활동의 공과

△LX그룹 출범
구본준은 2021년 5월1일을 분할기일로 LG그룹 계열사 5개 기업을 계열분리해 LX그룹을 출범했다.

2018년 연말 LG그룹 임원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지 2년여 만이다.

LX의 ‘L’은 연결(Link), ‘X’는 미래(NEXT)를 의미한다.

지주회사는 LG에서 인적분할해 설립된 LX홀딩스이며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MMA가 자회사로, LG상사의 자회사 판토스가 손자회사로 편입됐다.

LX홀딩스는 2021년 5월3일 창립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LX홀딩스는 이사회를 통해 구본준을 LX홀딩스의 초대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구본준은 출범사를 통해 “LX홀딩스에 속한 자회사는 국내 팹리스, 인테리어 자재, 화학소재 MMA, 포워딩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며 “우리 안에는 1등 DNA와 세계를 무대로 하는 개척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준은 “변화를 두려워 말고 1등 DNA를 LX 전체에 뿌리내리자”며 “국내 시장을 뛰어넘어 세계로 나아가자”고 덧붙였다.

구본준은 LX의 핵심 가치로 연결과 미래, 사람 등을 제시했다.

LX그룹에 속한 5개 회사는 2020년 기준으로 연결기준 매출 16조248억 원, 영업이익은 4025억 원을 냈다. LX홀딩스를 포함한 자산총액(공정자산)은 8조 원 안팎으로 재계 순위 50위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LX홀딩스는 효율적 지배구조와 견고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자회사 사업을 다각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열분리된 LG상사와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등은 2021년 6월2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각각 회사 이름을 LX인터내셔널과 LX하우시스, LX세미콘으로 변경했다.

판토스와 LGMMA도 회사 이름을 LX판토스와 LXMMA로 바꿨다.
구본준 LG 부회장이 2018년 4월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개장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LG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구본준은 2018년 연말 임원인사에서 LG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조카인 구광모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구광모 회장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LG그룹은 장자가 그룹을 물려받으면 형제나 사촌은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구본무 LG그룹 회장 곁에서 그룹 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와 온 구본준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다.

구본준이 계열분리할 가능성이 나왔다. LG상사와 LG이노텍, LG전자의 자동차 전장사업 등을 분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구본무 대신해 LG그룹 현안 챙겨
구본준은 2017년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 내 중요 회의를 주재하며 그룹의 중심을 잡았다.

당시 구본무 회장이 건강 탓에 활발하게 활동하기 어려워진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구본준은 2017년 1월 부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CEO) 40여 명이 모인 ‘글로벌 CEO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같은 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분기 임원세미나도 주재했다. 구본무 회장이 1995년 회장에 취임한 후 다른 사람에게 세미나를 맡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구본준은 세미나에서 4차산업혁명 기술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으며 임원들과 함께 모듈러 생산방식, ICT 발전방향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들었다. 

구본준은 2017년 6월 전략보고회를 주재한 데 이어 11월 LG그룹 연말 업적보고회도 맡았다. LG그룹에서 연말 업적보고회는 임원인사와 직결된 만큼 중요성이 크다.

LG그룹은 당시 결정을 두고 "전장부품사업과 에너지솔루션 등 새 성장사업의 효율적 성과 창출을 위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주력계열사 CEO를 두루 거쳤던 구 부회장의 경험과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구본무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대외적으로 LG그룹을 대표하는 역할도 맡았다.

구본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 LG그룹을 대표하는 오너경영인으로 초청돼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다.

2017년 7월 국내 기업들을 초대한 청와대 호프미팅에도 참석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구본준 LG 부회장(가운데)이 2017년 7월27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호프 미팅)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주사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 맡아 전장부품사업 강화
구본준은 2015년 11월26일 정기인사에서 지주사 LG로 이동해 신성장사업추진단장을 맡았다. 이전까지 구본준이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핵심 계열사의 대표이사 맡아 온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신성장사업추진단은 지주회사 차원에서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그룹의 미래를 걸고 추진하는 친환경 에너지와 자동차부품사업의 방향을 잡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구본준은 이를 준비라도 한 듯 2015년부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에 해마다 참석해 전장사업 등 새 성장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2015년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만나 전장부품사업의 협력을 논의했고 2016년 GM, 포드 등의 경영진과 자동차 전장부품사업을 논의하는 등 기업 사이 거래(B2B) 등 신사업에 역량과 인력을 집중했다.

