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래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17일 경기도 현대모터스튜디오고양에서 열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Spot)’ 시연행사에서 기술설명을 맡은 현대차 기술PR팀 관계자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약 9천억 원을 들여 미국 로봇전문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결정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뒤 처음 진행하는 대규모 인수합병이라는 점과 함께 자동차제조업을 중심에 둔 현대차그룹이 로봇전문업체를 인수한다는 사실에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스팟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상업용으로 판매하고 있는 유일한 로봇이다. 길이 110cm, 폭 50cm, 높이 84cm, 무게 33kg의 스팟은 4발로 움직이는 개를 닮아 '로봇개(Robot Dog)'라고도 불린다.
스팟은 현재 한국에 3대가 들어와 있다. 관련 법규 미비로 아직 구매는 할 수 없고 산학 연구용으로 렌트 형식으로 빌려 쓰고 있는데 이 가운데 2대가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에 있다.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는 건설용 로봇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올해 8월 스팟 2대를 들여왔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경쟁력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의 도움을 받아 빌려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
실제 만나 본 스팟은 놀라왔다. 2마리라고 불러야 할지 2대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네 다리를 활용해 앉고 서고 걷고 계단을 오르고 점프를 하고 춤을 추며 실제 개보다 더 개처럼 움직였다.
▲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개 '스팟'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
사람의 팔꿈치나 발목에 해당하는 다리 관절은 마치 동물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접혔다 펴지며 안정적 보행을 이끌었고 다리와 몸체를 연결하는 관절은 상하좌우로 뒤틀리며 스팟을 앞뒤가 아닌 양옆으로도 걷게 했다.
스팟이 앞발을 웅크리고 뒷다리 쪽 골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좌우로 뒤틀 때는 마치 사람이 격한 운동을 하기 전 몸을 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팟은 몸에 달린 각종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주변을 인지하고 장애물이 있으면 스스로 움직임을 바꾼다.
스마트폰 4개 정도를 이어 붙인 크기의 패드를 통해 조종됐는데 계속 직진 버튼을 누르고 있어도 앞에 놓인 장애물을 알아서 피하고 스스로 높낮이를 파악해 계단을 오르내렸다.
사람이 스팟을 반드시 조종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리 알고리즘을 짜놓으면 이에 맞춰 자동으로 움직였다. 이날 스팟은 미리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양발로 콩콩 뛰었다.
▲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개 '스팟'을 조종하는 패드. <비즈니스포스트> |
스팟에 귀를 가까이 대봐도 미세하게 전기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소음은 없었다.
현대차 기술PR팀 관계자는 스팟의 가장 큰 장점으로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고 계단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안정성을 꼽았다.
스팟처럼 발 달린 로봇을 보통 ‘레그타입로봇’이라고 부른다.
레그타입로봇은 디딤 발과 딛는 발의 높이 변화 등에 따라 로봇 다리에 들어가는 힘과 압력 등을 조절해야 해 바퀴로 움직이는 ‘휠타입로봇’과 비교해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현대차 기술PR팀 관계자는 스팟을 하나의 모빌리티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스팟에 무얼 장착하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지금도 구조용, 안전관리용, 건설용, 시작장애인 안내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스팟에 쓰인 인지기술, 제어기술 등을 자율주행과 도심항공 모빌리티(UAM), 목적기반 모빌리티(PAV), 배송로봇 등 미래 모빌리티뿐 아니라 스마트팩토리 등 산업용 로봇에 적용할 계획을 세웠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서비스가 가능한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시장 진출을 노린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판매용인 스팟 외에도 물류 자동화를 위한 ‘픽(Pick)’과 ‘핸들(Handle)’, 물구나무서기와 공중제비까지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등 수많은 연구용 로봇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 시연회에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 전시된 현대위아의 자동차 제조 공작기계 앞에서 스팟이 춤추는 모습을 연출했다.
▲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개 '스팟'이 자동차 제조 공작기계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사람보다 큰 자동차 제조 공작기계 앞에서 스팟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현대차그룹의 꿈이 어떤 내용인지 그 실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차그룹의 제조역량과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력이 제대로 시너지를 낸다면 미래생활을 충분히 바꿀 듯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이번에야 말로 주인을 제대로 찾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2013년 구글, 2017년 소프트뱅크그룹 등 굴지의 글로벌업체에 인수됐으나 제품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구글과 소프트뱅크그룹은 현대차그룹과 달리 제조업을 기반으로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아직 가야할 길은 많이 남아 보였다.
우선 배터리 문제가 가장 걸렸다.
스팟은 현재 1시간을 충전하면 1시간30분가량을 연속으로 움직일 수 있다. 보충 전력 없이 어떤 일을 맡기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함께 마지막 소비자 집 앞까지 물건을 옮기는 배송로봇을 개발한다면 크기와 적재량 등과 관련한 고민도 필요해 보였다. 스팟은 현재 15kg까지 짐을 실을 수 있다.
가격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스팟 가격은 1대당 7만5천 달러(약 8300만 원)다. 로봇산업이 대중 속으로 스며들기에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정의선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인류의 행복과 이동의 자유,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겠다”며 “미래 모빌리티 혁신뿐 아니라 안전과 치안, 보건 등 공공영역에서도 인류를 위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을 제외한 순수 글로벌 로봇시장이 앞으로 연평균 32%씩 성장해 올해 444억 달러(약 49조 원)에서 2025년 1772억 달러(약 19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
▲ 시연행사를 마친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개 '스팟'.<비즈니스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