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1-02-08 15: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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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애플과 협력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글로벌 기술 선도업체 혹은 미래 모빌리티시장 진출을 원하는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전기차와 수소차, 도심항공 모빌리티(UAM) 등 미래 모빌리티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술 선도업체와 협업이 필수적이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8일 현대차는 공시를 통해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다수의 기업과 자율주행 전기차 공동개발 협력 요청받고 있으나 아직 초기단계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애플과 협력설을 부인하면서도 애플과 협력 가능성이 처음 불거졌던 1월 초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협력을 ‘요청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율주행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는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 선도업체도 혼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으로 평가된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우버, 알리바바, 바이두 등 내로라하는 세계 기술 선도업체들은 자율주행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산업에 진출하며 파트너 찾기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고 중국 알리바바는 상하이자동차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전기차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완전 자율주행시대에는 운전자가 운전에서 해방되면서 자동차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기술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기술 선도업체는 앞선 기술을 구현할 플랫폼인 자동차를 확보하기 위해, 완성차업체는 앞선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가 필요한 셈인데 앞으로 이런 흐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업체(빅테크기업)는 기존 완성차업체와 협업하면 자율주행 전기차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고 기존 자동차업체는 기술업체와 협업하면 자율주행기술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이룰 수 있다”며 “기술업체와 완성차업체의 협업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애플과 협력설은 그 자체만으로 현대차그룹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애플 협력설은 국내 매체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애플 전문가로 평가되는 해외 연구원들도 가능성을 높게 바라볼 정도로 시장에서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혔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글로벌 스마트폰시장을 여는 등 글로벌 기술 선도업체 가운데서도 막강한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브랜드 힘을 지닌 업체로 평가된다.
애플이 제3자와 협력에서 극도의 비밀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논의가 실제 어디까지 오갔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시장에서는 가능성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는 점만으로도 현대차그룹에게 최근 불거진 협력설이 나쁠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애플과 실제 협력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이번 이슈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기차시장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현대차그룹은 이번 협력설에 주가가 크게 변동했을 뿐 앞으로 사업이나 브랜드 위상 측면에서 손해볼 것이 없다”고 바라봤다.
현대차가 3월 말 출시하는 전용 플랫폼 E-GMP를 활용한 첫 전기차 ‘아이오닉5’의 경쟁력을 인정받는다면 현대차그룹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수 있다.
▲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티저 이미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보유한 완성차업체들은 이를 제3의 전기차업체에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데 현대차 역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 사장은 지난해 12월 E-GMP 공개 행사에서 “이미 다른 업체로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과 관련해 여러 문의를 받았다”며 “E-GMP가 경쟁업체보다 경쟁력이 있는 만큼 시장에 나오면 계속 요청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앞선 기술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수소전기차에서는 이미 글로벌업체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수소전기차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영국의 글로벌 종합화학그룹 이네오스(INEOS)와 협약을 맺고 이네오스 오토모티브가 개발 중인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그레나디어(Grenadier)’에 차량용 연료전지시스템을 공급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테슬라 같은 미래 기술주로 평가되던 수소트럭업체 스타트업인 ‘니콜라’의 공식적 구애를 거절한 적도 있다.
이상현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E-GMP에서도 크로아티아 ‘리막’, 미국 ‘카누’와 협력을 통해 장점을 흡수하고 고성능, 고효율의 전기차 전용플랫폼을 완성했다”며 “현대차그룹은 배타적이지 않은 협업전략을 통해 전기차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빠르게 확보해 나가고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