LG그룹이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어 키우고 있는 전장부품사업에서 공격적 행보를 보이며 굵직한 인수합병을 이뤄내는 데도 공을 세웠다.

LG는 2017년 5월 말 이사회에서 LG전자와 힘을 합쳐 오스트리아 기반의 자동차 조명회사 ZKW를 약 1조5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당시 SK그룹이나 삼성그룹과 달리 5천억 원이 넘는 인수합병이 없었던 LG그룹으로서는 상당히 공격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됐다.

구본준은 2017년 8월 말에는 LG전자를 통해 285억 원을 들여 미국 미시간주에 전기차 부품공장을 세울 계획도 세웠다. 미시간주는 주요 완성차업체인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밀집돼 있어 전장부품을 공급하는 데 지리적 장점이 있다.

구본준은 LG화학의 신사업 추진에도 기여했다.

구본준은 2016년 3월 LG화학의 기타비상무이사에 선임됐다. LG화학이 이후 전기차배터리와 바이오 등 신사업 투자를 진행하는데 구본준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구본준은 2016년 LG화학과 LG생명과학을 합병해 바이오부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LG하우시스로부터 점접착 필름사업부문도 인수하는 등 바이오와 정보전자소재부문을 LG화학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데 힘썼다.

△LG전자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위기에 빠진 LG전자를 오너일가가 직접 챙겨 본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2011년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

구본준은 처음부터 ‘독한 DNA'를 강조했다.

구본준은 삼성전자에 매번 뒤져 만년 2위라는 꼬리표가 달린 LG전자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독한 조직문화를 LG전자의 기업 DNA로 삼겠다”며 연초부터 출퇴근 시간을 1시간씩 앞당기는 ’8·5제‘를 실시하고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썼다.

2012년 ‘스마트워크’ 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9월부터 정시퇴근과 휴가 활성화제도를 도입했고 11월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출퇴근시간을 30분씩 앞당겼다. 또 불필요한 보고서 작성 문화를 없애기 위해 모든 보고서 분량을 5장 이하로 제한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4년 LG전자의 영업이익은 다시 1조 원 대로 회복해 2010년 이후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구본준이 LG전자에서 보여준 경영능력을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스마트폰사업 부진으로 위기를 맞고 있던 LG전자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며 LG전자의 체질을 바꾸고 새 성장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있다.

LG전자의 세계 제품전시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해외인사들을 만나는 등 활발한 행보로 LG전자의 글로벌사업 역량을 강화했다.

LG전자의 해외사업과 B2B사업에 집중해 자동차 전장부품과 올레드TV, 태양광에너지모듈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2016년 지주사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을 맡게 된 것도 그동안 구본준이 보여준 추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LG전자가 스마트폰사업의 부진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생활가전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도 나온다. 
구본준 LG 부회장(오른쪽)이 2017년 12월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LG그룹 현장소통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LG상사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2007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를 떠나 LG상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LG상사 대표이사로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적극적 도전과 혁신이 권장되는 문화 속에서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미래지향적 가치를 지닌 자산은 다름 아닌 '사람'임을 강조했다. 

사업적으로는 회사의 체질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수익기반을 만들기 위해 자원개발분야와 기간산업 투자에 힘을 쏟았다.

구본준이 LG상사 대표이사에 취임한 첫해인 2007년만 해도 LG상사는 영업이익 584억 원을 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09년에는 영업이익 1615억 원을 내며 선전했다.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욱 값진 결과로 평가됐다.

LG상사는 파산이 선언된 필리핀 광산사업을 흑자로 돌려놓는 데도 성공했다.

필리핀 라푸라푸광산은 2007년 호주 라파예트가 파산을 선언했다. 당시 LG상사가 지분 15.6%를 보유하고 있었다. LG상사가 같은 해 5월 광산의 직접 경영에 나선 뒤 1년6개월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러시아 사하공화국과 남야쿠치야 종합개발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자원개발에서 성과를 냈고 신재생에너지를 사업목적에 추가해 사업영역을 넓혔다.

