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에서 미운오리로.’
한국경제를 떠받쳐왔던 철강 석유화학 조선 해운 등 ‘중후장대’ 산업이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있다.
9일 현대상선은 직전 거래일보다 13.78%(820원) 하락한 5130원에 장을 마감했다. 한진해운 역시 주가가 직전 거래일보다 4.76% 떨어졌다.
|
|
|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주가는 정부가 합병방안을 구조조정 차관회의 안건으로 공식논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개장하자마자 급락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자발적 합병을 권유하거나 강제 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현대상선 역시 “한진해운과 합병과 관련해 정부와 논의한 적이 없다”고 합병설을 부인했다. 한진해운도 “양사가 합병을 타진한 적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의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해운업을 포함한 산업재편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류제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에 직접적 강제성은 없으나 정부가 만일 추가지원 거부 결정을 내리면 채권단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게 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두 기업은 더 이상 정상적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해운과 화학, 철강, 조선 등 중후장대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방안을 논의하고 과잉설비 매각이나 감사, 일부 기업 간 빅딜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선업종은 저유가로 발주가 급감하고 중국의 맹추격에 밀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 모두 올해 사상 최대적자가 우려된다.
철강업계 역시 중국업체들의 공급과잉에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고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4개 산업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과 해운은 대기업간 인수합병(M&A)을 유도하고 채권단이 또 다시 대규모로 투자해야 하는 일부 부실기업은 청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상대적으로 업황이 낫다는 판단 아래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협의체를 만들어 기간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 관련 정부부처는 물론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등 구조조정 관련 기관과 국책은행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
|
|
▲ 임종룡 금융위원장. |
그러나 정부가 산업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채권은행과 기업자율로 실시되는 것일 뿐 강제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 박고 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퇴출이나 인수합병 대상기업의 명단이 담긴 이른바 '정부발' 살생부가 돌고 있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관련 기업의 주가도 몸살을 앓고 있다. SK그룹 지주회사 SK는 3일 SK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장중 주가가 20% 가깝게 급락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 가운데 정부로부터 경쟁사 합병 의향을 전달받은 곳이 여럿 있다”며 “정부가 억지로 떠맡으라고 하지 않는다지만 기업 입장에서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방향을 놓고 업계 사이에서 온도차도 나타난다.
해운업계의 경우 현대상선-한진해운의 강제합병설이 제기되자 반발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4조 원이 넘는 유동성을 지원해 주면서 꾸준히 자구노력을 해 온 해운업계는 외면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