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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무기 및 총포탄 제조업체인 LIG넥스원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을 개최했다. <뉴시스> |
기업들이 최근 국내 증시 상장(IPO)을 꺼리고 있다. 상장을 하더라도 미국이나 일본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상장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증권업계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요건을 갖춘 기업 600곳 가운데 상장을 한 회사는 7곳에 불과하다. 전체의 1.17%에 그친다.
이는 국내 증시가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라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자금유출 창구’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경영권 보호장치 미흡 지적
2002년 이후 증시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6조6000억 원인 반면 같은 기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위해 기업에서 빠져 나간 자금은 18조6000억 원으로 거의 3배나 됐다.
경영권 보호장치가 미흡해 상장 후 기업 사냥꾼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도 기업들이 상장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물산이 해외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으로 곤욕을 치른 후 한국 증시 기피현상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랜드그룹은 총자산이 7조 원이나 되고 계열사가 25개에 이르는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이지만 상장사는 이월드 한 곳뿐이다.
현대카드도 2000년대 초반부터 상장설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비상장기업으로 남아있다.
소셜커머스 1위 업체 쿠팡과 토종벤처 배달의민족 등은 미국의 나스닥 시장 상장을 타진하고 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 역시 미국이나 일본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상장폐지가 상장보다 많아
상장을 하면 경영 간섭이 많고 자금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자진 상장폐지에 나선 회사들도 적지 않다.
SK그룹의 유선통신 전문기업 SK브로드밴드는 6월 상장을 자진폐지했다. 신사업 추진을 위해선 비사장 형태가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2007년 국내 증시에 첫 번째 상장한 외국기업으로 주목받던 3노드디지탈을 포함해 상당수 기업들도 국내 증시에서 철수했다. 지난해 초 도레이첨단소재로 주인이 바뀐 도레이케미칼(옛 웅진케미칼)은 상장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외면하는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투자자 보호는 강조한 반면 경영권 안정을 위한 제도 마련은 소홀히 해 상장에 따른 기업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96년부터 올해까지 20년 동안 신규 상장기업 수가 상장폐지기업 수보다 더 많았던 해는 5번(1996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11년)밖에 없었다.
미국의 경우 기업이 이사회 승인 또는 정관변경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주식을 자유롭게 설계해 발행할 수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법에서 규정된 종류의 주식만을 발행할 수 있다.
기업들의 ‘증시 외면’을 막기 위해선 경영권을 보호하고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도 나온다.
차등의결권제(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 황금주(黃金株·주식 한 주만으로 주요 경영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제도),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값에 새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 같은 제도를 도입해 한국 증권시장의 매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업들이 증시에 서로 뛰어들어 오도록 다양한 종류의 주식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