△LG필립스LCD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LG디스플레이가 국내를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디스플레이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구본준은 외환위기 당시 반도체사업의 빅딜로 LG그룹의 반도체사업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벌이고 있던 TFT-LCD사업을 따로 분리해 별도의 LCD전문회사인 LGLCD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1999년에는 네덜란드 필립스에서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그는 외자 유치를 통해 LG필립스LCD를 설립한 뒤 직접 대표이사 맡아 그룹 내부 반대에도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구본준은 과감한 투자로 LG필립스LCD를 출범 4년 만인 2003년에 세계 TFT-LCD시장 점유율 1위로 올려놨다.

LG필립스LCD가 2006년 준공한 세계 최대규모의 경기 파주 LCD클러스터는 구본준의 적극적 리더십이 잘 나타나는 일화로 꼽힌다.

LG필립스LCD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지원으로 파주 일대 135만 평의 대규모 땅에 파주 LCD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이 가운데 50만 평 규모에 월 생산능력 4만5천 장의 7세대 LCD패널공장은 2004년 3월 착공해 2006년 4월 준공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휴전선 접경지역이 불과 10km 남짓 떨어진 곳에 5조3천억 원을 투자함으로써 세계 LCD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이는 모두 구본준의 뚝심 있는 투자의 결과였다.

다른 수치에서도 구본준이 LG디스플레이에 뿌린 씨앗들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LG필립스LCD는 사업 첫해인 1995년에 고작 7천 대의 LCD를 팔아 매출 15억 원을 냈다. 하지만 2004년에는 매출 8조3282억 원, 판매대수 5304만 대를 달성해 비약적 증가세를 보였다.

고용인원도 1170명에 불과했으나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LG반도체 대표이사 시절
구본준은 1997년 LG반도체 전무에 올랐다가 그 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를 맡았다.

하지만 LG반도체를 맡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반도체사업을 손수 포기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다.

1999년 그가 LG반도체 대표이사를 맡고 있을 당시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4대 대기업간 구조조정(빅딜) 과정에서 LG그룹은 반도체사업부를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겨줘야 했다.

당시 반도체사업부는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분류됐던 만큼 회사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구본준에게도 충격적 일이었다.

구본준은 LG그룹이 반도체사업을 접어야했던 일을 놓고 기자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야속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비전과 과제
구본준 LG 부회장이 2017년 4월15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LG 테크노 콘퍼런스'에서 미주지역에서 유학 중인 R&D 석박사 인재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LG >
LX그룹을 대표할 새 사업을 만들고 안착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구본준은 타고난 승부사 기질을 갖춘 오너경영인으로 유명하다.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를 맡으면서 사업 추진에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 각 회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지위를 만들어냈다.

LG상사에서 이름을 바꾼 LX인터내셔널이 LX그룹의 신사업 추진에 선봉장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LX인터내셔널은 종합상사기업으로 그동안 자원개발 사업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정관 변경을 통해 친환경 관련 폐기물, 헬스케어, 통신업, 전자상거래·디지털콘텐츠·플랫폼, 관광업, 숙박업 등을 새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LX인터내셔널은 2020년 3월 LG 베이징 트윈타워 지분 매각으로 약 3600억 원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자원사업부문에서 동광사업 등을 매각해 미래 먹거리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파악된다.

LX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판토스는 자체적으로 전자상거래(e커머스) 물류 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해 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판토스는 LG그룹 계열사의 물류를 맡고 있어 안정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 회사로 꼽힌다. 판토스 기업공개로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면 전자상거래 뿐만 아니라 다른 신사업으로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반도체 설계회사인 LX세미콘(옛 실리콘웍스)의 행보도 주목된다.

LX세미콘은 국내 1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로 디스플레이 구동칩 생산을 주력 사업으로 했다. 최근 실리콘카바이드 전력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워칩, 전자기기에 쓰이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새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판토스의 기업공개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구본준은 LX그룹의 계열분리를 추진하면서 각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여러 서적과 신문을 정독하며 향후 비전을 연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과 포스트 코로나19 투자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과 얽혀 있는 지분관계를 해소해 완전한 계열분리도 해야 한다.

LX홀딩스가 LG에서 인적분할하면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LX홀딩스 지분 15.95%를 들고 있다. 구본준은 LG 지분을 7.72%를 보유하고 있다. 

