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사장이 전속설계사 조직을 떼어내 보험상품 개발과 판매를 분리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전속설계사 조직을 분리하면 각종 고정비용과 내년 시행되는 설계사 고용보험 의무화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다.
3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여승주 사장이 한화생명의 영업부문을 따로 떼어내 별도의 판매법인을 세우는 ‘제판분리’를 조만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제판분리는 제조(보험상품 개발)와 판매채널을 분리한다는 의미다. 미국 등 보험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제판분리를 통해 보험사는 상품 개발과 서비스 제공에 역량을 모을 수 있고 분리된 판매조직은 종합금융상품 판매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생명이 최근 2021년 정기 임원 승진인사를 발표하면서 영업부문 임원인사를 내년 초로 미룬 것을 놓고 여 사장이 전속설계사 별도법인 설립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앞서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인 한화라이프에셋과 한화금융에셋의 합병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통합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에 한화생명의 전속설계사들을 보낼 것이란 말이 나왔다.
이를 놓고 논란이 커지자 한화생명은 영업조직의 별도법인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11월 공시한 바 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영업부문 선진화를 위해 설계사 조직을 분리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이와 관련해 금감원에 사전신고가 이뤄졌다는 말도 나오는데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선 미래에셋생명이 제판분리와 관련해 가장 앞서있다"고 덧붙였다.
제판분리는 한화생명에서 먼저 논의가 시작됐지만 전속판매 채널 분리를 앞서 공식화한 곳은 미래에셋생명이다.
미래에셋생명은 내년 3월까지 전속설계사 3300여 명을 자회사형 보험대리점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이동시키기 위해 채널혁신추진단을 1일 출범했다.
한화생명은 영업부문의 별도법인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 결정을 18일 공시를 통해 알리기로 했다.
여 사장이 제판분리를 고민하는 것은 비용 절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디지털 플랫폼이 강력한 판매채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전속설계사 조직을 떼어내면 지점 유지비, 관리비, 교육훈련비 등 각종 고정비용을 30~40%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 수익을 낸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투자수익을 내기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안인 만큼 제판분리는 효과적 선택지로 여겨진다.
내년 7월 시행되는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의무화도 부담이다.
보험설계사는 대표적 특수고용직으로 꼽힌다. 전속설계사를 많이 보유할수록 운영비용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한화생명의 전속설계사 수는 6월 기준 1만9272명이다. 생명보험사 가운데 삼성생명(2만4577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대형생명보험사인 한화생명이 제판분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면 보험업계 전반으로 이런 흐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제판분리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험사들의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 설립하거나 활용하는 방안이 가시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신한생명은 내년 7월 오렌지라이프와 합병해 신한라이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는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을 활용해 전속설계사를 분리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발맞춰 신한생명의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 신한금융플러스는 11월27일 대형 법인보험대리점인 리더스금융판매의 일부 사업부를 인수하는 영업권양수 계약을 체결하고 몸집을 불리고 있다.
푸르덴셜생명과 KB생명도 내부적으로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 설립을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르덴셜생명과 KB생명을 원활하게 통합하기 위해 전속설계사를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푸르덴셜생명은 9월 KB금융지주에 인수됐다.
그 밖에 NH농협생명과 AIA생명도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 설립을 놓고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