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애경그룹의 계열사인 제주항공에 이스타항공 인수를 빨리 마무리하기를 요청하면서
채형석 부회장이 이스타항공 인수와 관련한 손익계산을 다시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6일 항공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채 부회장으로서는 김 장관이 직접 이스타항공 인수를 요청한 점을 놓고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욱 큰 무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채형석 부회장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한다면 허가산업이라는 항공업 특성상 무형의 불이익을 감수도 각오해야 한다.
더구나 제주항공은 최근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코로나19로 항공업황의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저비용항공사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선 정기편을 운항하고 있는데 2020년 2분기에 국제선 여객 수가 1만3127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99.3% 줄어든 상황을 놓여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제주항공의 항공운송사업에서 국제선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1.6%에 이른다.
국제항공운송협회와 국제공항협회 등이 코로나19 이전의 항공수요를 회복하기까지는 최소 2~5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어
채형석 부회장으로서는 독자생존에 힘을 싣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고용위기를 염려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현미 장관의 등장은 사실상 인수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제주항공은 그동안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기 위한 명분을 쌓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 위해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양해각서를 체결할 당시 지급했던 이행보증금 115억 원을 돌려받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김 장관이 채 부회장을 만나 조속한 인수 마무리를 요청한 만큼 채 부회장이 인수 포기 쪽으로 밀어붙일 경우 계약금보다 더 많은 것을 놓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정부가 제주항공에서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17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부분도 채 부회장이 인수 포기 쪽으로 기울면 더 이상 장담하기 힘들다.
물론 채 부회장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결정하게 되면 정부의 지원을 더 요구할 명분도 얻게 된다.
항공업계에서는 국토부가 당초 인수 지원자금으로 약속했던 1700억 원 이외에 추가로 지원금을 늘릴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국토부가 산업은행과 조율을 통해 인수 지원자금 1700억 원 이외에 추가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율을 마쳤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직원들에게 지급하지 못한 체불임금 250억 원과 협력업체 미지급금으로 800억 원 가량을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이 1년 안에 갚아야 할 금융부채는 모두 1595억 원에 이른다.
이 채무들은 대내외에 명시적으로 알려진 것인 만큼 정부로서도 모른 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채 부회장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더라도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채 부회장이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뒤 확실한 지원을 받아내야 할 수도 있다고 바라본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제주항공의 자금사정도 좋지 않은 만큼 인수를 그대로 진행한다면 정부로부터 확실한 지원을 약속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7일 이후 이스타항공 인수와 관련한 공식적 입장을 내놓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이스타항공 인수와 관련해 공식적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