LX홀딩스와 LG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계열분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 평가
구본준 전 LG 부회장(왼쪽)이 2019년 9월8일 오후 부산 기장군 현대차드림볼파크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WBSC U-18 야구월드컵)의 결승전인 미국과 대만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한 카리스마의 '보스 기질' 덕분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쏟아놓는 화법을 구사해 '직선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직선적이고 불같은 표현방식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구본준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 바로 '다음에 잘하겠다'라고 한다. 에두르는 표현보다는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는 것을 좋아한다.

LG전자와 LG화학, LG반도체,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LG그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계열사에서 임원과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치며 IT기기, 반도체, LCD, 자원개발 등 주요사업 이끄는 등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쌓아왔다.

특히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을 선도하려는 열정이 크고 계산통계학과 출신으로 숫자에 밝다고 알려졌다.

재벌 가운데 엔지니어 출신은 드물다. 더구나 단지 출신만 엔지니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술에 많은 관심을 쏟아왔다는 점에서 다른 오너경영인들과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가 기술에 강한 오너경영인이라는 점은 여러 일화에서 드러난다.

구본준은 2002년 1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기자들과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와인이나 한 잔 하자”며 비즈니스석 뒷자리로 나온 그는 위스키까지 곁들이면서 장장 6시간 동안 얘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경쟁기업의 전략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LCD 분야에서 곧 세계 1등에 오를 것이라는 자신감을 엿보였다고 한다.

새로 공장을 세울 때면 배치도를 훤하게 꿰고 다닐 정도다. LG의 한 임원은 구본준을 놓고 “부품 이동 경로를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라 자기 부품 생산밖에 모르던 당시 공장장들이 혼나는 일이 많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구본준이 기술에 많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도 있다.

그는 2005년 5월 LG필립스LCD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을 때 경북 구미에 위치한 LCD생산라인 공장으로 포항공대 학사 및 석사과정 100여 명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구본준은 그 자리에서 TFT-LCD 제조 과정과 공정별 기술, 핵심 요소 기술 등을 설명했는데 전문 엔지니어들에 못지 않은 심도 깊은 강의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구본준은 6개월 뒤에도 경기 파주 공장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과 교수들 250여 명을 불러 비슷한 내용으로 특별강연을 했다. 당시 직접 강연을 들었던 사람에 따르면 기술에 대한 구본준의 이해력이 남달랐으며 지식을 교수들 앞에서 정확히 전달하는 능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유학과 해외지사 근무경험이 있어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에 능숙하다.

중국과 서양, 역사, 문화에도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대한항공회의소 행사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의 문화재 설명이 부족하자 그가 직접 안내자로 나서 중국어를 섞어가며 해설하자 당시 동행한 부회장단이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정갈하게 넘기는 깔끔한 외모 탓에 다소 차가운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털털하고 구수한 면모도 많다고 한다.

임원들 상가를 찾을 때면 한두 시간 이상 빈소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상주를 위로한다. LG상사 대표이사를 맡을 때 한 계열사의 임원 상가에 들렸다가 빈소가 한산한 것을 보고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람을 모으고 밤새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경복고 출신으로 막강한 고교 인맥을 자랑한다. 동문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있다.

형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어려워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범LG가의 4형제는 유교적 가풍에 따르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당한 야구광이다. 야구 명문 중학교로 유명한 경남중학교 출신이다.

중학교과 고등학교 시절 야구팀에서 선수로 뛰었고 동호회 활동으로도 야구를 계속했다. 2008년 LG트윈스 구단주를 맡은 뒤 해마다 일본 전지훈련 캠프장을 찾았다.

2015년 8월 한국 여자야구를 응원하며 시구자로 나서 역동적 투구폼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LG전자는 경기 기회가 부족한 여자 야구인들 처지를 안타까워하다가 2014년 여자야구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국여자야구연맹,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등과 협의해 대회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피자 CEO’라는 별명이 있었다. 2011년 4월부터 임직원과 소통 강화와 사기 진작을 위해 직원들에게 ‘피자’를 선물했다. 2014년까지 LG전자 직원 5만여 명이 피자를 받았다.

구본준은 피자 케이스에 격려 메시지를 남기며 지역을 가리지 않고 세계로 배달했다. 인도와 필리핀, 이집트 등 80여 곳에 이르는 세계 곳곳의 LG전자 해외법인과 현지지사에도 피자가 전달됐다. 

와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어렵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와인만큼 배워도 끝이 없어 재미나는 술도 없다”고 말한다. LG상사 대표 시절인 2007년 와인수입업체 트윈와인을 설립했으며 다양한 와인의 정보를 담은 책자 발간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원들에게 ‘함께 마시며 소통하라’는 의미로 직접 와인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평소 가장 즐겨찾는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은 각각 칠레산 레드와인인 ‘비냐 마이포’와 뉴질랜드산 화이트와인 ‘실레니’인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사고
구본준 LG 부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이 2018년 5월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회사이름 ‘LX’ 상표권 논란
구본준이 LG그룹에서 인적분할해 계열분리하는 새 그룹의 이름을 LX그룹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LX한국국토정보공사와 상표권 분쟁이 일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21년 4월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LG그룹을 신고했다.

신설지주회사의 이름을 LX로 정했는데 이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다른 사업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주장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지난 10년 동안 332억 원을 투입하는 등 LX 브랜딩에 공을 들여왔는데 LX홀딩스가 출범하게 되면 국민에게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민간기업과 같은 회사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공공기관인 국토정보공사의 신뢰성과 공신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LX그룹과 LX한국국토정보공사 관계자들은 수 차례 만남 뒤에 상호와 상표권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LX홀딩스는 2021년 5월27일 LX한국국토정보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LX’ 상호 및 상표 사용 관련 최종합의를 하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LX홀딩스와 LX공사는 각자 하는 사업과 관련해 특허청에 출원했거나 등록된 상표의 사용을 상호 존중하기로 했다.

상생과 상호협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각자의 사업을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간정보인프라, 스마트팜, 플랜트사업 등 해외사업과 첨단기술 사업분야(디지털트윈, 자율주행, 드론,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스타트업 지원과 스포츠팀 후원, 취약계층 지원, 기후변화 대응분야 협업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 실현과 민·관 상생에 기여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 경력


1978년부터 1980년 7월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했다.

1982년 7월 미국 AT&T테크놀로지에 입사했다.

1985년 금성반도체 부장으로 입사했다.

1987년 금성사로 자리를 옮겼다.

1989년 이사대우로 승진해 정보기기 담당 임원을 맡았다.

1991년 이사로 승진하며 금성사 동경사무소를 담당했다.

1994년 상무로 승진해 금성사 모니터 OBU 담당 사업부장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LG전자 비디오 SBU 담당 사업본부장을 맡았다.

1996년 전무로 승진하며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7년 LG반도체로 이동했으며 같은 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에 올랐다.

1999년 LGLCD 대표이사에 선임된 뒤 네덜란스 필립스에서 16억 달러 외자를 유치해 LG필립스LCD를 설립했다.

1999년 사장으로 승진해 LG필립스LCD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4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LG상사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구단주를 맡았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프로농구단 LG세이커스의 구단주를 역임했다.

2011년 LG전자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6년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LG 부회장으로 일했다.

2019년부터 2021년 4월까지 LG 고문을 맡았다.

2021년 5월 출범한 LX그룹의 회장에 올랐다. LX홀딩스 대표이사도 맡는다.

◆ 학력

1970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8년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미국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 가족관계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아버지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장남이다. 어머니 하정임씨는 경남 진양군의 선비 집안인 하순봉씨의 3남3녀 가운데 장녀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형, 구훤미씨가 누나다. 아래로 여동생 구미정씨와 남동생 구본식 LT그룹 회장이 있다.

부인 김은미씨와 사이에 아들 구형모씨와 딸 구연제씨를 뒀다.

구형모씨는 2014년 4월 LG전자에 대리직급으로 입사해 경영전략 업무를 맡았다. LG전자 일본법인에서 차장~부장급에 해당하는 책임으로 일하다가 2021년 5월 LX홀딩스 경영기획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딸 구연제씨는 LG아트센터에서 일하다가 벤처캐피탈인 마젤란기술투자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훈

2000년 11월1일 LG전자와 필립스 합작법인 출범을 통해 외국 투자유치를 이끌어낸 공로로 산업자원부가 추천해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6년 4월27일 경기 파주 LCD클러스터를 조성해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자원부 추천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12월2일 로봇인의 밤 행사에서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기타

2019년 LG에서 보수로 121억400만 원을 받았다. 급여 5억2200만 원, 상여 17억4천만 원, 퇴직금 98억4200만 원 등이다.

육군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 어록
▲ 2012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米壽宴·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앞줄 맨 왼쪽)과 구본준 LG 부회장(뒷줄 왼쪽 두 번째) 등이 참석했다.
“우리가 가진 ‘1등 DNA’를 LX 전체에 뿌리내리자.” (2021/05/03, LX그룹 출범 이후 LX홀딩스와 자회사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전달하며)

“이번에 인수하는 ZKW는 자동차용 헤드램프분야에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우리가 주력하는 자동차 부품사업에서 시장 선도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2018/05/15, 5월 임원세미나에서)

“경영환경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사업경쟁력의 원천은 시장과 고객에 있음을 상기해야 하며 경영진이 기본을 준수하고 디테일에 기반한 현장 관리를 보다 철저히 실행해야 한다.” (2018/03/06, 3월 임원세미나에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열정과 창의는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패기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도전한다면 분명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2017/11/02, LG그룹 대학생 해외탐방 시상식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과제들의 진척상황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핵심 연구개발인력 등 필요한 자원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10월부터 입주가 시작되고 있는 LG사이언스파크를 통해 LG의 미래 사업을 이끄는 기술 융복합 성공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2017/10/12, LG그룹 임원세미나에서)

“산업 트렌드와 경쟁 양상을 주시하고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해 하반기에 철저하게 실행해달라.” (2017/07/04, LG그룹 3분기 임원세미나에서)

“글로벌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경쟁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경쟁 우위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다.” (2017/05/25, LG그룹 임원세미나에서)

“올해는 서울 마곡에 대규모 융복합 연구단지를 준공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첨단 시설에서 연구 활동에 매진하여 최고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2017/04/15, 미국 뉴욕에서 연구개발 분야 인재를 유치행사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내외 경영환경, 특히 경쟁 국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과 그 방식에 얽매여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면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사업구조를 한층 더 체계화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제대로 된 경영혁신 활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2017/01/19, LG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영속하는 기업으로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전략회의에서)

“사업의 근간인 연구개발(R&D)과 제조 부문이 중심이 돼 경쟁력과 수익성을 강화해야 한다. 저성장,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환경에서 잠재위험을 발굴하고 해결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 (2017/01/19, LG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영속하는 기업으로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전략회의에서)

“힘들 것, 한참 멀었다.” (2016/05/08,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구태회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이 '차 전장부품 사업의 가시적 성과가 올해 안에 나올수 있느냐'고 묻자)

“자동차부품 사업은 10번 하면 9번은 돈을 잃는 카지노 게임과 같다. 열심히 해야 한다. 자동차는 인공지능화될 것이다. 이에 대비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16/01/07,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6'에서)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미래사업의 기회를 확보해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흔들림 없는 기준은 항상 고객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성공적 해로 만들어보자.” (2015/01/02, 2015 신년사에서)

“G3의 슬로건은 단순한 것이 새로운 스마트(Simple is the new smart)다. 이는 LG전자가 지향해야 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업무에 매달리기보다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은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서 스마트하게 일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2014/07, LG전자 사내방송에서 ‘스마트워크’를 강조하며)

“휴대폰사업의 고전으로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 오겠다. 독한 조직문화를 LG전자의 DNA로 삼을 것이다.” “LG전자는 옛날만 해도 사업을 강하고 독하게 추진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많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해야 할 일은 LG전자에 독한 DNA를 이식하는 것이다.” (2011/01/09, 미국 CES 현장을 찾은 취임 뒤 첫 간담회에서)

“팀워크를 높이는 팀 문화를 갖추고 팀플레이에 철저히 해야 한다. 최근 6년 동안 우리 구단은 프런트와 코치진, 선수들 모두 많은 실수를 범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반성의 시간부터 갖자.” (2009/01/08, LG트윈스 신년하례식에서)

“신발끈을 동여매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2005년을 맞이합시다.” (2004/12/28, 1만여 명의 LG필립스LCD 임직원 전원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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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maca
(122.43.171.140, 130.176.14.143)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제사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2021-07-13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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